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모습까지 뚜렷이 나타난 조감도 / 철저한 답사로 모은 사진과 자료 / 1930년대 인천을 세밀하게 기록한 작업이 / 오랫동안 음지에서 외면당하고 있었다. / 그 기록에 다시 생명을 불어 놓아 / 이 시대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책을 펴냈다. / 이것이 바로 역사를 미래에 전달하는 작업이다." -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 - 도서출판 토향1930년대 인천을 세밀하게 그린 조감도, 음지에서 외면, 이 시대에 활용, 역사를 미래에 전달하는 작업이라니? 기자는 이 책 뒷장에 소개한 이 글귀를 지난 1일 저녁 도쿄의 강연장 한 구석에서 내내 곱씹고 있었다.
제법 굵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지난 8월 1일 오후 7시, 도쿄 고서적가인 진보쵸(神保町)에서는 북까페 '책거리(CHEKCCORI)' 주최로 '계속 이어지는 도시의 기억 모던인천(生き続ける都市の記憶モダン仁川)'이란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강사는 서울에 살고 있는 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대표와 한양대 도미이 마사노리(富井正憲) 객원교수였다. 1일 행사는 서울에서 막 출판해 가지고 온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도서출판 토향)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70명 수용이 가능한 작은 규모의 강연장은 행사 30분 전 벌써 가득차 버렸다. 일본인이 듣고 싶은 '1930년대의 인천'은 어떤 모습일까? 기자도 방청객들 틈에서 숨을 죽이고 들었다.
"1920년대는 구미 각국에서 도입된 '경관(landscape)'이라고 하는 개념 곧,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표현하는 것이 지도계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조감도(鳥瞰圖)의 개념이 막 시작되던 시기지요. 처음에는 항공사진을 이용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먼 거리까지 세밀하게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육지측량부의 세밀한 지형도에다가 원근법을 이용해 산이나 건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넣고 색을 입혀 넣었지요." 도미이 교수는 1929년도에 그려진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의 커다란 인천지도 한 장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강연은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 책의 원본이 된 1936년 8월 조선신문사가 발행한 <대경성부대관>과 <대경성도시대관>을 바탕으로 만든 것에 대한 설명과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배경 등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서울 거리와 인천의 뒷골목 길까지 선명한 채색으로 소개된 조감도 <대경성부대관>은 조선총독부가 이른바 조선경영 25주년(조선시정 25주년)을 기념하여 가로 153㎝, 세로 142㎝크기의 알록달록한 채색을 입힌 경관도(景觀圖)다. 이 한 장의 지도 속에는 경성부(서울), 인천부(인천시), 월미도, 영등포, 명수대 등 각 지역의 확대도와 지명, 명승고적지, 관공서나 학교, 기업 등의 정보와 사진이 가득 기록되어 있다.
"여기 보이시지요? 여기가 경복궁이고 조선총독부 건물이 여기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긴 남산이고 조선 신궁(神宮) 모습도 보이지요. 인천 쪽을 봅시다. 여긴 미츠이물산, 이마이상점, 기타지마 약방, 금성 철공소, 히로가네 이비인후과..." 도미이 교수는 지도에 그려진 내용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다. 지금의 선린동, 중앙동, 해안동, 송학동, 관동의 골목 하나하나까지 <인천부(仁川府)>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누가? 왜? 이러한 지도를 그린 것일까? 한국인인 기자는 이날 강연장 구석에서 줄곧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자도 일본인들처럼 어머나, 어머나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1930년대 인천의 모던한(?) 지도를 즐기면 그만이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작은 크기로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127쪽으로 시집 크기만 함)로 이 책을 만든 것은 여러분들이 인천에 오셨을 때 가지고 다니면서 80년 전 당시의 일본인 거리를 눈으로 확인해보라는 뜻에서 였습니다. " 책을 만든 도다이쿠코 대표의 말이다.
"희한한 것은 이 지도에는 일본인 거리만 상세히 표시되어 있을 뿐, 당시 조선인들 거리는 거의 외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고도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정확한 지적이다.
1930년대 총독부 주관으로 만든 <대경성부대관>과 <대경성도시대관>은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지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당시 조선인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지도에 표시할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대경성부대관>과 <대경성도시대관>은 일본인이 보는 것과 한국인이 보는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이 지도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역설적으로 당시 조선인들이 이 땅에서 어떠한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당시 총독부와 지도 작업에 관여한 사람들은 미처 이 점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일제침략 35년, 그 기간 동안 조선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서도 조선총독부의 악정(惡政)은 한국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그것은 세월이 지났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잊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선경영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대경성부대관>과 <대경성도시대관>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조선을 위한 지도'는 아니었음을 지도는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미시마상점, 우라가미 양복점, 미야카타 잡화점, 야기 유리점, 후카미 양조장, 마스다야 주조장, 요리점 우로코, 기타지마 약방, 인천소금공동판매조함, 쿄도 해운상회, 우편소, 조선취인소, 쿄이쿠샤곡물비료부, 하라전당포..."
이 땅의 주인인 조선인이 빠진 조선지도, 우리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대경성부대관>과 <대경성도시대관>을 토대로 한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 책자를 통해 '왜, 당시 조선총독부가 이 지도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철없는 일본인들이 80년전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인천거리의 향수(?)를 위해 이 책을 들고 우왕좌왕 안했으면 하는 점이다. 조선 침략을 통해 씻을 수 없는 죄업을 남긴지 채 100년도 안된 시점에서 도미오카 요시오의 후지카페, 요코다 약방, 사토병원, 나카무라 식료품점 자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누가 봐도 볼썽사납다. 정 보고 싶으면 지도를 감추고 살며시 인천거리를 걷길 바란다.
그러나 오늘의 인천을 찾는 일본인들은 그런 교양없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본다. 일제침략의 어두운 역사를 이해하고, 그 침략의 역사의 현장을 느껴보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어제 강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도 한일간의 어두운 역사를 이해하고 반성하며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빗속을 뚫고 '1930년대 인천을 그린 지도책'을 소개하는 강연장을 찾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를 만든 도미이마사노리 교수, 김용하 건축가, 도다이쿠코씨의 힘든 작업에 응원의 손뼉을 쳐주고 싶다.
어두운 과거를 기록하는 작업은 늘 고단한 일이다. 거기에는 박수보다도 비난이 따를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아는 것, 그냥 아는 게 아니라 '잘 알 수 있도록' 이 책은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지난 1일 강연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값진 자리였다.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도서출판 토향, 2만 원)는 8월 15일 이후 국내 판매가 가능하며 일본어와 한글로 되어있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