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값은 얼마쯤 할까요? 아마 악기를 장만해 보기 앞서까지 모르겠지요. 저는 국민학교라는 곳을 다닐 무렵 학교 앞 문방구에서 리코더를 장만한 뒤로 딱히 악기를 장만해 보지 않았습니다. 악기하고 제가 죽이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학교 수업으로 있는 음악 시간에는 우리가 노래를 즐기도록 북돋우지 않았어요. 오직 시험점수로만 따지면서 주눅이 들게 내몰았어요.
곁님하고 살림을 꾸리면서 리코더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알토 리코더하고 소프라노 리코더가 있고, 리코더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악기가 있고, 우리 겨레 오랜 악기인 단소는 나무뿐 아니라 옥으로 빚기도 하더군요.
플라스틱 악기는 플라스틱이라는 결이 있다면, 스텐이나 옥이나 나무는 저마다 다른 소릿결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소릿결을 학교에서는 느끼기 어려웠어요. 더욱이 스스로 악기를 켜거나 불거나 타거나 뜯거나 치는 즐거움을 학교 음악 교육에서는 아이들한테 느긋하게 가르칠 겨를이 없기도 했습니다.
"용아, 너 방금 일어났구나. 이제 뭐 할 거야?" 조금 전부터 고도프레드를 지켜보던 꼬마 들국화가 물었어요. (10쪽)
어디선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어요. 고도프레드는 먹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지요. 어떤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아, 정말 고운 소리야!" (16쪽)피아노를 장만하던 날을 떠올립니다. 피아노는 돈이 많은 사람들 집에나 있는 악기 가운데 하나로만 여겼으나, 헌 피아노라면 백만 원 남짓 들이면 장만할 수 있더군요. 백만 원 남짓 이르는 돈이 적다고 할 수 없으나 여러 달 푼푼이 모으거나, 한두 해 살림을 아끼면 피아노 한 대를 들이는 일도 할 만하더군요. 피아노는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무렵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한테 재미나며 살가운 놀잇감이자 악기로 늘 곁에 있어요.
그리고 바이올린도 장만했어요. 피아노처럼 바이올린도 헌 악기로 장만할 적에는 값이 매우 눅습니다. 어린이가 처음 소릿결을 익힐 적에 쓰는 헌 악기라면 더욱 눅은 값이고요.
이렇게 곁님하고 아이들이 누릴 악기를 하나씩 천천히 장만하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저도 저한테 악기를 선물하고 싶어요. 저도 제가 누릴 악기를 갖고 싶어요. 한참 헤아린 끝에 저는 저한테 북을 선물하기로 합니다. 나무랑 가죽을 쓴 북으로 장만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북을 치면서 가슴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릿결을 느껴 봅니다.
고도프레드는 한 번만 연주하게 해 달라고 지휘자를 졸랐어요. 결국 바이올린 연주를 허락받았지요. 하지만 활로 바이올린을 켜자마자 줄이 힘없이 끊어져 버렸어요. 지휘자의 말은 정말이었죠. (20쪽)"네가 그렇게 슬프기만 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도 마음이 아파." 다른 들국화들도 고도프레드를 다독였지요. (36∼37쪽)어린이문학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책속물고기 펴냄)를 읽으면서 악기와 삶과 꿈을 나란히 떠올립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긴 잠에서 깨어난 용한테 들꽃 한 송이가 넌지시 말을 걸면서 첫머리를 열어요. 긴 잠에서 깨어난 용은 딱히 무엇을 하겠노라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들꽃은 용한테 '긴 잠에서 깨어났으니 이제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어요. 용은 이 물음을 듣고는 깜짝 놀라요. '그래, 긴 잠에서 깨어나면 스스로 꿈(하고픈 일)을 찾아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지요. 꿈에서 깬 뒤에 꿈을 찾는다고 할까요. 잠에서 깨었으니 새로운 길을 걷는다고 할까요.
운동선수도 고도프레드에게는 맞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고도프레드의 마음속에는 바이올린 생각뿐이었지요. (44쪽)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에 나오는 용은 막 잠에서 깨어나고서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어느 아이가 켜는 바이올린 노래를 듣고는 흠뻑 사로잡혀요.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픕니다. 들꽃은 용을 북돋우는데, 들꽃을 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용을 말려요. 그러고 보니 이 작품에는 용하고 들꽃하고 사람들이 나오네요. 들꽃은 용이 기운을 내도록 돕고, 사람들은 용이 하는 일마다 '안 돼!' 하면서 가로막네요.
용은 이 일도 저 일도 가로막힐 뿐 아니라, 도무지 이 땅에서 살아갈 뜻을 못 찾아요. 용은 이것도 저것도 저한테는 안 어울린다고 여기면서, 참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는 하루를 보내요.
사람들은 왜 용한테 '넌 바이올린을 켤 수 없어!' 하고 잘라서 말해야 했을까요? 용한테 맞춘 커다란 바이올린을 마련해 줄 수는 없었을까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장만하면서 살피니, 어린이한테 맞춤한 작은 바이올린이 있고, 어른한테 맞춤한 조금 큰 바이올린이 있어요. 그러니 용한테 맞춤한 커다란 바이올린도 얼마든지 짤 만하지요.
"참 신기한 소리네! 난 저 바이올린이 정말 좋아!" 고도프레드가 말했어요. "바이올린이 아니야. 저건 콘트라베이스지." 옆사람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뭐라고요? 콘트라베이스요?" 콘트라베이스는 고도프레드만큼 커 보였어요. 고도프레드가 용인데 말이에요. (52∼53쪽)
꿈을 품는 아이나 어른이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루고 싶으며 하고 싶은 길을 누구나 즐거우며 씩씩하게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것 때문에 안 되거나 저것 때문에 못 한다고 울타리를 쌓지 않으면 좋겠어요.
용도 바이올린을 켤 수 있기를 빌어요. 바이올린이 아니라면 다른 악기를 용이 만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피리도 피아노도 좋지요. 콘트라베이스도 기타도 좋지요. 북도 좋고 장구도 좋아요.
어느 악기가 되든 마음껏 누리면서 새로운 소리나 노랫가락을 깨우면 좋겠어요. 어느 악기를 타거나 켜거나 뜯거나 불거나 치든, 늘 즐거운 꿈을 사랑스레 지피는 길을 저마다 신나게 펼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루이사 비야르 리에바나 글 / 클라우디아 라누치 그림 / 이선영 옮김 / 책속물고기 펴냄 / 2017.6.20. /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