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훈훈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고 백남기씨 부인 박경숙(64)씨와 딸 백도라지(35)씨를 이낙연 총리 부인 김숙희씨가 초대했습니다. 총리 부인이 직접 공관 이곳저곳을 안내했다고 합니다. "김 여사가 직접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이것이었는데요.
두 사람이 손을 다정하게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이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예, '촛불의 힘'이 만든 변화입니다. 백도라지씨도 20일, 한 때 "시위의 대상이었던" 총리 공관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촛불의 힘이다".
그러면서 "정권이 바뀐 걸 실감한다"고도 말했답니다. "아버지의 죽음 후 처음으로 마음 편히 미소 지을 수 있었다"면서요. 박경숙씨가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 저는 처음 봤습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얼굴 또한 참 흐뭇해 보입니다. 이런 얼굴들을 보면서 우리 역시 정권 교체를 실감합니다. 1년 7개월 여, 그 시간들 속에서 아직도 선명한 '우리의 얼굴'을 잠시 짚어봤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 이 가족들의 얼굴입니다. 그들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마치 '전사'처럼 굳건해 보였습니다. 허나 두려웠을 것입니다. "살인정권 규탄한다!"는 손팻말 자체가 그들이 어떤 '힘'과 싸우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살인' 자체를 부정했으며,
진실을 은폐하려고 자신의 '힘'을 악용했습니다.
진실을 '색깔'로 가려내려는 '힘' 역시 강했으며,
이러한 '힘'을 믿고 고인의 빈소에서 부검을 요구하는 비인간적 패악이 공공연히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고인이 잠들어 있는 안치실에 몰래 침입하는 일까지 교수에 의해 자행됐습니다.
가족들은 이러한 '힘'에 굽히지 않았습니다. 법의 '힘'을 믿고자 했으며,
어머니는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에 섰습니다.
농민의 딸들도 거리에서 주먹을 쥐었습니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때로는 솟아오르는 미움을 감추기 어려웠고,
또 때로는 솟아 나오는 눈물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그들의 얼굴들은 곧, '우리의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잘못을 부정하거나 잘못을 은폐하고, 이를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거대한 '힘'과 마주할 때의 우리의 얼굴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촛불을 다시 들었고,
서로 팔짱을 꼈으며,
함께 거대한 '힘'에 맞섰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대통령은 끝내 외면을 선택했고,
그랬기에 시민들은 새로운 '힘'을 선택했습니다. '그들' 옆에 있어줬던 사람,
그래서 '우리' 곁에도 있어줄 것 같은 사람. 1년 7개월 여 전, 병원을 찾아가 그들의 손을 먼저 잡아줬던 사람.
그랬기에 박경숙씨는 아마 총리 부인에게도 기꺼이 손을 맡길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위로가 필요했다"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지난 20일 '외인사'로 정정된 아버지의 사망진단서를 받고 백도라지씨는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해 주신 시민들께 감사 드린다"면서 경찰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습니다.
"저희가 고소한 7명, 강신명, 구은수, 신윤균, 한석진, 최윤석 및 이름을 아직 모르는 2명의 경찰관들을 내부적으로 어떻게 징계할지 밝히십시오. 그리고 당시 내부적으로 작성한 청문감사보고서를 공개하고 법원과 검찰에 제출하십시오."아직 누군가의 '잘못'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진실을 규명하고 제대로 벌을 내리는 것은 위로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시민을 위로할 줄 아는 새로운 '힘'은 반드시 그리 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더 '큰 힘'을 쥐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 백남기 농민 죽음에서 얻어야 할 '역사적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