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섰던 여성 대학생 '천영초'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 <영초언니>(문학동네)를 출간하고 사인회를 열었다.
서 이사장은 3일 오후 서귀포에 있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 이어 4일 오후 제주시 간세라운지·우유부단 크림공작소에서 사인회를 연다.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열린 사인회에는 연예인들도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1970년대 말,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생이었고, 영초 언니는 같은 대학 4학년 선배였다. 천영초는 박정희 정권 때 긴급조치 세대 대학생들한테 큰 영향을 끼친 실존인물이다.
'사회적 스승' '지식인의 모델'... 하지만 시대는 그의 이름을 지웠다서명숙 이사장은 "영초 언니는 담배를 처음 소개해준 '나쁜 언니'였고, 이 사회의 모순에 눈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으며,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 '지식인의 모델'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운동권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였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태일'처럼 깊은 화인을 남긴 인물이었지만, 오늘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며 "지금, 영초 언니는 불의의 사고로 말과 기억을 잃어버렸고, 시대는 그녀의 이름을 지워버렸다"라고 말했다.
천영초와 서명숙, 두 여성의 젊은 날은 굵직한 현대사와 얽혀 있다. 유신정권과 긴급조치, 동일방직노조 사건, 박정희 암살, 그리고 5.18광주민중항쟁과 6월 항쟁 등이다.
여성 대학생들이 유신정권 속에서 겪었던 소름 끼치는 협박과 고문, 그리고 긴급조치 9호 시대 여성 정치범들이 수감된 감옥 안의 풍경이 영화처럼 펼쳐져 있다.
서명숙 이사장은 영초 언니를 회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영초 언니를 회상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었고, 식은땀에 젖어 한밤중에도 소스라치며 일어나게 만드는 처절한 악몽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원고를 쓰다가 몇 번이다 중단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쟁취, 독재 타도" 외친 한 여성
그런데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최순실 때문이란다. 그는 "부패한 박근혜 정권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이 몰려든 취재진들 앞에서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며 억울하다고 외친 순간, 다시 영초 언니를 떠올렸다"라고 전했다.
그는 "순간 40여 년 전, 호송차에서 내리면서 '민주주의 쟁취, 독재 타도'를 외치고는 곧장 교도관에게 입이 틀어 막혀 발버둥치던 한 여자의 모습이 오버랩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천영초가 외치는 민주주의, 최순실이 외치는 민주주의. 40여 년의 세월을 넘어 똑같이 수의를 입은, 그러나 너무도 다른 생을 살았던 두 여자가 '민주주의'라는 같은 단어를 외치는 풍경이 지독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라고 서 이사장은 말했다.
서 이사장은 "이 책은 지독하게 고통스러웠음에도 내 생애 힘든 시절마다 주둔군처럼 다시 호명되는 그때 그 시절의 기록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한 여성에게 바치는 사랑노래"라 했다.
서명숙 이사장은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