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북한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이 바다로 낙하하기 직전 내뿜은 섬광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다. 해당 영상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일본 여론도 눈길을 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7월 29일 홋카이도(北海道) 소재 무로란(室蘭)시 NHK무로란지국이 사옥 옥상에 설치한 여러 대의 카메라가 ICBM 발사체가 낙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섬광으로 추정되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같은 날 오전 12시 28분께 찍혔다.
영상을 살펴보면 갑자기 높은 하늘에서 나타난 섬광이 서서히 하강하더니 곧 사라지는 장면이 확인된다.
이와 관련 일본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官房長官)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지난 7월 28일 오후 11시 42분께 발사한 ICBM 발사체가 45분 정도 비행한 뒤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낙하했다고 밝혔다. 일본정부의 발표는 홋카이도 해역에 불시에 나타난 섬광이 ICBM임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영상이 찍힌 시간대는 일본정부의 발표와 맞아떨어진다. 더욱이 추후 ICBM이 홋카이도 남부 오쿠시리(奥尻) 섬 서부 200~250km 해역에 낙하했다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이어지면서 정체불명의 섬광이 ICBM일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다.
NHK의 인터뷰에 응한 마이클 엘러먼 국제전략연구소(IISS) 선임연구원(미사일 방어 분야)은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탄두부분을 포함한 재돌입체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라며 ICBM이 섬광을 내뿜은 것이 확실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울러 엘러먼 연구원은 빛나는 것(섬광)은 공기저항을 받은 재돌입체가 마찰열로 인해 발광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ICBM이) 대기권으로 재돌입 할 때 매우 강한 압력과 고온을 견디고 그 형태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만약 그렇다면 북한의 기술은 진전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정부는 북한의 ICBM 발사 확인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며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스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미사일 발사는 일본의 안전보장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어떤 사전 통보도 없이 수역 내에 착탄시킨 것은 항공기와 선박의 안전확보의 관점에서도 지극히 문제가 있는 위험행위"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미사일을 주로 동해 방향으로 발사하는데, 대부분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낙하한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거주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일본정부는 2017년도판 방위백서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새로운 단계의 위협"이라고 명시하는 등 노골적으로 북한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여론
그렇다면 정부가 아닌 '일본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일본에서 가장 유입량이 많은 검색엔진인 야후재팬이 제공하는 야후뉴스를 통해 보도된 관련기사를 비롯해 유튜브에 올라온 'ICBM 섬광 영상'의 댓글을 들여다봤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일본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일관된 대북인식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다만 북한에 대한 '맞대응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우선 강력한 미일동맹을 주축으로 삼는 일본의 기존 안보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을 살펴보자.
"타국에 의존할 수 있는 시대는 어느 정도 끝났다. 우리 일본인의 운명은 스스로의 손으로 움켜쥐어야만 한다. 국가 간에 진정한 친구는 없다. 특히 일본과 한국 사이는."(누리꾼 asahi)"일본 사회도 국방에 관해 현실적인 대응에 눈 떠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핵미사일을 보유했는데 일본이 언제까지 미국의 핵우산 밑에서 안전보장을 보상받는 구도여서는 안 된다."(누리꾼 pin*****)"반격할 수 없는 일본국 헌법이 좋다고 할 수 있나? 나라면 (북한 같은) 위험한 나라에는 항상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헌법으로 개정하고 싶다. 그렇게 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누리꾼 yoshirou na****)위 누리꾼들의 의견은 우경화와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아베 정권은 자위대를 정식 '국방군'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는 오는 2020년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통과되게 하겠다는 노림수다. 일제 패망 이후 1947년에 성립된 일본국헌법은 흔히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헌법 제9조에 전쟁포기 조항이 담겨 있어서다.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군사대국을 목표로 삼은 아베 정권의 입장에서 전쟁포기 조항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NHK가 지난 3월 일본 전국 성인 4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헌법 제9조의 개정이 필요한가'를 물었더니 '필요 없다'는 응답이 57%로 절반을 훌쩍 넘은 상황.
일본에서는 최근 지지율 급락으로 국정장악력을 잃고 있는 아베 정권이 개헌을 실제로 추진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개헌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이 경우 일본의 독자 무장을 지지하는 위의 여론이 든든한 우군이 될 것이다.
일본 누리꾼들의 의견에서는 이른바 미국 의존에서 벗어난 '자주국방' 여론도 포착돼 눈길을 끈다. '타국에 의존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일본이 언제까지 미국의 핵우산 밑에서 보상받는 구도여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동북아 정책이 일본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내건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촛불혁명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지난 보수 정권 당시 잘못 꿰어진 대미관계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 ▲ 미국산 광우병 소 반입 우려에 대한 묵살 ▲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6%를 차지하는 국방비를 3%로 임기 안에 끌어올리겠다고 한 것에 대해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7월 26일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 있는 미 전략사령부(USSTRATCOM)에서 열린 '억지'(Deterrence) 관련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한국 국방비 증액은 미국 무기 구매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언급을 하는 등 파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동도 걸지 않고 대미일변도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우려스럽다. 이런 점에서만큼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노선이 옳은지 처음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에 대한 여론이밖에 북한의 ICBM 발사를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가감 없는 의견에도 시선이 쏠린다.
"이거 에둘러서 (북한이 일본에) 선전포고 한거죠?" (누리꾼 red*****)"에두른 게 아니고 이대로 선전포고. 단 물벼룩이 최첨단 전투기로 싸움을 거는 것과 같은 꼴 ㅋ" (누리꾼 m*****)"(북한의) 미사일기술은 틀림없이 높은 레벨" (누리꾼 오사카우메다유키)"확실히 정도(精度, 정밀도)는 올라가고 있는 중, 일본과 미국은 이대로 두고 봐도 괜찮은 건가?" (누리꾼 rox*****)일본 최대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2채널(2ちゃんねる)의 댓글은 참고하지 않았다. 주로 한국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비교되는 2채널의 정치성향은 극우로 분류되며 혐한(嫌韓)여론이 뿌리 깊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한편, 민영방송 네트워크 NNN이 지난달 7~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대북대응이 충분치 않다는 응답이 74.8%를 차지했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대북정책에 불만을 가진 일본인들이 북한에 대한 '일본의 독자적인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
이처럼 일본 누리꾼들의 안보관을 여론조사와 비교해본 결과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을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포착됐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므로 관련 분석은 앞으로도 꾸준히 요구될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권방송>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