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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410호 법정에서 열린 메탄올 실명 사건 가해자 안아무개씨 선고공판이 끝난 후, 안씨(왼쪽)가 법원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410호 법정에서 열린 메탄올 실명 사건 가해자 안아무개씨 선고공판이 끝난 후, 안씨(왼쪽)가 법원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 민석기

지난달 3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410호 법정.

"피고인을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피고인에게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한다."

실형을 면한 피고인 안아무개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피해자 전정훈(35)씨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훈씨는 곧바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안씨를 만나겠느냐는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의 물음에, 정훈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해자 안씨는 정훈씨의 시력을 앗아갔다. 정훈씨는 안씨가 운영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품공장에서 일하다 독성물질인 고농도의 메틸알코올(메탄올)에 시력을 잃었다. 안씨는 정훈씨를 불법으로 파견 받아 일을 시켰고, 이 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훈씨는 시각장애 2급으로, 앞을 거의 볼 수 없다. 지난해 1월 쓰러져 시력을 잃은 뒤, 지금까지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안씨가 저지른 범죄에 삶을 빼앗긴 피해자는 또 있다. 정훈씨가 쓰러진 뒤 한 달이 지나 같은 공장에서 이진희(29)씨가 쓰러졌다. 시력을 완전히 잃고 뇌를 다쳤다.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에서 재활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몸과 마음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안씨는 두 사람의 삶을 앗아간 죗값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감옥에 가지 않았다. 정훈씨는 말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한데 집행유예를 받았다. 제대로 죗값을 받지 못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진희씨의 아버지는 "마음만 아프다.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답답하다"면서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끝나면, 이런 일이 또 벌어질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메탄올 실명 사건 피해자 전정훈씨와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가 인천지방법원 앞을 지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메탄올 실명 사건 피해자 전정훈씨와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가 인천지방법원 앞을 지나고 있다. ⓒ 민석기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판사는 왜 안씨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하지 않았을까. 판사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라는 검찰의 공소제기를 모두 받아들였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법률을 위반하여 파견근로자에게 직접생산 공정업무에 종사하도록 하였고, 메틸알코올의 위험성에 대한 보건조치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파견근로자 전정훈, 이진희로 하여금 시신경이 손상되는 등의 중한 상해를 입게 하였다. 위법하게 근로자파견을 받은 기간과 규모가 상당하다"라고 강조했다.

"피고인은 이미 메틸알코올을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는 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임에도, 그 관리와 보건조치를 소홀히 하여 근로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손해를 입도록 하였다. 파견근로자들은 근로조건이 보다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정할 수 있다는 점,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한 경종을 울릴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서 처벌의 당위성이 더욱 크다."

정훈씨는 안씨의 실형 선고를 확신했다. 하지만 그 확신은 바로 깨졌다. 판사는 안씨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를 하나씩 읊었다. "그러나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인정하면서 진지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까지 메틸알코올의 위험성에 대하여 온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한다. 피고인은 불법수익을 도모하기 위한 의사에서 범행한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고, 관행에 따른 법률상 부지(알지 못한다는 뜻)로 인하여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순간 정훈씨와 박혜영 노무사는 헛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피고인은 전정훈에게 500만 원, 이진희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는 등 피해를 입은 근로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여 곧바로 사회와 격리시키기보다는 사회 속에서 근로자들에 대한 피해 회복에 힘쓸 수 있도록 형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판사는 주문을 읽고 판결선고를 모두 마무리했다. 선고에 걸린 시간은 3분 남짓이었다. 정훈씨는 시력을 잃은 뒤 1년 5개월 동안 가해자가 죗값을 치를 날을 기다렸다. 결국 그날이 왔지만, 큰 실망만 남았다.  기자는 선고 직후 안씨를 만났다. 그의 말이다.

"지금 다 엉망인 상태인데, 이진희·전정훈씨한테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 자주 찾아뵙고 자주 전화 드리고... 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없어서 그런 건데."

 청년의 눈을 앗아간 가해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청년의 눈을 앗아간 가해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 고정미

그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안씨 선고를 끝으로, 삼성·LG전자 스마트폰 부품 업체에서 일하던 청년 파견노동자 6명의 시력을 앗아간 가해자들의 1심 재판(약식 명령 포함)이 모두 끝났다.

피해자들을 비롯한 파견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받아 공장을 돌린 사업주들은 모두 집행유예 형을 받았다. 피해자 방동근·이진희씨의 시력을 앗아간 YN테크 실제 운영주 석아무개씨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피해자 김영신·양호남씨는 덕용ENG에서 일하다 시력을 잃었다. 이 공장을 실제로 운영한 조아무개씨는 여러 파견업체로부터 파견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받은 탓에 2차례 재판에 넘겨졌다.

김영신·양호남씨의 시력을 앗아간 책임 등을 묻는 첫 번째 사건 판결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검찰은 선고 형량이 가볍다며 항소했다. 불법 파견을 다룬 2번째 사건 죗값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이었다.

안씨는 이번 선고 전, 정훈씨를 불법으로 파견받은 죗값으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약식명령은 검찰이 법원에 가벼운 범죄에 대해 서면심리만으로 벌금형 등을 내려달라고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면, 약식명령은 1심 선고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파견사업주들은 대부분 약식명령에 따라 벌금을 내는 것으로 죗값을 치렀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일부 파견사업주들은 징역 6년, 집행유예 1년을 받는 데 그쳤다.

결국 메탄올 실명 사건 가해자 그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박혜영 노무사의 말이다.

"죗값을 치르라는 말을, 이제는 함부로 못하겠다. 평생 앞을 못 볼 젊은이들이 여섯이나 되지만, 그들의 눈을 멀게 한 사장들은 구속조차 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로 인해 위험한 기업들은 알게 될 것이다. '아, 아직은 위험한 공장에서 산업재해가 일어나도 괜찮구나...'"


<오마이뉴스>는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2015~2016년 삼성·LG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 청년 6명을 조명하는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기획 기사 시리즈를 내놓았다.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연재해 1745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오는 16일 오후 3시 서울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이번 기획을 마무리하는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피해자들과 함께 박혜영 노무사,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박인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416가족합창단이 노래공연을 한다.

이 자리에서는 메탄올 실명 사건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오마이뉴스>와 노동건강연대는 앞으로도 형사·민사소송 결과 등 메탄올 실명 사건을 추적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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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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