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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 김지현

"그 일본인 할아버지는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존재를 알지만 그다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위안부를 '골방에서 돈을 벌다 조국으로 떠난 존재'로 인식했죠. 학살에 대해선 끔찍해하고 반성하는데, 위안부 문제는 그러지 않아요."

지난 6월 28일 만난 김준기 감독은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있는 일본군 할아버지의 육성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조명하려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반세기가 훌쩍 지났으나 일본인 할아버지들이 갖고 있는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인식은 바뀐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본에선 '한국은 거지 같이 돈 바라는 거냐' 목소리도..."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 김지현

김준기 감독이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어 지난 6월 20일 대중에 공개했다. 작품명은 <소녀에게>. 허구는 곁들이지 않았다. 일본군으로 참전했던 할아버지들의 육성이 작품을 줄곧 이끌어나가면서 일본군이 한반도 땅과 중국 땅에서 벌인 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에 허구가 더해진 '팩션'과는 결이 다르다.

김 감독이 일본군 참전 경험 할아버지들의 증언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은 데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둘러싼 일본인들의 막말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김 감독은 지난 2013년에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의 육성을 토대로 <소녀이야기>를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넷우익'들은 댓글에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은 아직도 거지같이 돈을 바라는 거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소녀이야기>를 두고선 '할머니가 돈 받으려고 거짓말로 증언한 거 아니냐'고 얘기했었죠. 그런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할아버지가 육성으로 증언한 것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일본군 할아버지들의 증언... 더 잔혹한 게 많았다"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 김지현

그러나 일본군 참전 경험 할아버지들의 육성을 얻는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취재 기간만 6개월. 김 감독은 이때를 회상하며 '아우' 소리를 냈다.

"무작정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갔는데 (육성이) 없더라고요. 백방으로 알아보다 어렵게 손자 분, 시민단체 활동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들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죠."

제작을 하던 중간에 '이런 이야기에 연루되기 싫다'는 유족의 반대로 사용하지 못한 육성 증언도 많았단다. 김 감독은 "위안부에 문제의식을 갖고 증언해주는 할아버지도 드물었고 증언을 해주더라도 (위안부에 대해) '잠깐 와서 돈 벌고 간 거 아니냐'는 인식을 내비쳤다"라면서 "결국 위안부 장면을 계획과 다르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라고 아쉬워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후손이 선대의 잘못을 참회하며 제작에 도움을 줬다는 점이다. 네모토 쵸우즈 할아버지의 손자 마사루씨는 영상에서 "(일본군이었던 할아버지의 성노예 증언을) 처음 듣고 진짜 충격을 받았다"라고 회고한다. 김 감독은 "마사루씨가 굉장히 미안해했다"라면서 "할아버지는 손자와 얘기하면서 (성노예 피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14분 영상에는 경악할 만한 장면이 가득하다. 갓난아기를 둔 중국인 여성이 납치돼 끌려오고, 계급 순으로 윤간 당한다. 또한 행군 도중 일본군에 의해 엄마 품에 있던 아기가 운다는 이유로 산 너머로 던져진다. 그 잔혹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김 감독은 "증언을 들어보면 그보다 더 심한 게 많았다"라고 말했다.

 단편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중 한 장면.
단편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중 한 장면. ⓒ 김준기

 단편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중 한 장면.
단편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중 한 장면. ⓒ 김준기

 단편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중 한 장면.
단편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중 한 장면. ⓒ 김준기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20여년 지났지만...

현재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이기도 한 김 감독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일각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면 부족한 증언을 모으는 것과 더불어 애니메이션과 같은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만들어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감독은 여성가족부와 함께 영어와 일본어·중국어로 영상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다만 그는 자막 제작에 있어서 "단순히 외국어 실력이 좋다고 되는 자막 작업이 순조롭게 풀리는 건 아니다"라며 "(외국어 실력도 있으면서) 학술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애니메이션 <소녀에게> 김준기 감독(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은 지난 6월 28일 김 감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당시 모습. ⓒ 김지현

<소녀에게>는 제작 기간만 2년 6개월이 소요됐다. 김 감독은 "장면 하나마다 손수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듯이 제작했다"라고 말했다. 1972년생인 김 감독은 만화를 공부하던 1991년 당시에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존재를 알리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의 목소리를 담아 만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5년 12월, '불가역적'으로 한일간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지만, 일본의 그릇된 인식은 변함이 없다. 지난 23일, 미 애틀란타 일본 총영사가 지역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2차 대전에서 일본군이 한국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건 터무니없다"라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 이는 김 감독이 만난 일본군 출신 할아버지들의 인식과도 맥을 같이한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 감독은 지난 2015년 12월 한일 협상을 두고 "지난 정부가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의도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거 아닌가"라며 쓴소리를 했다. 그는 새롭게 출범한 정부와 외교부에 "콘텐츠 제작자로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외교부가 방법을 모르진 않을 것"이라면서 "조금씩이라도 (지금 상황보다) 나아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아래 영상은 단편 애니메이션 <소녀에게>입니다. 김준기 감독의 동의를 얻어 <오마이뉴스> 지면에 게재합니다.)



[김준기 감독의 다른 작품]
<소녀이야기>(바로 가기 클릭) / <환> (바로 가기 클릭)


#일본#위안부#소녀에게#소녀이야기#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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