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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18시간을 비행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공식적으로 18시간'이라는 건 예정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여정에 소요됐음을 전제한다. 인천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 공항까지 무려 12시간을 탑승했다. 마드리드로 환승하기위해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내리는 순간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했다. 그 몸으로 다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는 미처 계산도 되지 않은 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그 순간에는 다 알지 못했다.

몸이 내게 말한다. 도대체 이 긴 시간을 비행하면서 떠나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떠남을 결정했을 때 느꼈던 기대를 그 순간 가져오고 싶었다. 이 순간에. 지친 몸에서 보내는 단순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스탄불 공항에 면세점들을 그저 눈으로 잠시 훑어보는 데도 이미 바닥난 에너지는 몸을 더 지탱하며 견디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듯이 휘청거린다. 어지럽다. 안다. 정확히. 언제부턴가 몸이 마음에게 건네는 말, '좀 쉬어야 겠어' 소리를 환청처럼 다시 듣는다.

환승 게이트 번호가 게시판에 뜬다. 환승 게이트를 찾아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게이트 앞에는 피부색이 같고 다름을 개의치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대합실 의자에 몸을 기댔다. 가방 앞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비행기 도착 시간을 또렷이 적었다. 수첩과 여권을 가지런히 백팩에 넣고는 바로 눈을 감았다. 쉬라는 마음의 소리에 충실하고자 애쓰면서...

다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똑같은 수속을 마치고, 다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6시간 후면 마드리드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빠른 계산으로 마음에 조바심이 도사린다. '비행기타는 것이 힘들어서 이제 정말 여행을 못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어느 사이에 사라졌다. 기내에서 익숙해진 관성이 시키는 대로 어느새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았다. 안내 방송이 시작된다. 터키어, 스페인어, 영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 방송이 나온다. 한국 여행객이 많은 것을 알고 '나름 배려했구나!' 생각한다. 

지난 7월 17일 시작된 여행 일정에서 이미 하루가 지났다. 비행기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나마 날짜 변경선으로 인한 7시간을 얻었으나 마드리드 공항 도착 시간은 7월 18일 정오가 지났다. 휴대전화에 무수한 문자가 들어온다. 현지 스페인에 있는 외교부 안내문자, 통신사 문자가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한다. 새삼 다시 느낀다. '그래, 이제는 어디를 가도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 기록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다시 확인한다.

 마드리드 시티 투어 버스.
마드리드 시티 투어 버스. ⓒ 유명숙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 모든 거리의 시발점.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 모든 거리의 시발점. ⓒ 유명숙

스페인, 마드리드. 7월 중순을 지나는 마드리드의 날씨는 더웠다. 무려 40℃가 넘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이 마요르 광장(Plaza Mayor)였다. 모든 곳의 거리는 바로 이곳 마요르 광장에서 시작된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건널목 앞에 거리를 표시하는 오리겐(Origen)이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거리의 시발점이다.

마요르 광장 골목길을 두루두루 살폈다. 가이드북에 명시된 지명으로 거리를 가늠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시간이 지나 마요르 광장과 좀 떨어진 프에르타 델 솔 광장에 이른다. 이곳은 마드리드의 중심지로 관광 거점지다.

아마도 마요르 광장에서 프에리타 델 솔 광장으로 가는 길목 어디쯤일 것이다. 거리를 따라 나란히 줄을 이어있는 한 점포에 닿았다. 그곳에서 저절로 발길이 멈췄다. '아니 이게 어찌된 것이지?'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했다. 눈길을 끄는 간판에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어떤 작은 것이라도 다 이유가 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존재 자체로 의미가 부여된다. 외형적인 크고 작음은 그저 보이는 형체일 뿐 내용은 존재를 부여하는 사람의 몫이 되고 가치가 된다. 가치를 부여함으로서 어떤 것도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의미로 재현된다. 가치가 생명을 얻게 된다. 

스캇 피츠제럴드(F-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의 장면이 이 스페인 마드리드에도 재현되다니... 놀라움으로 그 간판을 바라봤다.

모든 것에는 인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람에게는 인식에서 깨달은 잠재적 양심이 내면을 지배한다. 자신의 내면을 속이지 못하게 하는 그 눈동자! 바로 그 눈동자가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마음을 직시한다는 듯이 바라본다.

개츠비에서 작품의 캐릭터 모두를 직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눈동자 간판이 있다. 바로 닥터 티 제이의 눈동자다. 이 눈동자는 비록 뉴욕 외곽에서 시내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광고간판에 불과하지만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모두 다 보고 알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 닥터 티. 제이. 눈동자.
<위대한 개츠비> 닥터 티. 제이. 눈동자. ⓒ pinterest

 프에르타 델 솔 광장 근처 위대한 개츠비를 재현하는 눈동자.
프에르타 델 솔 광장 근처 위대한 개츠비를 재현하는 눈동자. ⓒ 유명숙

간판을 보는 개츠비도, 데이지 뷰캐넌, 톰 뷰캐넌, 머튼 윌슨, 조지 윌슨, 조던 베이커, 마이어 울프 그리고 화자인 나(닉, 캐러웨이)도 아무도 자신을 직시하는 그 눈동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엇인가를 알고 느끼는 것은 경험으로 가져온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텍스트 위대한 개츠비를 들고 수많은 시간을 씨름했다. 대학원 시절, 영문학도로서 거의 모든 작품에 매여 있었다. 논문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관문,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한 번에 졸업고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동기생들을 이루 셀 수 없었다. 아니, 한 번에 바로 통과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고 전설이었다.

영문학도의 운명이라고 모두 다 포기하듯 인정했고 받아들였다. 수없이 무수한 나날들을 시험에 '올인'했다. 어떤 부분이 나온다는 정보조차 없었다. 영문학 전 텍스트를 전부 다 숙지해도 붙는다는 보장은 전무했다. 모두 열심이었다. 모두가 하나가 돼 준비한 학술모임에서 나에게 맡겨진 텍스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텍스트 분석은 자연히 아주 디테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파헤치고 분석하면서 마음을 가장 우울하고 힘들게 했던 상징이 바로 이 눈동자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눈동자가 나의 마음 안에 각인됐다. 내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어떤 일을 하든 눈동자가 함께 숨을 쉬었다. 그랬다. 바로 자신을 올곧게 지키고 세우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삶의 여정은 삶의 순간, 삶의 시간을 결코 내 것이 아니라고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좀 더 자신에게 정직하고 최선이자 여기면서.

그래서, 그렇기에 아마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천착하면서...


#2017 스페인 여행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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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전공. 문학은 세계로 향하는 창이며, 성찰로 자신을 알게 한다. 치유로서 인문학을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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