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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7시가 되면 부산에 혼자 계신 엄마가 떠오릅니다. 오늘 하루는 잘 지내셨을까? 먹기 싫다고 끼니는 거르지 않으셨을까? 무료해서 또 우울함에 빠지시지는 않으셨을까? 이것저것 걱정이 되어 전화기를 듭니다. 멀리 사는 게 불효죠. 최고의 불효가 자주 얼굴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1930년생,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겪으시며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사신 세대입니다. 이제 좀 자신만 생각하셔도 되는데 전화만 드리면 제 걱정부터 하십니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 표지 요시타케 신스케 / 고향옥 옮김/
<이게 정말 천국일까?> 표지요시타케 신스케 /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안 피곤하냐? 목소리가 안 좋다."
"아니에요. 엄마는 어때요? 저녁은 드셨어요?"
"그래, 살겠다고 또 먹었다. 내가 빨리 하늘나라에 가야 너희가 편할 텐데. 왜 아직 하나님이 날 안 데려가시는지 모르겠다."

매일 하는 이야기가 똑같습니다. 자신이 오래 사는 게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걱정을 하십니다. 100세 시대인데 무슨 소리냐고, 아프지만 마시라고, 이렇게 전화할 엄마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엄마는 매일 그렇게 혼자 자식 걱정만 하며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숨 쉬고, 먹고, 일하고, 자고, 다시 일어나고... 일상을 살며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저는 심각한 병에 걸린 적도 없고, 아직은 아이들도 좀 더 커야하고, 하고 싶은 일도 참 많고, 죽음보다는 삶을 더 많이 생각하며 시간을 채워갑니다. 하지만 엄마는 삶보다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며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채워가는 것 같습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천국일까?>의 주인공 할아버지도 우리 엄마처럼 그랬나봅니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온 가족이 할아버지 방을 청소 하는데 침대 밑에서 공책이 한 권 나왔어요. 겉에는 '천국에서 뭐 할까?'라고 적혀 있었고, 안에는 할아버지가 쓰고 그린 것들로 가득했어요.

이 할아버지도 우리 엄마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죽은 후에 '유령 센터'도 상상해보고 '환생 센터'도 상상해보고 '천국'도 생각해봅니다. 천국 갈 때는 어떤 모습으로 가야할까도 생각하고 수호천사에게 줄 선물까지 생각해봅니다. 다시 태어나면 되고 싶은 것도 생각해보구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라"(귀천/천상병)라고 노래한 시인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할아버지의 모습이 막 소풍에서 돌아온 사람 같네요.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 고향옥 옮김/ 주니어김영사
<이게 정말 천국일까?>요시타케 신스케 / 고향옥 옮김/ 주니어김영사 ⓒ 최혜정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 고향옥 옮김/ 주니어김영사
<이게 정말 천국일까?>요시타케 신스케 / 고향옥 옮김/ 주니어김영사 ⓒ 최혜정

천국도 상상해봅니다. 먼저 떠난 할멈도 만나고 유명인들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화장실에서도 멋진 경치가 보이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는 곳,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을 해주는 곳일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자신의 무덤 모양까지 상상해보며 '이런 무덤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십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자신의 삶 어떤 부분도 놓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은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받아들이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방법도 생각해 보십니다.

달이 되어, 지나가는 아기가 되어, 사과가 되어, 귀이개가 되어 목욕탕 의자가 되어, 길에서 공짜로 주는 화장지가 되어... 방법도 참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 하나하나에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있으니 할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우리 엄마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별을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할아버지의 공책을 읽던 손주는 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렸던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할아버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렸던 걸까요? 아니, 잠깐만요. 혹시 그 반대였을지도 모르죠. 할아버지는 어쩌면 죽는 게 무지무지 슬프고 엄청 무서웠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 공책에 쓰고 그린 게 아닐까요? 자꾸자꾸 즐거운 생각을 해서, 죽은 게 두렵지 않도록 말이에요.

엊그제는 엄마께 전화를 드렸더니 글을 좀 써봤다고 하십니다.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보면서요. 계속 쓰시라고 했습니다. 자손들에게 남겨질 책으로 만들어 드리겠다구요. 지나 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엄마의 남은 시간들에 소풍 다녀 온 사진을 들여다보듯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일부인 죽음마저도 편안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고향옥 옮김/ 주니어김영사
<이게 정말 천국일까?>요시타케 신스케/ 고향옥 옮김/ 주니어김영사 ⓒ 최혜정

이 그림책에 나오는 꼬맹이도 할아버지처럼 '천국에서 뭐 할까?' 공책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은 뒤의 일을 생각하려 했더니 살아있는 지금 하고 싶은 일들만 자꾸자꾸 떠오르더랍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뭐할까?' 공책과 '오늘은 뭐 할까?' 공책을 함께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하네요.

매일 매일을 '천국에서 뭐할까?'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진지하고, 조금 더 간절하고, 모든 상황에 조금 더 '가치'를 중요시 하는 판단으로 결정을 내릴 것 같습니다. 손에 움켜쥘 수 있는 것들보다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겠구요. 부모님들은 이미 그런 선택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실 지도 모르겠네요.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옮김, 주니어김영사(2016)


#이게정말천국일까#요시타케 신스케#그림책#죽음#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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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말하고. 책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독서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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