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었고 덥지 않은 가뭄이 일상이었다. '비 오면 보자'던 벗과의 약속이 어느덧 하늘에 대한 소심한 저항으로 되어갈 무렵,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헝가리 외교기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 이 책을 저역한 김보국 교수를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만나 이야길 나눴다.
- 책 제목이 길다. <헝가리 외교기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은 어떤 책인가?"헝가리 국립 문서보관소(Magyar Nemzeti Levéltár)에 1945년부터 1993년까지의 한반도 관련 외교기밀문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헝가리 외무성 등에 의하여 작성된 남북한 관련 외교문서들인데 현재는 비밀 해제된 자료들이다.
이 문서들은 대부분 평양 주재 헝가리 대사관에서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 외무성 본청으로 보고한 기밀문서들이다. 일본, 중국, 미국 등 세계 각지에 상주하는 헝가리 외교 공관들이 남북한 관련 사건에 대해 현지의 정보를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들도 함께 있다. 외교와 정치에 관련한 내용들 외에도 사회, 예술 등에 관한 문서들도 보관되어 있다.
현재까지 대략 12만~13만장 정도의 한반도 관련 헝가리 외교기밀문서들을 접했고 연구중이다. 이 가운데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문세광 사건),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등 한반도 관련 몇몇 주요 기록들을 일부분 소개하고자 책으로 엮었다."
- 헝가리 국립 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외교기밀문서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인가.
"연구 대상인 헝가리 외교기밀문서들은 헝가리 국립 문서보관소 규정에 따라, 작성된 지 30년이 지나서 기밀 해제된 자료들이다. 거의 대부분이 1급 외교 기밀문서들이다. 북한 관련 기밀문서들은 1948년부터 있다.
헝가리 외교 기밀문서들은 크게 대외비 문서들로 불리는 뛰끄(TÜK - Titkos Ügykezelesű Iratok)와 행정기밀문서(Általános Ügykezelesű Iratok)들로 분류된다. 두 가지로 분류된 이 외교기밀문서들은 내용면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예를 들어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해서 뛰끄에는 북한에서 이 사안과 관련된 공식적인 서류들이 있지만, 행정기밀문서에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당국이 선전 목적으로 러시아어로 만들었던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와 관련된 헝가리 외교 기밀문서들은 평양에 상주했던 헝가리 외교관이 취합한 정보들을 기초로 작성한 보고서들 외에도 세계 각지에 있는 헝가리 공관들이 현지의 정보들을 취합, 보고한 문서들도 함께 있다.
분량으로 보자면, 각각은 약 8:2의 분량이며, 이 외에도 헝가리 외무성 본청에서 세계 각지의 헝가리 대사관들로 보낸 문서들도 있다. 이는 헝가리 외무성이 세계 각지에서 취합한 자료를 다시 요약하여 각국 주재 헝가리 대사관으로 보낸 자료들이다.
문서 보관소에는 관련 목록들이 표식번호로 정리되어 있다. 현재 헝가리 국립 문서보관소는 임시 폐쇄중이다. 문서보관소가 다시 열리면 앞으로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 연구할 계획이다."
- 기밀 해제된 헝가리 외교 문서들은 언어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쉽지않다. 헝가리어는 어떻게 공부했나.
"한국외국어대학교 헝가리어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이전에도 헝가리에 다녀오긴했으나 본격적으로 헝가리에서 공부하기 시작한건 1999년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ELTE)에서 헝가리 현대문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헝가리어라는 소수언어로 씌여진 자료들이기에, 본인 외에 헝가리 국립 문서보관소에 출입 허가를 받은 연구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전 일본 동경대학교 박사 과정생이 연락을 해왔는데 한반도 자료들을 연구하는 분이었다. 이미 한국어를 잘 하는 분인데 본인의 연구 과제와 관련, 더 많은 자료를 얻기위해 헝가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헝가리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남북한 관련 외교문서들을 연구하며, 중국, 일본에 관한 상당한 자료들도 확보하고 일부는 해제를 시작하였다. 물론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도 현지에서 가끔 만나는데, 헝가리 외교문서에 관한한, 한국에서 중국과 일본보다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 헝가리 외교 기밀문서들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난처했던 일은 없었나."헝가리에서 강의를 할 때, 청강을 하던 헝가리 친구를 통해 기밀해제된 헝가리 외교 문서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사회주의국가였던 헝가리에 아직 관료주의적 색채가 남아있던 터라 문서보관소 출입 허가증을 받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출입 허가를 받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연구를 시작할 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헝가리가 여전히 사회주의 시절이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자료들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자료와 끊임 없는 대화의 과정이 제일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2010년 8월 한국에 귀국한 후에도 연구를 이어갔다. 연구 지원을 받기 전까지는 오로지 혼자, 연구에 필요한 경비도 당연히 자비로 마련해야 했다. 늪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늪에 빠지고 있다는 줄 알면서도 행복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원장 진재교)에 소속되어 있는데, 교육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토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다(연구책임자-성균 중국연구소 이희옥 소장). 1948년부터 1956년까지의 기밀 해제된 헝가리 및 불가리아 외교기밀문서들을 DB로 구축하고 있다.
- <헝가리 외교기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 이 책에는 남북한 관련 11개의 목차가 있다. 그러나 아직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외교 기밀문건들도 많을 것 같다."물론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상당한 분량의 자료들이 있다. 지금도 관련 자료들을 계속 입수하고 있기도 하다. 외교문서 외의 자료들 및 헝가리를 벗어난 동유럽 다른 국가들에까지 자료 입수의 대상 국가들을 늘리고 있다.
동유럽 지역은 특히 체제 전환의 모든 케이스가 집약적으로 발생했던 지역이다. 또한 북한과 오랫동안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남한과도 꾸준히 교류를 이어왔던 지역이다. 정치적으로 조금 민감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내용에 대해 일종의 '자아검열'로 차후를 기약한 연구 주제들도 꽤 있다.
이제 조금씩 편견 없는 논의의 장으로 올리고 싶은 생각이다. 또한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은, 어쩌면 의도된, 남아있어야 할 필요성에 의해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 '남아 있지 말아야 할 기록들'도 합리적으로 유추해보는 작업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내용을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첨언하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01_ 당포함 격침 관련 자료 해제02_ 이수근 귀순 관련 자료 해제03_ 1968년경에 발생한 일련의 무장공비사건 관련 자료 해제04_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문세광 사건) 관련 자료 해제05_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관련 자료 해제06_ 남한의 핵발전소 관련 자료 해제07_ 10·26 사건 관련 자료 해제08_ 12·12 군사반란 관련 자료 해제09_ 베트남의 남한 포로 석방 관련 자료 해제10_ 5·18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 자료 해제11_ 아웅 산 묘역 폭탄 테러 사건 관련 자료 해제저자 약력(저자 소개에서 발췌)한국외국어대학교 헝가리어과 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 졸업헝가리 데브레쩬 소재 데브레쩬 대학교(DE) 수학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ELTE)에서 박사학위 취득 (헝가리 현대문학)(전) 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 한국학과 전임강사(전)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러시아 & 중동부유럽학 연구소 Visiting Scholar(전)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현) 서울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에지뻬르쩨쉬 단편집(Egyperces Novellak)의 번역 관련 문제와 대안적인 번역 방법에 대한 연구], [문학작품 번역에 있어서 메타번역의 가능성 연구] 등 다수의 문학 관련 논문들과 [탈북 디아스포라 발생의 새로운 시기: 구 사회주의 권역에서 1950년대~1960년대의 상황], 다수의 헝가리 국립 문서보관소 소장 남북한 자료 관련 논문 게재.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헝가리어 번역,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헝가리어 번역, 나더쉬 삐떼르(Nadas Peter) 소설, <세렐렘>(Szerelem) 한국어 번역, <Metaegyperces>, <남북한 관련 헝가리 외무부 기밀 외교문서 목록집>(1945-1993), <헝가리 외교문서로 본 북한의 문예>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출판(헝가리어 및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