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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찾아온 제비는 여름으로 접어들어 새끼 제비한테 날갯짓을 가르칩니다. 새끼 제비는 여름 동안 어미 제비한테서 날갯짓을 익힌 뒤 스스로 날아 스스로 먹이를 찾으면서 지내요. 이러고서 가을을 앞두고 바다를 건너 따뜻한 다른 고장으로 무리를 지어 날아갑니다.

먼먼 옛날부터 제비를 비롯한 수많은 새가 철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새를 두고 '철새'라고 해요. '철새'라는 오래된 말은 우리 겨레가 이 땅에서 예부터 새를 눈여겨보았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이와 맞물려 철을 따라 딱히 움직이지 않는 새가 있어요. 봄여름뿐 아니라 가을겨울에도 내처 눌러앉는 새가 있어요. 이러한 새를 두고 '텃새'라고 해요.

 겉그림
겉그림 ⓒ 푸른지식
파비앵 그롤로·제레미 루아예 두 분이 빚은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푸른지식, 2017)를 읽으면서 시골마을 제비를 떠올립니다.

'그날 밤, 나는 관찰하려고 백 개체 정도를 채집했다. 한편으로 경험을 되새겨 단순하게 계산해서 양버즘나무의 너비를 가늠해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 내부에 표본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계산하여, 약 11만 마리의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 ' 9월 말에 둥지가 비었다. 2월, 여전히 둥지는 텅 비어 있다. 어떤 희한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제비가 완전히 이 고장을 떠난 것 같다. 그리고 봄이 왔다. 봄바람은 하늘의 바랑객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늙은 양버즘나무는 몇 주 만에 손님들로 다시 북적인다.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28∼29쪽)

오듀본은 제비를 처음 본 때를 돌아보면서 이 작은 새가 어쩜 그렇게 잔뜩 모여서 사는가 몹시 궁금했대요. 더욱이 이 작은 새가 가을에 감쪽같이 한 마리도 안 남기고 사라지더니 이듬해 봄에 다시 무리지어 찾아오는 모습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지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제비가 철 따라 바다를 건너 날아다니는' 줄 압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학 지식이 퍼지지 않던 지난날에는 대단히 놀랄 만한 일이었지 싶어요. 오듀본이 늙은 양버즘나무 속을 파고 들어가서 그곳에 둥지를 튼 제비를 살핀 적이 있다는데, 찬찬히 어림하니 자그마치 11만 마리에 이르는 제비가 있구나 싶었다지요.

 속그림
속그림 ⓒ 푸른지식

 속그림
속그림 ⓒ 푸른지식

제비 11만 마리가 늙은 양버즘나무 속에 둥지를 튼다? 어쩌면 이 모습을 본 적이 없고서는 못 믿을 만하지 싶어요. 오늘날에는 더더구나 못 믿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198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어느 시골에서든 제비가 대단히 흔했어요.

서울까지 제비가 찾아왔어요. 1980년대 무렵에 시골에는 전깃줄이 새까맣도록 제비가 앉기 일쑤였습니다. 작은 마을에도 제비 천 마리쯤 우습지 않은 숫자였고, 이 제비는 '시골사람이 농약을 치지 않아'도 바지런히 벌레를 잡아 주는 몫을 톡톡히 하고는 가을을 앞두고 서둘러 이 땅을 떠났어요.

 속그림
속그림 ⓒ 푸른지식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를 읽다 보면, 오듀본이 어느 철에 숲에서 수억 마리에 이르는 나그네비둘기떼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모습을 본 일이 나옵니다. 수억 마리에 이르는 나그네비둘기떼도 몸소 지켜보지 않고서야 믿지 못할 노릇이리라 생각해요. 더구나 나그네비둘기는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 많던 새가 깨끗이 사라졌다고 해요.

"이건 자연주의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시각으로 그린 거죠. 한껏 솟은 이 깃털, 매의 부리에 맺힌 피에 무슨 의미가 있죠?" "생명이죠. 알렉산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그거예요." "나는 보이는 대상에 감정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 이 그림은 완전히 반대잖아요. 새가 그림을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아요. 너무 낭만적이에요." "이런, 윌슨! 새는 생물이에요. 죽은 정물이 아니라고요. 그래요. 나는, 우짖으며 아직 따뜻한 오리 사체를 뒤적이는 매를 그렸어요. 오리고기를 삼키느라 부리에 피가 묻었고요.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69쪽)

 속그림
속그림 ⓒ 푸른지식

오듀본은 과학자이면서 사냥꾼이었고 그림쟁이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녁은 집에서 새를 살뜰히 키우는 돌봄이 노릇도 했겠지요. 수억 마리나 수만 마리에 이르는 새를 늘 두 눈으로 지켜보고서 두 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혼자만 바라보며 사랑할 새가 아니라, 지구에 사는 이웃들 누구나 이 아름다운 새를 바라보면서 이 땅을 어떻게 가꾸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는 기적을 믿게 됐어. 해가 막 떠올랐을 때였지. 당신한테는 너무나 익숙하나 새소리가 들렸어. 숲지빠귀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당신이 내게 자주 얘기했잖아. 모험하는 동안 가장 힘든 순간마다 늘 어디선가 숲지빠귀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고. 그 노랫소리가 고사리를 엮어 만든 잠자리에서 당신을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 노랫소리를 들으면 어김없이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벅찬 기쁨이 찾아온다고. 물론 나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새의 습성은 잘 몰라. 하지만 이런 계절에 지빠귀는 더 따뜻한 지방에 가 있다는 건 알아. 지빠귀 한 쌍이 이른 봄을 알리려고 미리 돌아온 걸까? 이번만큼은 숲지빠귀의 노래가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키지 못하리란 것도 알아. 그래도 한겨울에 찾아온 이 노래 선물에 나는 깊은 감사를 느껴. 마치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듯. 이제 편안히 쉬어, 나의 라포레."(176∼177쪽)

한국에서도 한때 서녘이나 남녘 갯벌에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철새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공항이 된 인천 앞바다 영종·용유섬 갯벌에도 대단히 많은 철새가 찾아왔지요. 그렇지만 공항이 된 갯벌에는 철새가 찾아오지 못해요. 아니, 철새는 공항이 서건 말건 늘 찾아오지만 그만 보금자리도 먹이도 없이 날갯힘이 빠진 채 죽어 버리고 말아요.

오늘날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서 새를 마주할까요. 참새가 나락을 쪼는 일이란 고작 가을 한철이요, 그동안 참새가 잡는 애벌레가 대단히 많은데, 참새를 너무 미워하는 살림은 아닌가요.

제비가 무리지어 태평양을 건너오는데, 막상 우리가 제비를 맞이하면서 내주는 선물이란 헬리콥터·드론 농약바람은 아닌가요. 철새가 쉴 갯벌이란 사람이 사는 터전도 곱게 가꾸어 주는데, 우리는 갯벌을 너무 쉽게 메꾸면서 막개발을 일삼지 않나요.

새를 사랑하고, 숲을 사랑하며, 잠자리를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풍뎅이를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속그림. 죽어서 새가 된 오듀본을 상징하듯이 이 책에서 마무리로 넣은 그림입니다.
속그림. 죽어서 새가 된 오듀본을 상징하듯이 이 책에서 마무리로 넣은 그림입니다. ⓒ 푸른지식

덧붙이는 글 |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파비앵 그롤로·제레미 루아예 글·그림 / 이희정 옮김 / 푸른지식 펴냄 / 2017.7.3. / 16000원)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 -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파비앵 그롤로 & 제레미 루아예 지음, 이희정 옮김, 박병권 감수, 푸른지식(2017)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오듀본 #숲책#만화책#환경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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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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