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막벨라 굴로도 불리는 14세기에 지어진 아브라함 사원을 포함한 헤브론 구 시가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훼손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에도 이름을 올렸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의 투표 결과 찬성 12개국, 반대 3개국, 기권 6개국이었다. 헤브론은 아랍인들에게는 '친구'라는 뜻을 가진 '알-칼릴'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로 불렸다는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적지 않은 이들에게 헤브론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그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의 묘지로 헤브론의 막벨라 굴을 사용했다는 에피소드도 익숙할 것이다.
이 소식을 보도한 매체들은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유네스코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유산"… 이팔 분쟁 왜 계속되나>(동아일보), <유네스코, 헤브론 팔' 유산으로 등재…이스라엘 반발>(연합뉴스), <유네스코, 헤브론 팔' 유산으로 등재…이스라엘 반발>(매일경제), <팔'유산 등재 헤브론엔 '선지자·조상' 아브라함 무덤…대립첨예>(매일경제), <팔레스타인, 유네스코 문화전쟁선 이스라엘에 압승>(중앙일보) 이런 식이다.
이번 유네스코의 결정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곧바로 강하게 반감을 드러냈다.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묻힌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바로 유대인의 조상들인데, 이 헤브론을 팔레스타인의 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헤브론 구시가지는 1250년부터 1517년 사이에 조성된 옛 정취가 가득 담겨있는 곳이다. 석회암 돌을 다듬은 돌로 포장한 길이 이어지고, 오밀조밀한 가게들과 좁은 골목이 정겨운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헤브론 구시가지까지 진입한 유대인 정착민들과 이들을 보호하는 이스라엘 군, 헤브론 주민들 사이에 긴장이 흐르곤 한다.
헤브론은 3차 중동전으로 불리는 1967년 전쟁 전까지는 요르단이 관할하던 도시였다. 그 전쟁 후 이스라엘이 이른바 요단강 서안 지구를 점령하고 난 이후, 유대인 정착민들이 이 지역에 유입되었다. 헤브론의 팔레스타인 주민과 유대 정착민 사이에는 긴장이 형성되곤 했다. 이러는 와중에 1980년 5월 헤브론의 무장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해 막벨라 굴에서 기도하고 돌아가던 6명의 유대 정착민이 희생당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3년에 유대 정착민의 무장 공격으로 3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 군 주둔 이후 무너진 상점거리
1994년에는 아브라함 사원에서 기도하던 팔레스타인 무슬림을 향한 유대 정착민의 총격 사건으로 29명이 희생당했다. 그 사건 이후 유대인 정착민들이 헤브론 구시가지 남서쪽 베이트 하다싸(Beit Hadassah), Beit Chason, Beit Schneerson 등에 들어와 지역 주민들을 쫓아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스라엘군이 헤브론 구시가지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헤브론 구시가지의 상점 거리인 슈하다 거리는 이 이후에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1997년부터는 무슬림 사원이었던 아브라함 사원의 절반은 유대인들이 기도처로 나머지 절반은 무슬림들이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헤브론의 팔레스타인 주민은 20만 명이고,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인근의 키르앗 아르바(Khirya Arba) 정착촌 주민 6600여 명을 비롯하여 1만 명 정도이다. 유대인들과 외국인 방문자들은 막벨라 굴 근처의 키르얏 아르바 유대인 정착촌 길을 통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방문하는 장소인데도 한국인들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거의 이곳을 방문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아쉽다. 헤브론 지역에 안전상의 문제가 있다면 당연스럽게 이스라엘 군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유대인들도 자유롭게 출입한다면 한국인 방문자들이 이곳을 출입 못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헤브론이 방문자에게 안겨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것은 막벨라 굴 방문 자체에서 얻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막벨라 굴의 유대인 구역에서 유대인들의 다양한 종교 생활을 엿보는 것돠 무슬림 구역에서 무슬림 예배와 사원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포도원으로 가득한 헤브론 산지를 둘러보는 것과 헤브론 구시가지의 기장 골목을 둘러보며 예스러운 맛과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뜻깊다. 유목문화와 정착문명의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전통 문양으로 새겨진 장식품 등은 눈길을 끌기에 넉넉하다.
여행자로서 이곳을 찾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정의로운 평화의 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게 하고, 실천하게 할까?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관광객이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마주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미주 뉴스 M에 중복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