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으로 소득이 집중되면, 전체 평균 소비 성향이 하락하면서 총 소비가 감소한다." 경제학자들의 필독서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 이론'의 한 구절이다. 한계소비성향이란 경제 주체 1인이 소비할 수 있는 최대 소비량을 말한다. 한계 소비에 다다르면, 경제 주체는 더 이상 돈을 쓰지 않는다.
케인즈의 말을 조금 풀면, 가난한 사람 10명과 부자 1명이 각각 1억 원을 갖고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훨씬 많이 쓰는 경향을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케인즈는 고소득층에게 돈이 몰리는 현상은 전체 소비 시장을 악화 시킬 수 있다고 봤다.
최근 최저임금 1만원 시행을 두고 논란이 이는 상황에서 케인즈의 이론은 다시 곱씹어봐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장 상황으로 보면, 반드시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건 무리다.
최저임금 인상시 고용감소, 필연적이긴 하지만...'고용감소'는 현재 최저임금 적용사업장에만 한정하면, 필연적이긴 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저임금 인상 고용영향평가 연구' 자료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10%일 때, 29인 이하 사업장에서 고용은 0.9%, 30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0.5% 감소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원은 특히 영세소규모사업장과 청년, 여성, 임시일용직, 근속여수 1년 미만 근로자 층에서 고용감소 효과는 더 큰 것으로 추정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다.
그렇다고 최저임금 1만 원 효과가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에도 살아남은 근로자들은 소득이 증가한다. 소득의 증가는 소비로 이어진다. 여기서 케인즈가 등장한다. 앞서 한계소비성향은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더 크다고 했었다. 저소득층 근로자가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늘어난 소비는 일자리를 만든다.
케인즈의 말처럼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은 높다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가 뒷받침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중위 50% 미만 가계의 평균 소비 성향은 2015년 119.7로 나타났다.중위 50~150% 미만 가계의 평균소비성향도 2015년 73.2로 전체 평균(67.5)보다 높았다. 반면 중위 150% 이상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53.6으로 평균보다 낮았다. 이런 추세는 지난 2006년부터 지속된 현상이다.
중하위 가계, 고소득보다 돈 많이 써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2009년 발간한 '가계의 소비구조, 소비불평등, 한계소비성향의 변화와 정책시사점'에서도 소득 하위 계층의 한계 소비 성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가계의 한계소비성향은 0.3856이었는데, 소득 최하위인 1분의 가계의 한계소비성향은 0.6426으로 두배 가량 높았다. 2분위도 0.518이었고, 3분위는 0.4618, 4분위는 0.4545로 나타났다. 한계소비성향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낮아지면서, 소득이 가장 높은 10분위는 0.3092로 전체 소득분위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즉 중저소득층이 돈을 더 많이 쓴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낸 '소득분배구조 변화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도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는 소비 진작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됐다. 이 보고서는 "저소득층은 소득여건 악화가 곧바로 소비 감소를 초래하지만, 이들의 높은 평균소비성향 등에 비추어 볼 때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는 소비진작으로 이어져 그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내다봤다.
최저임금 상승시 소비진작효과에 따라 추가 일자리 창출결국 최저임금 상승은 저소득층의 소비진작 효과로 이어져, 또다른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을 타겟팅(목표)하는 재정정책이 효과가 커 그쪽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앞선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할 때, 소비지출 변화에 따른 고용창출은 피용자 기준 2만2774~2만5222명, 취업자 기준으로 3만9326~4만3577명으로 추정했다.
기업의 고용감소효과를 고려하더라도 피용자 기준 1만7991~2만574명, 취업자 기준으로 3만1067~3만5547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점을 볼 때, 최저임금 올려서 고용이 줄어든다고 무작정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경제학에서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나눈다. 미래를 예측할 때 발생 가능한 상황에 따른 손실이나 피해를 객관적 확률로 알 수 있는 상태가 '위험'이다.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확률로 측정할 수 없는 상태는 '불확실성'이다.
최저임금을 매년 15%씩 올려서 2020년까지 1만 원을 달성하는 것은 '위험'보다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해외 다른 나라에서도 관련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중소상공인의 우려나 연구보고서도 사실 '추정'에 가깝고, 실증해서 비교 분석할 사례는 없다.
'가계 소비 감소'라는 위험, '최저임금 조기달성'은 해법 될 수도
그런데 가계 소비와 관련해, 한국은 이미 '위험'해지고 있다.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연간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55만 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0.5% 감소했다. 소비지출이 줄어든 것은 200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은 불확실하지만, 소비 진작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케인즈가 그랬고, 여러 연구보고서가 증명했듯 저소득층의 소비 진작 효과는 고소득층보다 낫다. 이들의 임금이 늘어나면, 분명 효과는 나올 것이다.
케인즈는 소비 진작을 위한 적극적 정부 재정 정책을 옹호했다. 선제적인 투자가 '부'를 창출한다고 봤고, 미국은 그 철학에 따른 뉴딜 정책으로 혜택을 봤다.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선제적인' 무언가를 해야 할 때다. 최저임금 1만 원 조기 달성은 그 방법의 하나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