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일제 때 강제로 탄광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아서 병신이 되었고, 인간의 존엄성이란 단 한 시간도 느끼지 못했으며, 따뜻한 밥 한 숟가락 잡숫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통탄스럽다. 힘을 합쳐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았으면 한다."정용병(67, 남해)씨가 호소했다.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경남 건립 노동자추진위원회'가 5일 한국노총 경남본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의 아들인 정씨가 참석해 '억울한 사연'을 털어놨다.
정씨에 의하면, 아버지 정문조(1913~1952)씨는 일제 때 강제로 국내에 있는 진남포탄광에 끌려갔다. 그 이야기는 어머니한테서 들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새벽 건장한 청년한테 끌려갔다. 2년 동안 소식이 없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는 진남포 탄광, 막사 안에서 지냈다. 주먹밥을 먹으며 강제 노동을 당했다. 아버지는 날마다 곡괭이 자루에 날마다 맞았다. 그러다 "병신"이 되어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몇 년 동안 받아냈다. 아버지는 39세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가족들도 힘들었다. 어머니는 화병으로 54살에 아버지를 따라갔다. 큰형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다. 작은형도 머슴살이 하다 골병이 들어 49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누나는 21살에 사망했다.
정씨는 "일제 만행 때문에 대대손손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저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며 "자라면서 어머니한테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는 기가 막혔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는 일제가 아버지를 잡아 간 이유가 돈 없고 백이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당시 동네 사람들 중에 돈도 있고 글을 배운 사람들은 일본인을 매수해서 '대타'로 아버지와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한 것이라 했다"고 전했다.
정씨 아버지는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살았다. 당시 이 마을에서는 강제징용 노동자로 3명이 끌려갔다. 남해군에서만 104명이 강제징용되었다.
정용병씨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몇 해 전 같은 동네 사람의 증언을 담은 서류를 남해군청에 내기도 했지만, 아직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일제 강제징용에 간 사실은 분명한데, 일본 땅이 아니고 국내 탄광에 갔다는 이유로 보상에서 배제되었다고 하니 더 분하다"며 "명예회복을 위해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한국노총 경남본부와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경남 건립 노동자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 안에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기로 했다.
노동자상 건립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창원시 등 자치단체와 협의를 벌일 예정이다. 추진위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시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해방 72년이 지났다. 자료에 의하면 일제 강제징용은 78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우리 민족 3명 중 1명이 피해를 입었다"며 "노동자의 슬픈 역사를 기리기 위해서는 노동자상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올해 6곳에 노동자상 건립이 진행되고, 내년까지 모든 광역지자체에 한 개 이상 건립을 할 것"이라며 "나아가 북한에도 노동자상을 건립할 계획"이라 밝혔다.
김상찬 한국노총 경남본부 사무처장은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노동자상 건립에 적극 나설 것"이라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노총 경남본부 창원지부 이정식 의장과 김은겸 사무국장 등도 참석했다.
추진위는 오는 25일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경남건립 공동추진위' 발족식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