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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무더위에 도시는 온통 불바다다. 며칠간의 장마로 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은 다시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어대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더위의 희생양이 되느니 차라리 이열치열하자는 각오로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섰다. 물론 인문기행이니만큼 배낭에 막걸리 한 병 챙기는 건 기본이다. 오늘 여정의 출발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이다.

신림역 지하철 3번 출구를 나와 서울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몇 발짝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차라리 아침 일찍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쩌겠는가? 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지도책을 꺼내 오늘 둘러볼 곳들을 확인한 후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조선 정조, 순조 연간에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죽석 서영보의 '유자하동기'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서영보는 정조 10년, 병오(1786년)에 관악산 북쪽 자하동을 방문했고 그 때의 감흥을 유산기와 시로 남겼다. 그의 문집 <죽석관유집>에는  '유자하동기' 1편과 십여 편의 시가 남아있다.

당시 서영보의 나이는 28세였고 노성중(盧聖中) 사건에 연루돼 향리로 방축(放逐)된 부친 서유신을 따라 부평 오곡(梧谷)에서 과거 공부에 힘쓸 때였다. 그의 스승은 당시 강화학파의 거두인 이광려였으며 동문으로는 신대우, 신위, 이만수, 박시수, 서기수와 동생 서경보 등이 있다.

서영보는 신위보다 열 살 위였지만 같은 스승을 모신 동문으로 서로 교류하였으며, 부평 오곡과 신위가 살고 있는 관악산 북쪽 자하동을 번갈아가며 방문했다. 부평 오곡은 계양산 인근에 있었던 달성 서씨 세거지로, 신위의 북자하동까지는 거리가 사십 리였다. 

서원동 주민센터 축대에 그려진 벽화  이곳에 옛날 서원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서원동 주민센터 축대에 그려진 벽화 이곳에 옛날 서원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 이종헌

서영보의 '유자하동기'는 신림동의 강태사서원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오늘날 이 서원은 사라지고 없다. 서원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으며 심지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나마 서원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남아 있어 이곳이 옛날 서원이 있었던 곳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민센터를 찾아가 보았으나 역시나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민센터 담장에는 충현서원이라 편액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주민센터를 나와 도림천을 거슬러 서울대 쪽으로 가다보니 신림2교에서부터 도림천의 방향이 거의 직각으로 꺾여 남쪽을 향해 있다. 도림천은 다시 미림여고 입구 교차로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물줄기를 거슬러 계속 올라가다보면 서울대학교가 나오고 서울대학교 정문으로부터 자하연, 버들골 쪽으로 이어진 골짜기가 곧 서영보의 <유자하동기>의 무대가 된 자하동이다. 안타깝게도 이 골짜기는 현재 지하에 묻힌 채 사라지고 없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를 피해 신림 2교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다리 밑에는 이미 무더위를 피해 집을 나온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한낮에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 밑으로 들어서는 가여운 중생을 위해 누가 자리라도 좀 양보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얼굴이 너무 젊어보였나 보다.

염치 불구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더울 때는 무조건 다리 밑으로 가라던 옛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겠다. 바깥세상과 달리 서늘한 데다 이따금 산들바람까지 불어대니 여름 피서지로 이만한 곳을 또 어디 가서 찾으랴?

시원한 물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서영보의 '유자하동기'를 다시 꺼내들었다.

강태사서원 앞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근원을 좇아 동쪽으로 수 리를 가니 작은 봉우리가 은은하게 수풀 위로 솟은 것이 보인다. 국사봉이다.

도림천의 물줄기가 이곳 신림2교에서 남쪽으로 꺾이고 다시 미림여고 입구 교차로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서울대학 쪽으로 연결되니 강태사서원이 이곳 신림2교 근처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구나 자하 신위가 쓴 '시흥잡시 이십 수' 중의 19수를 보면 사당의 위치가 좀 더 명확해진다. 다시 자하의 시를 펼쳐 든다.

동구 밖에 나서니 땅이 평평한데
산 아래로 단청한 건물이 보이네
옛 사람이 서원을 남겨놓아
지나가는 나그네 고을의 어진 선비 참배하네
물가 모래밭엔 누런 갈대 하늘거리고
늙은 잣나무는 푸른 안개 머금었네
태사의 영령은 아직 지하에 계시는지?
문곡성이 하늘에서 빛나네

장군봉 신림2교 뒤로 야트막한 장군봉이 보인다. 그 봉우리 아래 어디 쯤에 강태사서원이 있었을 것이다.
장군봉신림2교 뒤로 야트막한 장군봉이 보인다. 그 봉우리 아래 어디 쯤에 강태사서원이 있었을 것이다. ⓒ 이종헌

서영보는 서원 앞에서 물줄기가 남으로 꺾인다고 했고, 또 신위는 서원이 산을 등지고 있다고 했으니 이곳이 아니면 또 어디에 서원이 있었겠는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서둘러 다리 위로 올라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북쪽으로 야트막한 산봉우리 하나가 수줍게 서있다. 그렇다, 바로 저 봉우리 아래 어딘가에 강태사서원이 있었을 것이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다시 다리 밑으로 내려와 어르신들에게 봉우리 이름을 여쭤보니 장군봉이라고 한다. 저 여리디 여린 산봉우리가 어찌 그런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졌을꼬? 혹시 강태사서원이 있어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만 하염없이 술잔 위를 맴돌았다.


#강태사서원#자하동#현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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