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천시 송도국제도시의 한 견본주택에 지난 7월 24일 오후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인천시 송도국제도시의 한 견본주택에 지난 7월 24일 오후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전화 시세 폭등."
"전화 사기 일제 수사."
"전화매매금지를 적극 찬성한다."

1970년대 전화 관련 신문 기사 제목이다. 1950년대 전화 가입이 본격화되고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전화 수요는 엄청나게 늘었다. 그러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전화 값은 70년대 이르러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전화 담보 대출, 그땐 그랬지


"하루 사이 대당 28만5천원이 오르는가 하면, 각국 전화 시세가 평균 5만원 가량 일제히 올랐다."

1975년 3월 15일 <매일경제> 기사다. 신문에는 지역별 전화 공급 시세가 실렸고, 시내 전화 상가에는 매일 전화 시세판이 벽에 걸렸다. 전화를 구하지 못하자 전화를 빌려주는 '전화방'이 성업했고, 전화가 비싸지자 월세 전화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70년대 후반 서울시내 50평짜리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30만원 안팎이었고, 전화 값은 260만원으로 전화가 더 비쌌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1975년 7급 공무원 월급은 5만원이 안 됐다.

당시 전화 한 대를 월세 놓으면 공무원 월급의 20% 가량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매매를 잘하면 하루에 공무원 월급 일 년 치의 수익을 냈다. 물론 전화 시세는 등락을 거듭했고 위험한 투자였다. 그러나 그만큼 고소득을 올렸다. 실제 전화를 담보로 한 사채도 성행했다.

"전화상 중 일부 업체는 전화를 담보로 잡고 자기 돈 외에 다른 사람 돈을 4부 정도로 빌어다가 시가 30만원 상당의 전화를 담보로 잡고 20만원 정도의 돈을 6부로 빌어주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런 겨우 엄격히 말하면 사금융의 중계업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매일경제, 1972. 8.5)

하지만 1978년 전자식 전화기가 개발되면서 떨어지기 시작한 전화 값은 더 이상 전월세 대상이나 투자대상이 될 수 없었다. 전화로 사채놀이를 하던 전화상들은 파산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부동산 불패, 무조건 깔고 앉아라?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6·19 대책을 낸 지 한 달여 만에 서둘러 추가 대책을 준비하는 것은 최근 집값이 여름철 비수기 진입에도 불구하고 심상찮은 동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6·19 대책을 낸 지 한 달여 만에 서둘러 추가 대책을 준비하는 것은 최근 집값이 여름철 비수기 진입에도 불구하고 심상찮은 동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집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지인의 아버지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어렵사리 대출을 받아 산 집이 알토란같이 자산을 늘렸고, 그 덕에 자식 공부 다 시키고 먹고 살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일까? 지인도 얼마 전에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했다. 비록 경기도이긴 하지만. 그는 처음엔 대출 받아 집을 샀지만 이제는 아파트 평수 늘려가는 재미를 알 것 같다고 했다.

그 말도 맞는 것도 같다. 전화상뿐 아니라 달러상, 금은방, 모든 업종이 등락을 거듭했지만 부동산은 대한민국 반 세기 역사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업종이자 가장 안전한 자산이 아닌가.

그러니 신혼부부들이 집을 보러 다니면 부동산 중개업자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라고 권한다. 신혼부부들뿐이겠는가. 집 구해본 사람들은 안다. 처음에는 대출이자, 빚에 대한 압박이 싫어서 꺼리던 사람들도 재계약할 때마다 오르는 전세금, 그에 비해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턱없이 오르는 집값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살 걸 그랬나, 전세를 끼고라도 살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결혼 7년차 문아무개씨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집을 샀던 친구들은 재산이 늘었다. 지금이라도 아파트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집 권하는 사회, 집을 사지 않은 당신은 루저?


이제 대한민국에서 집은 적금을 붓거나, 펀드를 하거나, 평범하게 돈을 모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선 집을 사고 시세 차익을 남겨 더 큰 집으로, 더 나은 집으로, 더 큰 수익이 나는 좋은 집으로 사는 것이다. 대출이자를 내더라도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대단히 잘 버는 게 아니고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하우스 푸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그래서 돈 없이 대출 끼고 집 사면 큰 코 다친다고, 집은 투자가 아니라 거주를 위한 곳이라는 말도 나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월세로 시작하는 신혼부부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요 몇 달 상황을 보면, '한때' 그런 하우스푸어 생활을 하는 것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부동산은 언젠가는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다시 쓰여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문재인을 지지했던 핵심적 이유가 망국적 부동산 거품 제거가 절박해서인데,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다. 모든 불평들의 기원, 적폐 중의 적폐가 부동산 거품이다. 부동산 개거품으로 젊은이들 결혼도 출산도 못하고... 부동산 거품 제거가 핵심 개혁 과제인데 철저히 외면하고 뜸만 들이다 뭐 규제하는 척 시늉만. 뒤통수 제대로 맞은 거다." (누리꾼 khd5****)

"부동산 정책 실패하면 문재인 정부 실패한다"(tree****)

"진보 정권인데 왜... 좀 집값부터 잡아라. 서민서민 하지 말고."(whit****)

부동산 폭등을 알리는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다.

전세값을 잡아줄 새 정부를 기대했는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루가 무섭게 집값이 오르고 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던 SH에서 공급하는 대규모 분양 주택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고, 공공임대 확대 정책을 환영하며 장기전세로 들어간 사람들은 오히려 재산 증식에 실패했다. 빚을 내지 않고 집을 사지 않았던 사람들은 루저가 됐다.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한다는 신혼부부들의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이 됐고, 이제 막 사회에 나오기 시작한, 학자금 대출이 밀린 청년들은 집은 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다. 최저시급 7530원 앞에서 억 단위 집값은 말 그대로 '넘사벽'이다.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던 20, 30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다시 집 사는 하우스 푸어들, 믿을 건 부동산뿐?

 지난 7월 30일 오전 서울 반포주공 1단지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재건축 상담 관련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지난 28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57% 상승했다. 이는 6·19 부동산 대책 이전 수준을 넘어 올해 들어 주간 변동으로는 최고 상승률이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0.90%로 지난주(0.43%)보다 2배 이상 오름폭이 커졌고 일반 아파트도 0.51%로 지난주(0.41%)보다 0.10%포인트 상승폭이 확대됐다.
지난 7월 30일 오전 서울 반포주공 1단지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재건축 상담 관련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지난 28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57% 상승했다. 이는 6·19 부동산 대책 이전 수준을 넘어 올해 들어 주간 변동으로는 최고 상승률이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0.90%로 지난주(0.43%)보다 2배 이상 오름폭이 커졌고 일반 아파트도 0.51%로 지난주(0.41%)보다 0.10%포인트 상승폭이 확대됐다. ⓒ 연합뉴스

한때 하우스 푸어였던 신아무개씨는 얼마 전 집을 하나 더 샀다. 신씨는 "근로소득보다 불로소득이 더 낫고, 그것을 천박하게 보는 인식도 없다. 전국민이 건물주가 되길 바라고 그것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 나라다"고 말했다.

40대 초반의 박아무개씨는 요즘 남편에 대한 심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박씨는 1년 전 전세 재계약 때 가계 부채 문제 심각하다고, 집값 곧 떨어진다며 호언장담하던 남편의 말에 집을 사지 않고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지금 박씨가 사는 아파트 매매가는 1억5천만원이 올랐다.

"밥 먹고 왔더니 2천만원이 올랐다"는, 소위 강남 발 이야기들이 돌아다니는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분양권 전매 금지, 일부 지역 담보대출 비율 하락 등이 전부다. 집값을 잡겠다기 보다는 현재 집값 상승 기류를 관망하는 눈치다.

부동산은 오르는 것보다 떨어질 때가 더 문제다. 이미 올라간 가격은 내려가기 어렵다. 주택담보비율이 이처럼 높은 나라에서 집값은 떨어지면 가계 파산 위기는 당연한 것 아닌가. 집값은 애초에 잡아야 한다. 새 정부가 어영부영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출범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았다는 말도 통하지 않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전화 가지고 월세를 받고 돈을 벌던 시절은 그 시절 그때 이야기다. 지금 보면 우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동산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추억할 수 있는 시절이 와야 한다.


#부동산#부동산 폭등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