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남변로터리에 가면, 산을 등지고 대로를 앞에 둔 채 고고하게 자리잡은, 건물 한 채를 볼 수 있다. '남해유배문학관'이라는 이름표를 단 그 건물은 '유배'라는 소재에 걸맞게 주위를 꾸며놓았다.
건물로 향하는 입구에는 잔뜩 굳은 표정의 두 포졸이 창을 들고 좌우에 서있다. 그리고 좌측에는 황소가 끄는 달구지에 앉은 사내 한 명과 그 앞뒤를 지키는 포졸 두 명이 있다. 달구지는 위와 옆면이 모두 나무 창살로 막혀있다. 앉아 있는 사내는 흰색 민무늬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으며, 지긋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잡혀있다. 사극 속 흔한 유배객과 다른 점은 흐트러지지 않은 상투머리에 의복이 깨끗하다는 점.
달구지가 향하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연못에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분위기 나는 남자가 있고, 좌측 가장자리에는 초가집 한 채가 있다. 그곳에서는 괴나리봇짐을 멘 한 사내가 외출을 하려는 중이다. 어쩌면 두 사내는 달구지에 탄 남자의 미래 모습일 듯 하다.
남해유배문학관. 이곳은 '유배'와 관련된 문학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2010년 11월 1일에 개관했다. 남해군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유배지로서 인기(?)가 높았다. 문학관 내에 있는 "우리나라의 유배지와 유배객" 게시물을 보면, 경상도의 경유 남해가 가장 최다 유배객을 유치했다.
그리고 그 많은 이들 중에는 서포 김만중이 있다. 특히 김만중은 문학관 앞에 배치된 유배객 시비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물상을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도 있어서 올해는 제8회 김만중문학상 작품을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접수한다. 이는 그만큼 그의 문학사적 업적이 뛰어나기에 남해군의 러브콜을 받았으리라.
내 눈을 사로잡은 의외의 전시물한편, 이 유배문학관에는 유배를 온 '사람'만 있지는 않다. 유배와는 거리가 먼 듯한 '나무'들이 1층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다들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사체 일부만 남아있다. 그런데 그 몸뚱아리가 각자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외모 탓에 유배객 신세가 된 나무가 있다.
1층에 있는 총 다섯 그루 중 하나는 출입구에서 가장 우측에 있는, 수장고로 가는 입구 안쪽에 놓여있다. 게다가 이 나무만 고목 특유의 퇴색하고 생기가 없는 걸로 미루어, 윤광피부 마사지를 전혀 받지 못했다. 짝짓기를 하는 뱀 형상을 닮았다는 이유로 관람객 눈에 보이지 않을 구석진 맨바닥에 유배(?)되었다.
반면에 가장 좌측 유배문학실 방향에는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니스칠을 한 덕분에 반질반질 윤기가 자르르 도는 갈색피부를 뽐내며, 검은색 받침대 위에 누워있다. 그중에서 하나의 나무가 다섯 그루 중 유일하게 설명문이 첨부되어 있으며, 가장 눈에 잘 보이는 장소에 전시되어 있다. 이는 천연기념물 제 276호 갈화리 느티나무로 수령이 약 5백년 된 마을의 수호목이었으나, 2012년에 태풍으로 고사했다. 이후 보존가치가 높다 여겨 2014년 3월부터 이 곳에 전시중이다.
하지만 이 갈화리 느티나무보다 두 배나 더 먹은 나무 한 그루의 신세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본디 이 문학관 건물에 들어섰을 때 맨 먼저 눈에 뛴 것은 출입문 좌측 구석에 놓인 아주 멋스런 외향의 나무였다. 조각일까 싶었는데, 그렇기엔 디자인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아무런 설명문이 없기에 단순 인테리어 소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물품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한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거대한 덩치에 좌우 보는 시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나무였다. 안내를 해준 경비원은 우측에서 보면 멧돼지를, 좌측에서 보면 코끼리를 닮았노라 했다. 정면에서 보면 정말 두 눈처럼 좌우에 구멍이 있다.
나무 표면은 전시실 인근의 너무 반짝거리는 나무들과 달리 은은한 광택에 색상이 참으로 고왔다. 귀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그간 살면서 자연사박물관도 여러 곳 가봤지만 이렇게 눈길을 확 사로잡는 외모의 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문외한인 기자 눈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존재였다. 그런데 얼핏 봐도 맞은편에서 보이는 두 나무와는 달리 방치되어 보여서, 뭔가 사연이 있나 싶었다.
이 '기목나무'는 건물 우측의 화장실과 다목적 강당 사이 통로에 있다. 구석진 곳. 흰색 천으로 대충 덮은 받침대 위에 놓인 그 커다란 나무 주위에는 남해유배문학관이라 적힌 빨간색 띠로 접근을 막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있는 안내문에는 "위험 손대지 마세요"라는 글자만 있을 뿐.
그래서 안내데스크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경비원이 잘 알고 있다며 소개시켜 주었다. 경비원은 출입문과 화장실 인근의 두 나무 소유자가 자신의 지인이라고 말했다. 이 나무의 종류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기목나무'라고 대답했다. 기목나무라는 별도의 종인지 알았는데, 남해에서는 '느티나무'를 '기목나무'라 일컫는다고 알려주었다.
이 기목나무는 수령이 1000살 정도로 추정되는데, 태풍 때 벼락을 맞아 죽었다. 이에 마을주민들이 땔감으로 쓰려고 하던 것을, 지역의 부유한 사업가 유아무개씨가 사들였다. 유씨는 장인을 시켜 다듬고, 제주도에서 300만 원을 주고 산 동백기름을 표면에 바르는 등 갖은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본래 남해스포츠파크에 두었는데, 그만 사업 실패로 망하여 보유한 나무를 둘 곳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목나무를 2억 원에 팔려고 했으나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여기에 맡겨 놓았다. 나무 입장에서는 일종의 유배지에 온 셈이다. 화장실 앞이라니... 잘 나가던 나무에겐 굴욕의 목사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배문학관 측에서 보면 부피가 워낙 큰데다 관리상 부담스럽기도 하니 애물단지로 여겨질 수밖에.
하지만 이 나무 자체의 독특한 생김새에, 유일하게 특혜를 누리는 수호목보다 무려 두 배나 많은 나이인 점을 감안하면 전시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1000살. 외모도 범상치 않고. 더군다나 소유주가 흔한 니스 대신 동백기름을 바르며 정성으로 길을 들여 나무색 자체도 오묘하니 참으로 멋지다. 경비원에게 이런 나무를 본 적이 없다 감탄하니, 그가 으쓱해 하며 "아마 자연사박물관에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아예 남해군에서 소유자인 유씨와 협상하여 매입이나 조건부 임대를 하여, 다른 나무와 더불어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하여 관광객을 모으는 방법을 고려했으면 한다. 두 시간 가량을 유배문학관에 머물면서 구경을 했는데, 화장실에 있는 이 나무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화장실에 왔다가 보게 된 두 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냥 둘러보고 갈 뿐이었다. 이 거목이 그 가치에 비해 너무나 홀대를 받는 것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