청와대가 21일 오전 일부 내각 인선을 발표하면서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의 '흠결'을 먼저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국회 인사청문회와 언론 보도 등으로 논란이 예상될 만한 내용은 먼저 공개한 후 여론의 풍향에 따라 최종 임명을 판단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선 발표 자리에는 대상자 중에서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정의용 안보실장만이 참석했다. 대통령이 퇴장한 뒤 두 사람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조현옥 인사수석이 "인사수석이다. 조금 부가적으로 말씀드릴 게 있다"며 춘추관의 마이크를 잡았다.
"아까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있다. 검증 과정에서 두 가지 사항이 확인됐다.먼저 자녀의 국적이 미국 국적이다. 장녀는 1984년 후보자가 미국 유학 중 출생한 선천적 이중국적자인데, 한국 국적을 이탈하고 미국 국적 선택했다. 본인은 한국 국적을 다시 취득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하나, 위장전입이 있었다. 장녀가 미국에서 1년간 고등학교 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화여고에 전학하려고 1년간 친척집 주소지로 옮긴 사실이 있다."문 대통령은 앞서 강 후보자를 소개하면서 "비(非)외무고시 출신의 외교부 첫 여성국장과 유엔 최고위직에 임명된 한국 여성"이라며 "외교부 국장 이후 2006년부터 유엔에서 활동해오면서 쌓은 전문성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 시기의 민감한 외교 현안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적임자이고, 내각 구성에서 성평등이란 관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소개했다.
강 후보자가 장녀와 관련해 이중국적과 위장전입이라는 두 가지 흠결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 때문에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임명권자 대통령의 고민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조 수석은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강 후보자를 (외교장관에) 지명한 이유는 후보자의 외교 역량을 높이 평가했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중요 검증사안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투명하게 밝히자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었기에 미리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 같은 설명은 문 대통령이 이미 밝힌 '5대 비리 관련자의 고위공직 원천 배제' 원칙과 충돌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3일 국민성장포럼 연설에서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후보자의 사례는 이중 '위장전입'에 해당된다.
청와대 "제2의 반기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물"
박근혜 정부 시절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유학시절에 낳은 딸의 이중국적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최 장관의 경우 "딸이 성인이 되면 국적을 정리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비껴갔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홍윤식 행자부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도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사과해야 했다. 국무총리 권한대행으로서 이번에 인사제청권을 행사한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경우에도 자녀 통학 문제로 서울 강남으로 위장전입한 사실을 인정한 전력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강경화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인선 방향에 대해 국회와 국민을 동시에 납득시켜야 할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조 수석은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얘기한 '5대비리 근절' 원칙과 배치되는 인사가 아니냐는 출입기자의 질문에 "그건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논의를 했고, 작은 문제가 아니고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기본적인 기조는 지켜나가겠다. 이와 관련해서는 인사청문회에서 얘기가 더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강 후보자는 이화여고와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부친(KBS 강찬선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KBS 영어방송 아나운서 겸 PD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미 매사추세츠 주립대에서 언론학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세종대 영문과 교수를 지내다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통역하면서 이듬해 외교부에 특채된 케이스다.
청와대 관계자는 "강 후보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에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현 유엔 사무총장의 인수팀장을 맡을 정도로 외교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남녀 동수 내각'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사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2의 반기문'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이해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