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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의 대외 정치는 순조로운 듯하다. 2주 내내 미국과 독일을 연일 순방하며 정상외교를 펼쳤는데, 중심 정책인 북한 문제에서 당사자의 반응도 나왔고, 그리 나쁘지 않다. <노동신문> 한 면을 할애한 북의 입장은 비판 일색이기는 하나 6.15와 10.4 등 남북 합의에 대한 존중을 들어 긍정도 일부 포함됐다.

북한의 어법을 감안할 때, 이는 대화 가능 신호인 만큼 정부로서도 적극적이면서도 긍정적인 태도가 요청된다. 그렇다면 국내 정치는? 단연 화두는 '협치'(協治)인 듯한데, 꽉 막힌 여의도발 협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기연정'의 앞선 발상을 배운다면

'경기연정'. 경기도 민생연합정치를 줄인 말이다. 스스로가 '상이한 정치세력간의 협력적 공동정부운영 행태'라 했으니 말 그대로의 협치(協治)에 다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연정은 까다롭다. 무엇보다 정책 합의가 필요하고 그에 기초해 권력분점, 즉 조직권과 예산권 등 집행권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도지사와 다른 정당 소속인 연정부지사도 있고 그 밑에 연정협력국도 있어 실행을 보장하는 데다가 여야 정치세력들의 협의체인 연정위원회도 운영 중이다. 특이한 점은 연정부지사와 연정위원장, 여야 도의원, 민간 전문가가 모여 재정전략회의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집행부와 의회가 예산 편성단계부터 협의하는 별종의 시스템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 경기도

그런데 여의도에서 '협치'를 말할 때 이는 분명 연정 수준은 아니다. 행정부도 연정이 아니라고 명백히 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협력과 동반자적 관계가 여의도 '협치'라 할 것이다.

협치는 원래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이지만 '함께 다스린다'는 사전적 의미로 인해 거버넌스의 이상적 모델인 협력적 거버넌스(collective governance) 중에서도 가장 상위의 거버넌스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협치는 연정(聯政) 정도가 될 때 쓸 수 있는 개념어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경기도의 협치는 연정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진술은, 옳다.

경기연정은 민생을 목표로 해서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중앙정부가 충분히 고려할 여지가 있다. 가치의 측면에서 근접한 영역에서 정책합의와 권한 분점을 시도해 볼 만하다.
 
최저임금제 합의와 서울시의 노사정 협의체 모델

반가운 신호는 2018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합의다. 7530원. 노동계의 수정안이기는 하지만 경영계 또한 7300원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의 힘은 커 보인다. 노동의 가치에 공감했기에 가능했다. 이제 해묵은 노사정(勞社政) 문제에서도 기대가 생긴다. 책임지는 사측의 부재, 견인하는 정부의 무능이 겹쳐 유명무실해진 여기에 대안이 보이기 때문이다. 출발은 정부의 태도일 텐데, 이 모델에 가까운 것이 서울시의 노사정협의체다. 

 지난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근로자 측 위원들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근로자 측 위원들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시의 노사정협의체는 박근혜 정부 당시 매우 민감한 갈등 사안이었던 성과연봉제 문제를 잘 풀어내면서 주목받았다. 지방정부의 관점이 '노동 존중'이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시는 공동경영 수준인 노동이사제까지 앞서갔다. 투자, 출연기관에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중앙정부로서도 공기업에서 시작해야 하는 만큼 해 볼 만한 시도일 것이다.

왜 서울시의 '찾동'을 주목하는가?

협치를 떠올리게 하는 더욱 빈번한 얘기는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아래 찾동)에서 나온다. 찾동은 복지와 자치의 결합 모델이다. 복지 쪽에서는 '현금 얼마'식 지원이 아니라 전인적 관계에 기초한 촘촘한 복지건강 안전망이 필요했다. 자치 쪽에서는 주민을 공공의 주요한 행위자로 세워야 했다. 이 둘을 합쳐 사람이 살 만한 자치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협동 능력이다. 자치행정과, 복지정책과, 건강증진과, 지역공동체담당관, 여성정책담당관이 이 사업에 관여되어 있고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 민간 기관도 결합했다. 그들 사이에 회자되는 신화적인 얘기 하나.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30분에 열리는 합동연석회의가 2017년 3월 31일 기준으로 78차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소통, 이해, 인내, 믿음을 쌓아간 거기에 성공의 비결이 있었던 것이다. 

 성수2동 찾동 마을계획 워크숍에 참석한 박원순 시장이 마을경제분과에서 토론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성수2동 찾동 마을계획 워크숍에 참석한 박원순 시장이 마을경제분과에서 토론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중앙정부가 찾동 모델에 주목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제한적으로 읽힌다. 그간 보건복지부와 행정자치부가 공동으로 시행하고 있던 읍·면·동 복지 허브화 사업에 '고용'을 얻는 계획이다. 서울시에서 동주민센터에 복지공무원과 마을 간호사를 배치한 점을 주목하여 고용에 포커스를 맞추는 발상이다.

그러나 역시 주민의 자치 역량을 믿고 권한을 이양해 가는 문제를 제대로 봐야 협치를 이해한다 할 수 있다. 마을계획을 들여다보라는 얘기다. 마을 계획은 주민 스스로가 만들어간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결정 형식 안에서 콘텐츠도 다양하고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포괄성과 확장력이 있다. 그렇게 세워진 계획에 행정은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다. 아직은 미정이지만 이러한 근린 차원의 주민 자치의 정점에 동장직선제까지 얹어진다면 찾동은 자치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탈핵에도 협치가 있다

협치 능력이 국가 정책 분야에서 도드라지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원전 문제다. 깨끗하고 값싸고 안전하다는 원자력 신화가 이미 무너진 조건에서 마침내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가 결정됐고, 추가로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도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은 이 문제를 사회적 공론으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공급자의 관점에서는 전력수급 불안과 전기요금 상승론이 대두되고 있다. 수요 관리도 중요한데, 이 지점에서는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19일 0시를 기해 영구 가동 정지에 들어간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지난 6월 19일 0시를 기해 영구 가동 정지에 들어간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 정민규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5년은 336만TOU(석유환산톤)의 절약 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원전 1.8기에 해당하는 용량이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성과는 실제 에너지 소비 감축량이라기보다는 수요예비대상 감축량으로 파악되는데, 그렇기에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은 시민들의 참여에 핵심 동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도 이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는 2016년 기준으로 337만 명에 달한다. 그들 시민들이 태양광을 설치하고 주택을 에너지 저감형으로 바꾸고 운영 차량을 줄였다. 이러한 시민참여 운동이 마을공동체 단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에너지 자립마을이다. 에너지를 적정하게 쓰고 관리하면서 줄여나가는 것에 답을 찾는 이 운동은 소비자인 시민들의 참여속에서만 가능한 전형적인 협치형 운동이다.

 지난 6월 5일 원전하나줄이기 5주년 기념식 당시 모습.
지난 6월 5일 원전하나줄이기 5주년 기념식 당시 모습. ⓒ 서울시 제공

물론 이러한 시민참여 운동이 에너지 공급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에너지 공급의 시간을 견디는 힘은 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현재 한국의 전력생산 설비 상태로도 최대전력 수요 지점만 관리한다면 5년은 견딘다는 보고다. 중앙정부의 에너지 수급관리와 지방정부의 시민참여형 에너지 저감운동은 충분히 호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혜를 모아야 문제를 풀지 않겠는가

협치는 현대사회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제기됐다. 고령화 문제, 일자리 문제, 안전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데, 이 문제를 풀자면 정부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정책의 효능감을 느끼는 대상자, 당사자들이 참여해야 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들이 동원되어야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 협치다. 이렇게 협치는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협치를 키워가는 현장, 서울시라면 어떨까? 서울시는 2017년 7월 5일부터 7월 24일까지 다섯 차례, '공무원이 공무원에게'라는 제하의 '협치 서울 공공토크'를 시작했다. 강연자로는 류경기 제1부시장을 비롯하여 정무부시장, 도시재생본부장, 재정기획관, 혁신기획관 등 책임 공무원들이 나섰다. 왜 이러는 것일까?

 류경기 행정1부시장이 '협치'를 주제로 후배 공무원들에게  31년의 공무원 경험을 나누고 있는 모습.
류경기 행정1부시장이 '협치'를 주제로 후배 공무원들에게 31년의 공무원 경험을 나누고 있는 모습. ⓒ 서울협치추진단

박원순 시장의 임기 모두를 협치 시정으로 본다면 6년 시간이지만 여전히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협치는 낯선 언어라는 점이 이 기획의 동기다. 그 낯섦에 대한 공무원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다음의 진술이다.

"협치란 시민이 결정하고 공무원이 책임지는 것이다."

이 얘기는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진다'는 협치의 일반론을 무색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로서는 협치하는 현장을 다시 살피고 있는 셈이다. '협치는 관계하는 방식의 혁신'이라는 이 기획의 목표가 어떤 결실을 얻을지 지켜볼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 탄생 과정부터 촛불시민의 힘에 기반해 있는 새로운 정부라는 점에서 시민의 창의력을 꺼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촛불 시민의 참여 활성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관건은 광장의 민주주의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바꾸는 일이다. 시민의 일상이 이뤄지는 곳, 그곳에서 참여하는 것이 제도화의 출발이다. 바로 자치의 현장인 지방정부다.   

"혁신과 협치는 '사람 특별시 서울'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개의 날개입니다. 비정규직 문제, 도시재생 문제, 원전 문제, 석탄화력발전소 문제 등에 혁신적 사고로 접근했습니다. 이런 정책은 어느 것 하나 주민 협의와 토론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난한 논의의 결과물입니다. 각종 정책 자료에는 몇 번의 회의를 거쳤는지가 반드시 적혀 있습니다. 협치입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관련 기사 : [인터뷰] 박원순 "민주당, 지지율 1위 자만하지 말고 당 체제 혁신해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현곤님은 서울시 협치전문위원으로 사단법인 시민 이사입니다.



#협치#문재인#박원순#서울시#경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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