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민란 쿤데라의 소설제목이 생각났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2010년 즈음에 소개가 되었던 책인데 소설의 줄거리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지를 두고 더 많이 친구들과 논란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순방길에 올라 미국을 다녀왔다. 미국의 어느 교포가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의미로 뜨개질로 만든 '꽃길' 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사진을 찍었다. 선물을 한 이도, 그 위에 선 이도, 그것을 보는 이도 요즘말로 그저 "므흣"한 사진이었다. 얼마만일까? 시나리오대로 이루어지는 환영이 아니라,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 반가운 마음이 솟아올라 대통령을 환영하는 기쁨이….
그 사진은 ㅈ일보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달고 인터넷에 떠돌았다.
"국민에게 받은 선물을 발로 밟은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이 마치 국민에게 받은 소중한 선물을 발로 밟는 무례를 저지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쯤에서 요즘의 언론들에게 한 번쯤, 아니 사실은 아주 집요하게 물어보고 싶다.
존재의 이유가 있나?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독자들에게 왜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그렇게 가벼워졌는지?
물론 나중에 기사 제목이 조금 바뀌기는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선물을 발로 밟은 '반전 이유'"라고. 그래도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어제(3일)는 제목을 "문 대통령, 교민에게 '꽃길 선물' 받고 즉석 퍼포먼스"라고 한 차례 더 바꿨다.
나는 오래전부터 '종이를 낭비하기만하는' 신문을 읽지 않는다. 또 '전파를 낭비하는' 방송 뉴스를 보지 않는다. 말의 길이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부디 언론들은 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이루어 낸 이 시대를 망치지 말기를 바란다. 이제 시민들이 "꽃길"만 밟을 차례니까.
※ 사진: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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