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물난리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외유성 유럽연수에 나섰다가 이를 비판하는 국민을 '레밍'에 빗대 공분을 사고 있는 김학철 충남도의원(충주1)이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과 정치권을 비판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 의원은 이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지자체장, 손석희 JTBC 사장 등을 싸잡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글 역시 부적절한 내용으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레밍 논란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김 의원이 다시 한 번 편향된 인식과 언론관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실제 김 의원이 올린 글은 논란이 될 만한 내용들이 상당하다. 김 의원은 해당 글에서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가 열렸다. 수해로 물난리가 났는데 해외연수 나갔다고 소명절차도 거치지 않고 단 3일 만에 제명시킨다고 발표를 해버렸다. 이 나라는 법치주의 국가 아니다"라며 신속하게 제명을 결정한 한국당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어 "추경안 통과 해달라고 아우성치던 민주당 의원들 예산안 통과하던 날 자리 안지키고 다 어디가셨답니까"라며 민주당을 강하게 힐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또 "지역구도 아니고 소관 상임위도 아닌 도의원들 다 제명했으면 같은 잣대로 사상 최악의 수해에도 휴가 복귀해서 현장에도 안나가본 지금 대통령이라 불려지는 분, 수해복구가 아직 진행 중인 데도 외국 나가신 국회의원들, 휴가 일정 맞춰서 외유 나가신 높은 분들, 최악의 가뭄 상황인데도 공무로 외유 나가셨다 돌아오신 각 단체장들 다 탄핵하고 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억울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번 논란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 보도 행태에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JTBC 손석희가 선동한 터무니없는 '에어포켓'이니 '다이빙벨'이니 하는 보도에 우리 국민들이 냉정한 태도만 보였더라도 삼성중공업 등이 출동시킨 플로팅도크로 세월호가 수장되기 전에 건져 올렸을 것"이라며 "그런 선동보도로 차갑고 암흑같은 바다에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치케 한 장본인은 국민적 영웅이 돼있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김 의원은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선출직 의원이 국민을 들쥐, 설치류라고 말하겠나. 아는 게 병이고 만화의 근원이 입이라고 제가 장거리 비행 끝에 쏟아지는 외유 비난에 부지불식간 비몽사몽간에 헛소리를 했다"면서 "레밍이란 말에 분노하셨고 상처받으셨다면 레밍이 되지 마십시오"라며 끝없이 지탄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외려 국민을 계몽하는 '멘탈갑'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구구절절한 해명과 일장 훈계(?)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싸늘하다 못해 차갑다. 쏟아지는 비난을 상쇄시키기 위해 정치권과 언론을 도매급으로 엮어 비판하는 김 의원의 행태에 치졸하고 구차하다는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했다고 고백하면서도 또 다시 국민을 향해 "레밍이 되지 말라"고 들먹이는 것은 사과와 해명의 진정성을 김 의원 스스로 갉아먹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자숙해도 모자랄 시국에 억울함을 호소한답시고 정치권과 언론을 향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나아가 국민에게 상황에 맞지 않는 계몽질까지 하고 있는 셈이니 김 의원의 행태는 '매를 번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무모하기 짝이 없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김 의원을 향해 "정무각감이 없다"고 꼬집은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김 의원은 국민이 왜 공분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김 의원의 연이은 헛발질을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다. 국민의 분노는 레밍 발언 자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상 최악의 수해를 입고 있는 도민의 고통을 뒤로 한 채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난 것부터가 부적절했다. 연수일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는 해명 역시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도민이 크나큰 시름에 빠져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해외연수는 어떤 사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나온 레밍 논란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겪이 됐다. 김 의원은 레밍 발언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지난 22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당시 발언이 언론에 대한 비유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해명은 KBS 청주방송총국의 녹취록 공개로 거짓으로 판명이 났다. 녹취록에는 김 의원이 "그 무슨 세월호부터 그렇고 이상한 우리 국민들이 이상한 이런 저런 그, 제가 봤을 이 뭐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레밍"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언론을 빗댄 것이라는 김 의원의 해명과는 상충되는 내용이다.
해당 발언이 기사화될 줄 몰랐다는 해명 역시 사실과는 달랐다. 녹취록에는 "방금 말씀해주셨던 내용이 어떤 취지고 어떤 입장이다, 이런 거 잘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기자의 설명에 대해 "안 내주는 게 더 좋고요"라 대꾸하는 김 의원의 발언이 녹음돼 있다. 김 의원은 인터뷰를 할 당시까지도 자신들을 비난하는 국민 정서를 전혀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거짓 해명을 한 것이다.
사과와 해명에도 국민적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살펴본 것처럼 김 의원이 이번 논란의 본질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인식은 사상 최악의 수해로 신음하고 있는 국민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김 의원이 외유성 해외연수를 질타하는 국민을 설치류에 빗대고, 거짓 해명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을 걸고 넘어지며 책임을 회피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터다.
일년 전 국민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당시 국민이 공분했던 것은 나 전 기획관의 망언이 은연 중에 표출된 특권층의 끔찍한 자기 고백임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나 전 기획관의 망언은 우리 사회 특권층의 인식 속에 뿌리 깊게 배어 있는 전근대적인 봉건성을 환기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김 의원이 촉발시킨 이번 논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을 굳이 소환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레밍 발언 속에는 국민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폄하하는 김 의원의 자의식이 오롯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주체적 의사결정의 과정 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99%를 향한 조롱과 멸시가 그 속에 묻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또 안다. 나 전 기획관의 '개·돼지' 발언이 아니더라도, 김 의원의 '레밍' 발언이 없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저와 같은 왜곡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정·재계 인사, 관료·법조인·학자 등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라도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 한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불공정, 몰상식을 부추기는 부당함에 맞서야 한다. 국민을 ''개·돼지'로, '레밍'으로 여기는 그들의 세상을 깨트리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