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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재'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동체마을 탐방을 며칠 앞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버스운전사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이 너무나 거칠어서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의자에 푹 기대앉아 느긋하게 차창 밖 풍경도 봐 가면서 메모를 하며 버스로 먼 길을 가는 중이었다. 운전기사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가 사는 동네 이장하고 통화하는 것 같았다.

"그 쌍O의 O끼가 OO도 놈인데 남의 동네 이사 왔으면 고분고분해야지. 그런 놈은 어서 내쫓아야 돼."

동네 이장으로 여겨지는 상대편이 뭐라고 이사 온 주민을 해명하는 모양이다. 운전기사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이장이 자꾸 그런 소리 하면 내가 군청에 가서 직접 얘기할 거다."

 "버스기사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연거푸 해댔다. 오는 전화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전화를 여기저기에 걸었다."
"버스기사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연거푸 해댔다. 오는 전화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전화를 여기저기에 걸었다." ⓒ pixabay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연거푸 해댔다. 오는 전화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전화를 여기저기에 걸었다. 이번에는 친목회 모임인가보다. 누구를 '잡놈'이라 하면서 '죽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물론 살의가 느껴지는 대화는 아니다. 그냥 말투가 습관적으로 거친 사람으로 보였다.

늙고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서 그런 걸까. 경상도 땅이라서 OO도 고객이 없으리라 여겨서일까. 그래도 그렇지. 손님들의 행색이 어떻건, 승객이 어느 지역 사람이든 장거리 직행버스 기사가 지역 차별 발언을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운전 중 전화통화가 끝날 줄을 모르니 불안하기도 했다.

운전기사 왼쪽 위에는 버젓이 기사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있는 걸 보면 아예 주위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았다. 더구나 운전기사의 자리 오른쪽 위에는 기가 막힌 표어까지 떡하니 붙어 있었다.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과 폭력은 테러입니다.' 운전기사의 실명이 적혀 있고 안전운전을 위한 표어가 있는 자리에서 정작 기사는 과도하게 자유분방했다.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어떤 젊은이가 한마디 했다. "전화 좀 그만하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목소리가 운전기사에게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전화하느라 승객의 불평 소리가 귀에 들릴 리가 없지. 들렸으면 예상컨대 한 바탕 곱지 않은 대거리가 오갔을 것이다. 승객이나 기사 자신의 안전을 위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산청 아래 원지 정류장이었다. 내가 먼저 차를 내려서 기사에게 내려오라고 했다.

계속 통화하던 버스 기사, 내가 그에게 내민 것은...

영문을 전혀 모르는 듯한 기사는 엉거주춤 버스를 내려오면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이는 60대 초반으로 보였다. 아마 자기가 운전 중에 장시간 전화통화를 했다는 사실마저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종일 장거리 운전하시려면 힘드시죠?"

제법 상냥하게 인사부터 건넸지만 운전사는 오히려 그다음 말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왜 자기를 불러 내렸는지 말이다. 그때 내 손에는 주머니에서 꺼낸 이어폰이 쥐여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1만 5천 원짜리 고급이어폰이었다.

"기사님. 손 전화가 필수품이라 전화 안 할 수는 없을 테고요. 앞으로는 이 이어폰을 끼고 하세요."

그제야 자초지종을 눈치챈 기사는 반응이 아주 놀라웠다. 그 어색하고 난감한 표정이 시골 소년 같았다. 양손을 쩔쩔 흔들면서 아니라고. 다시는 운전 중에 전화 같은 건 안 하겠단다. 자기도 있다고. 이어폰이 자기한테도 있지만 운전할 때는 전화는 안 하겠다고 했다.

 "꺼내 든 이어폰을 다시 내 호주머니에 넣기도 민망해서 기사 손에 쥐여 주었더니 그는 내 손을 잽싸게 뿌리치고는 운전대에 뛰어 올라가더니 운전석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가지고 내려왔다."
"꺼내 든 이어폰을 다시 내 호주머니에 넣기도 민망해서 기사 손에 쥐여 주었더니 그는 내 손을 잽싸게 뿌리치고는 운전대에 뛰어 올라가더니 운전석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가지고 내려왔다." ⓒ pixabay

꺼내 든 이어폰을 다시 내 호주머니에 넣기도 민망해서 기사 손에 쥐여 주었더니 그는 내 손을 잽싸게 뿌리치고는 운전대에 뛰어 올라가더니 운전석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가지고 내려왔다. 내 눈앞에 자기도 이어폰이 있다는 것을 내보이면서 다시는 전화통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다. 말이나 표정이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생태영성 공동체마을로 알려진 수선재의 '선애빌' 탐방 준비 메모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다 운전기사의 지나친 운전 중 통화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떠올렸었다.

"지금 이 순간도 운전기사와 내가 한 공동체라고 할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을까?"라고.

그래서 이어폰을 건넨 것인데 값비싼 이어폰도 내 호주머니에 그냥 남게 되었고 운전기사는 물론 나 자신과도 다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운전중통화#손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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