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뜻하지 않은 사건을 만나 굴절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간에 영향을 주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무 그늘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하루가 수월히 가곤 한다. 돌이켜보건대 삶은 분명 뜻대로 살 수 없으니 늘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검박하게 살고 싶다.
암탉이 알을 깨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알을 품은 지 벌써 한 달이 돼 간다. 병아리 부화 기간인 21일을 훨씬 넘겼으니 깨기는 틀린 것 같은데 아직도 알 품기가 진행형인 걸 보면 녀석의 모성이 지극하거나, '초짜'라서 병아리 부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듯싶다. 그렇다고 녀석을 둥지에서 쫓아낼 수도 없으니 나는 녀석의 모양새를 바라보고만 있다.
가까이 다가설 때까지는 모르쇠로 눈만 껌벅이며 가만히 있지만, 물이라도 갈아주려고 둥지 안에 손을 내밀면 딱딱한 부리로 여지없이 손등을 쪼아대니 무서워서라도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다. 쯧쯧. 내가 녀석을 '초짜'라고 부르는 것은 태어나 첫 '부화의 시도'라는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녀석의 '흙 목욕' 때문이다.
알을 품고 있다가 둥지를 벗어나면 모이를 먹거나 물을 마시고 바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텐데 녀석은 거꾸로 소나무 밑동까지 가서 발톱으로 땅을 후벼 파고 그 흙먼지 위에서 한참 동안 낮잠을 즐기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알을 깰 수 있으랴. 녀석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면 "알이 식으면 네 새끼들이 세상구경을 할 수 없어. 어서 둥지로 돌아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노란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농기구 거치대에 피어난 이파리
이번에는 포플러 나무 이야기이다. 창고가 작아 그동안 농기구들을 뒤란에 모아 두었다. 그걸 보고 아내가 게으름 피우지 말고 농기구를 가지런히 걸쳐 놓을 수 있는 거치대를 만들라고 말했다. 집안에 적당한 나무가 없어 울타리 근처의 포플러 가지를 잘랐다. 그리고 위아래를 톱으로 절단해 거치대의 두 기둥으로 세웠다. 그때가 겨울이 막 지나고 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조악하지만 한편으로 시골스러운 거치대에 삽과 곡괭이, 갈퀴, 쇠스랑을 걸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움은 가게 마련이다. 곧 그것을 잊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 전 뒤란을 돌아가던 아내가 크게 탄성을 질렀다.
"빨리 와 봐. 기적이 일어났어!" 웬 호들갑인가, 하고 돌아가 보니 거치대의 기둥을 가리켰다.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기둥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 너울거리고 있던 것이다. 눈으로 확인해도 쉬 믿지 못할 풍경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세운, 뭉툭하게 잘린 기둥에서 피어난 푸른 이파리라니. 그것도 한쪽만 그런 게 아니라 양쪽에서 10cm가 넘는 나무 이파리들이 자라나 있는 것을 보며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각진 스님이 꽂은 지팡이가 600년 수령의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백양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팡이가 고목이 되는 것은 '주장자(拄杖子)'의 도력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생명이 가지는 놀라운 경이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너울거리는 이파리를 쓰다듬었다.
마지막으로 대나무 뿌리 이야기다. 대나무 뿌리가 마당 가에 죽순을 피워 올렸다. 곡괭이를 들고 뿌리를 따라 파들어 가니 이내 담을 넘었다. 담 밖은 온통 대나무 천지였다. 이놈들은 내가 집을 지은 그해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지난 3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해 뿌리를 내 집 마당으로 디밀어 겨우 고개를 내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을 들여 그들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 대나무는 얼마나 허무했을까.
나무의 허무를 가늠하다 잠시 물러서 내 삶을 돌아봤다. 그러다가, 허무가 더 큰 허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아리를 깨기 위해 내 뜻대로 암탉을 제어할 수 없고, 포플러를 살리기 위해 거치대를 파손할 수 없었다. 마당 가를 파고든 대나무 뿌리를 방치하면 집터까지 파고들 것이 분명했다.
결국 삶은 자연스럽게 나아가야 하고 나는 그 안에서 흐르는 물이 되어야 했다. 어차피 세상을 떠나 내가 돌아 나온 곳으로 가야 하니 역시 가장 좋은 방식은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 끝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먼 산을 쳐다보다가 텃밭의 오이를 따 크게 한 입 베물었다. 그리고 닭장으로 가 물끄러미 암탉을 쳐다봤다. 녀석은 미동도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자연의 품 안에 안기는 게 쉽지만은 않을 줄 압니다. 그럼에도 특별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