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배하는 땅, 굽이치는 광활한 대지, 지구상 가장 넓은 사막. 열사 위로 내리쬐는 태양열에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점차 동력을 잃어갔다. 모두가 나를 '미친놈' 취급 했지만 나는 기어코 이 곳 사하라에 발을 들였다.
거친 모래바람이 방향을 잃고 거세게 몰아쳤다. 모래 능선이 쇳소리를 품은 바람에 맥없이 꿈틀거리며 뒤로 밀려갔다. 레이스 4일째 정오, 모래와의 사투 끝에 빅듄을 기어올라 가관인 몰골로 정상에 섰다.
어린 시절 내겐 두 가지 꿈이 있었다. 하나는 화가, 또 하나는 제임스 본드 같은 국제적인 첩보원이 되는 거였다. 서로 연관성도 없고 성격도 다르지만 나는 이 두 꿈의 실현을 위해 꽤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꿈은 모두 무산됐다.
어른이 되면 아주 특별한 인생을 살 거라 기대했지만 결국 먹고 사는데 급급해야 했다. 세상의 쓴맛과 현실의 무서움을 겪고 나서 적지만 따박따박 월급 받고, 정년 보장된 9급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 꿈은 접히고 더는 아무 꿈도 품지 않았다. 대신 성실한 직장인으로, 가장으로, 그렇게 보통 남자로 살아갔다.
그러던 2001년 가을 어느 날, 휴일에 남편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위기는 기회다? 아니다. 무료함 속엔 엉뚱한 발상이 떠오른다. 별 감흥 없이 브라운관에 그저 눈만 주고 있는데, 프로그램이 바뀌면서 화면 가득 황량한 사막이 펼쳐졌다. 카메라가 지면을 향해 서서히 클로즈업 되자 멀리 짐승처럼 보이던 물체가 사람이었음이 드러났다. 장딴지에 힘줄이 불끈 선 한 무리의 선수들이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가슴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들었다. 굳게 잠긴 빗장이 '삐걱' 하고 풀린 느낌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그 두근거림은 격한 압박으로 변했다. 사막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그 기분은 가을이 다 지나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겨울이 오자 가슴앓이는 막연한 꿈으로 그려졌다. '그래, 저길 가는 거야~. 사하라 사막에...' 청춘을 지나 중년의 목전에서 현실의 무게 눌려 사그라졌던 꿈과 열정이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는 거짓말처럼 사하라 사막 아주 깊은 곳에 있었다.
종일 내 무릎 꿇리려 안간힘 쓰던 태양이 제 풀에 지쳐 모습을 감췄다. 끝없는 사구지역을 뒹굴다시피 달려 빅듄 정상에 올라서서 장엄한 사하라를 가슴으로 품었다. 온 몸은 흙먼지와 땀으로 찌들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하지만 내 안의 열정은 태양보다 뜨겁게 들끓었다. 광야 건너편 계곡 모서리에 걸친 저녁노을을 각막에 담았다. 사막에 한 번도 와 본 적 없지만 나의 현장 적응력은 뛰어났다. 잠시 머뭇거리다 웃음을 머금은 채 저녁노을을 향해 다시 내달렸다.
알에서 깨어난 공룡은 처음 눈길을 마주한 대상을 어미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간 많은 사막과 오지를 넘나들었지만 지도책에서만 보아왔던 사하라와의 첫 대면의 기억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 발발과 괴질 사스(SARS)의 창궐로 전 세계가 흉흉했던 2013년 4월, 카사블랑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오금이 늘어나는 통증을 안고 달리고 또 달렸다.
사막의 밤에 흙먼지와 콧물로 뒤범벅이 된 채 길을 잃고 헤맸다. 5박 7일 동안 243km를 달려 일상의 관문인 피니쉬라인으로 다시 들어섰을 때의 감흥을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사하라를 다녀와 일상에 남겨진 나는 한 동안 남은 이해 못할 열병을 앓았다. 내 인생에서 사하라 사막은 어떤 의미일까. 빈손으로 갔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안고 돌아온 건 분명했다. 나의 40대는 직장인과 모험가라는 두 축이 공존했다.
한 번 맺은 사하라와의 인연으로 15년째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렸다. 지금도 온신을 다해 달리고 있다. 마력에 빠진 것이다. 거친 대자연 속에 온전히 나를 맡겼다. 극한의 한계를 넘나들수록 나는 더 강해졌고, 감나무 홍시처럼 내 안의 내가 무르익었다.
동네 한 바퀴, 중랑천 변을 달리다 열정 하나로 사하라를 넘었다. 사하라는 내 삶의 축을 뒤흔들어 버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생. 그 열정은 직장으로 뻗쳐 2007년 공무원 최고의 영예인 청백봉사상을 수상했다. 남들 앞에 서는 게 죽을 만큼 두려웠던 나는 우연히 사막 이야기를 들려주다 대한민국 명강사(128호, 한국강사협회)의 칭호를 얻었다. 매 순간이 영광의 순간이었지만, 단연 최고의 순간은 사하라 사막에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이다.
터키의 서정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에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라는 시구를 남겼다. 그는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그의 가치는 가장 마지막에 쓴 기사라고 했다.
유난히 무더운 2017년 여름, 무턱대고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주로에서 엄청난 고통의 5시간을 보내야 했다. 왕년의 기록만 믿다 자만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어디 그뿐인가.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도 제대로 된 훈련 없이 갔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히말라야 임자체 정상(6189m) 목전인 5895m 설선면에서 마저 오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건 여전히 마음 한 켠에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엔 주체할 수 없는 갈급함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그렇구나.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준비하는 현역이다. 나는 '런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