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석했던 백남기라는 이름의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급하게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까지 받았으나 중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로 계속 사경을 헤맸다. 그러다 작년 9월 25일, 결국 백씨는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공권력에 의한 시민의 죽음이라는, 민주화 이후로도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어온 꾸준한 비극이 다시금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한 정권의 대응 역시 꾸준한 레퍼토리의 반복이었다. 백씨가 입원한 직후 그의 관계자들이 제기한 과잉 진압 책임자들에 대한 고발은 거의 1년이 지날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극우 포털 사이트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빨간 우의 가격론', 즉 누군가 백씨를 구타한 뒤 물대포에 의해 사망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음모론이 몇몇 논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니, 급기야 정치권에서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백씨 유족의 사생활과 인적 정보를 캐낸 뒤 그것을 바탕으로 인신 공격을 자행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강정인 교수의 <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는 한 인간의 '죽음'이 어떻게, 그리고 왜 왜곡당하고 은폐되는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한때 정치적 이유로 인한 시민의 죽음은 사회에 '중압감'을 가져다 주었다.
분야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시민들의 각성과 행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죽음의 정치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91년 5월 투쟁과 '잊혀진' 죽음들
1991년 5월의 항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지어 직접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에게도 "'잊힌' 또는 '잊히고 싶은' 기억" 이다. 그 이유는 60년의 4월 혁명, 혹은 87년의 6월 항쟁과 달리 당시의 투쟁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80년 광주의 비극처럼 특정한 상징성을 획득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렇기에 당시 91년 항쟁은 6월 항쟁 이후 이번 탄핵정국 이전까지 최대 규모의 민주, 반독재 시위였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외면받고 말았다. 91년 항쟁이 초기의 맹렬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큰 실패로 끝난 데에는 강력한 외부적 요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정부의 개입 그리고 왜곡이다. 책의 저자 강정인 교수에 따르면, 당시 항쟁의 시발점은 시위에 참여했던 한 사민의 진압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여러 사람들의 '분신 항쟁'을 낳았다.
노태우 정부는 이전과 달리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려 하지 않았다. 대신 언론을 동원한 여론전을 전개했다. 사건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대신 죽어나간 시민들의 '신상'을 퍼뜨리는 데에 집중한 것이다.
죽어나간 이들이 순수한 시민이 아니라 '강성 운동권' 출신이며 그들의 죽음이 '기획된' 혹은 '(집단에 의해) 조장된' 것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적극 퍼뜨려 나간 것이다. 여기에 보수 언론이 적극 앞장섰음은 당연하다.
시의적절하게 노태우 정부는 분신 자살한 이들의 유서까지 조작해 공개하는 행보를 보였고, 이를 통해 시민의 죽음이 가지는 순수성을 무너뜨렸다. 대신 그 자리에 정치적 공방전을 위한 판을 깔아 두었다.
김지하와 같은 유명 문인, 식자층이 나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일갈하며 죽음의 가치를 비난하자 금방 승세는 결정되었다. 여론은 연이은 죽음과 정치투쟁이라는 불편한 이슈에서 눈을 돌리기를 선택했고, 결국 이후 민자당 정권은 안정화 되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결국 당시 정권의 권위주의와 반민주에 맞서며 스스로를 내던졌던 이들은 그 행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여론이 외면하자 민주진영에서도 이 사안을 더 이상 꺼내려 하지 않았고, 결국 20여 년이 지나 당시의 실상이 밝혀진 뒤에도 여전히 침묵된 상태로 남아있다.
너무나 약한 진실과 너무나 강한 현실들이처럼 '진리/진실'이 현실 정치에 의해 왜곡되고 편집되는 일이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님에 저자는 주목한다. 책의 여러 지면을 통해 6.25 사태를 다룬 김은국 문학의 탁월함이나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할리우드식 반전영화의 허구성 등에 집중하며, 현실의 편의를 위해 마음먹고 덤벼들었을 때 사실이 얼마나 쉽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대하는 오늘날 기성층의 태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으나, 그것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반응을 낳았다. 그 죽음에 분노하며 공권력의 행동을 비판, 사과를 요구하는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그 죽음이 과연 순수한 죽음이었는가, 기획된 것은 아니냐에 대한 의구심이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이는 급기야 한 동일한 인물의 사인을 놓고도 전혀 다른 주장과 판단을 내리는 지경까지 나아갔다.
처음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은 '병사'로 기술되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시민여론은 물론 전문가 집단에서도 잘못된 해석이라는 강력한 비판들이 빗발쳤다. 그럼에도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는 완강하게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결국 정권이 교체되고 유가족들의 소송이 이루어지며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사망으로부터 9개월이 지나서야 사망원인이 '외인사'임이 옳고 이전의 입장이 왜곡된 것이었음이 밝혀지고 인정된 것이다.
한 인간의 가장 극단의 행위이자 최종적 선택인 죽음 마저도 죽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정치화 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대안적 사실'이라는 용어까지 보편화되는 현실 속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