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건데, 시설 밖으로 나온 사회가 이 모양이네요. 사실, 그간 갈 곳 없어 발을 딱 붙이고 서야 하는 작은 섬에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지난 6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탑산초등학교에서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하지만 행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장애인 학부모가 토론에 참여하는 데 반발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선 토론 대신 고성과 욕설,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장혜영(31)씨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지루할 정도로 비슷한 일이 반복돼서 화가 난다. 어떻게 이런 사회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하는 프로젝트처럼, 누군가와 연대해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시설 밖에서 장애인이 살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 유튜버로 활동하는 장혜영씨는 지난 6월, 13살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해온 동생 혜정(30)씨를 퇴소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자신과 동생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제작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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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통제, 방임으로 점철된 18년, '탈시설'을 꿈꾸다
"동생이랑 같이 살지 않을 때는 정말 사는 게 떠다니는 것 같았어요. 멀쩡하게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는 것 같지만 뿌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계에 혼자 뿌리 내리면 혜정이의 세계에서 제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서른 살 동생은 "어른이 되면"이란 말을 습관처럼 했다. 동생이 무언가를 원할 때 주변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둘러댔기 때문이다. 같은 집에 태어나, 고작 한 해 더 살았을 뿐인데 발 딛고 있는 공간에 따라 혜영씨와 혜정씨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언니가 NGO 단체 활동가, 영상 제작자, 프로젝트 기획자, 유튜버 등으로 활동반경을 넓혀가는 동안 동생은 통제와 순응을 강요하는 장애인 시설에 머물렀다. 한 달에 한두 번, 동생을 만나며 혜영씨는 "세계의 절반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느낌"을 받았다. 사회는 동생이 머무는 공간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다.
"동생이 18년간 시설에서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어요. 그중에 하나가 3년 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시설에서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지금처럼 동생을 케어하지 않았으니 잘 몰랐죠. 그 문제를 통해 시설 안에서의 '돌봄'이라는 게 격리, 방치, 통제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이 터지고 곧바로 시설 생활을 정리하자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다. 혜영씨는 한동안 학부모회장으로 활동하며 인권침해 사례를 공론화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지난 6월, 혜정씨를 서울로 데려왔다. 동생을 만날 때마다 직접 목욕시키며 몸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일도, 다음 통화 날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일도 더는 필요치 않다.
고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시설은 혜정씨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터전이기도 했다. 혜정씨가 시설 밖의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혜영씨는 "'동생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인간다운 삶'에 대해 재차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동생을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고유한 환경의 일부"라고 바라보며 공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혜영씨는 동생이 '탈 시설'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께 살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일부러 그녀와 동행했다. 처음엔 "새로운 시설에 가는 거냐"고 묻거나 화장실 갈 때도 일일이 허락을 맡던 혜정씨도 자연스럽게 시설 밖의 삶을 익혔다. 낯선 사람을 봐도 제법 쾌활하게 이야길 나누고, 좀 더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에겐 "할아버지 고향까지" 물어본단다.
"어느 날 뜬금없이 '나 퇴소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퇴소가 뭐야?'라고 되물으니, '시설에서 나오는 거'라고 정확하게 뜻을 설명했어요.(웃음)"물론 시설을 나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꾸려져있다. 복지 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혜영씨가 일하는 낮 시간 동안 혜정씨를 주간보호시설에 맡기기 위해선 '서울 거주 6개월 이상'이라는 자격을 갖춰야 했다. 혜정씨는 그간 경기도에 있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 살았기 때문에 바로 복지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 당장 혜정씨에겐 혜영씨가 있었지만, 돌봐주는 가족 없이 자립을 꿈꾸는 이들에겐 아득한 일이다.
결국 혜영씨는 잠시 일손을 놓고 혜정씨 곁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두 자매의 '생존' 일기이자, '어른'이 되면 그토록 하고 싶던 일을 하나씩 이뤄가는 '성장'일기를 찍는 셈이다.
'신파' 아닌 생존 일기, 그리고 자립을 위한 여행
다행히 혜정씨는 카메라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혜영씨가 책 리뷰 영상 등을 올리며 꾸준히 운영해온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 구독자들도 혜정씨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지난해 말, 혜영씨는 동생과 떠난 일본 여행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신파는 너무 싫고,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아요.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었어요. 그런데 또 설명이 길어지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건 싫었습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여행 브이로그(블로그 글 올리듯 찍는 영상)나 먹방 같이 단순한 영상이 많더라고요. 다른 요소는 다 같은데, 그 영상에 단지 발달장애인이 등장한다는 걸 설명 없이 던져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한번 실험해본 건데 반응이 좋았죠. 발달장애인,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캐릭터가 너무 없어요. 저희 이야기가 캐릭터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채널 구독자들 반응을 보면)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영상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원래는 브이로그만 생각했고, 다큐 제작까지 생각하지 않았죠."혜영씨는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유튜브 채널에 매주 1회씩 일상 브이로그를 올리고 있다. 미용실 방문기 등 동생과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여기에 장애인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장애 당사자나 그 가족들을 만나는 과정을 덧대 약 1시간 가량의 다큐멘터리로 완성할 예정이다.
"'자립'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서 세상에 다시 없는 존재로서 '자기다움'을 위한 여행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중략) 막연한 슬픔 대신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저의 사랑하는 동생, 그리고 동생과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나가려 합니다." - 텀블벅 프로젝트 소개글 중에서
이런 시도에 목말랐던 이들이 많았던 걸까. 벌써부터 다양한 피드백이 나온다. 한 시청자(@harr****)는 SNS에 "잠들기 전 엄마에게 생각많은 둘째언니님의 '어른이 되면' 텀블벅 프로젝트 내용을 읽어드렸다. 우리도 또한 발달장애인의 가족으로서 생활해온 모습이 너무나도 공감됐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며 "읽는 내내 엄마와 함께 울었다"는 평을 남겼다. 얼마 전엔 장애인 가족을 둔 비장애인 자조 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모두가 주변에 장애인 하나 없는 듯한 얼굴로 살아가니까... 세상에서 혼자 이런 일을 하는 것 같았는데 당장 '나 여기 있다'고 손을 드는 순간 '어 나도인데' 하면서 나타나는 분들이 있어요. 우리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죠."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2018년 2월 말 완성을 목표로 잡고 제작 중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다. 우선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한 소셜 펀딩에 성공해야 한다. 현재 목표 금액은 5천만 원. 다섯 명의 스태프와 함께 짜임새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다. 11일 기준, 총 241명이 후원에 참여했고, 약 1200만 원이 모였다. 당장은 경제적인 부분부터 "모든 게 문제 투성이"인 상황. 그렇지만 혜정씨의 표정에서 조바심이 읽히진 않았다.
"하면 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가야죠. 최종적인 과제는 동생하고 같이 가는 거니까요. 남은 삶은 동생하고 같이 간다. (웃음) 동생의 든든한 첫 번째 관계가 되는 거, 이게 끝까지 이어지면 성공인 거죠. 제가 전하고 싶은 얘기는 늘 같아요. 누군가 '발달장애인 얘기를 하겠다'고 하면 시작이 어렵더라도 '혜정씨 이야기도 있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런 얘기를 계속 줄기차게 해나가고 싶어요. 저는 이런 종류의 막막함을 즐기는 타입이에요. 정해진 길은 없잖아요. 자신감 있게 선례를 남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