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 8세에 줄리아드 음악대학에 예비입학 자격이 주어질 정도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전액 장학금으로 줄리아드 음악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10세 때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시작으로 링컨 센터나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과 같은 곳에서 협연하거나, 세계 최고의 재즈뮤지션과의 수많은 협연을 하는 등, 10대에 이미 음악적 천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런 그가 한국에서 데뷔한 것은 줄리아드 음악대학교를 졸업한 1996년 12월 KBS-<열린 음악회>에 출연하면서에요. 이듬해인 1997년 1집 앨범 <The Bridge>를 발표, 활발한 뮤지션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날 한때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뜨거운 화제 속에 있었던 유진 박 이야기입니다.
유진 박이 데뷔하던 무렵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바이올린은 '서정적인 곡에 걸맞는, 애잔한 선율의 악기'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은 그가 연주하는 '일렉트릭 바이올린'의 화려하고 힘찬 선율. 그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악기랄 수 있는 일렉트릭 바이올린으로 클래식은 물론, 재즈, 록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하고 힘찬 연주를 하는 열정적인 연주자로 일약 스타가 됐습니다.
1집 앨범이 백만 장이나 팔렸고, 드라마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볼 수 있는, 광고로도 볼 수 있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축하공연(1998년)에서 연주하기도 했고,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에서 협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에도 국내 수많은 대규모 행사들과 콘서트에서 주요 연주자로 활동하는 주요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기 시작, 잊히고 맙니다. 이런 그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여름. 몇몇 네티즌들에 의해 그의 소식이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안타까움에 빠지게 했는데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지방의 소규모 행사나 무료 행사장, 유흥업소 등에서 연주하는 유진 박의 모습들이 목격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곱창집이나 삼겹살집에서 공연하는 모습까지 목격되기도 했다는데요. 게다가 연주 실력도 형편없고, 상대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 보이는 모습을 담은 영상까지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더욱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후 진실 규명과 유진 박 구명을 위한 네티즌들의 다양한 노력과 활동에 언론까지 가세, 나아가 소속사 대표를 수사하기에까지 이릅니다. 그런데 와중에 피해 당사자인 유진 박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아 사람들로부터 아예 멀어지고 맙니다.
'잠시 날개를 접어 둔 천재 뮤지션의 이야기'란 부제의 <드라마틱 펑크>(Dramatic Punk, 혜윰 펴냄)는 지난날 이와 같은 불행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 올해 20주년 콘서트(유진 박, 하고 싶은 이야기…. 2017.1.19.~22일)를 가진 유진 박이 쓴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유진 박은 여전히 잘할 수 있는데, 와전되거나 과장된 소문으로 더는 일어설 수 없는 것처럼 알려진 것이 가장 괴롭다고 했다. 조울증은 여전히 유진을 괴롭히고 있지만, 일년에 약 3주 정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문제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심각한 소문들이 오히려 유진을 더 재기할 수 없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유진 박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출간하는데 공감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책은 반드시 유진 박의 이야기로 가득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가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이 사회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다양한 매체에서 유진 박의 이야기를 담아갔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좀 더 넉넉한 공간에 유진 박의 더 많은 이야기를 담기를 원했다. 그렇게 이 책은 시작되었다.' -36~37쪽.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유진 박을 국내에서 데뷔시킨 것은 유진 박의 현재 소속사 대표인 김상철씨. 어머니의 그릇된 판단으로 재계약을 하지 못해 각자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은 15년 만에 해후, 현재 유진 박은 데뷔 당시 꿨던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은 모 성당에서 연주하는 유진 박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한 출판인이 유진 박 스스로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 책을 위한 몇 차례의 인터뷰 중에 느낀 것과 유진 박 스스로 쓴 자신의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출판인의 글이 들어가긴 했으나 아마도 독자들의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글만 담았습니다. 그보다는 유진 박 스스로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대부분입니다. 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특유의 표현이 풀풀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책이기도 한데요.
유진 박은 ▲어렸을 때 바이올린 천재로 주목받으며 또래들에게 왕따를 당한 일 ▲어머니의 연습 강요로 평범한 소년의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볶음밥이나 짜장면 등으로 허기를 채웠던 모텔생활 ▲어렸을 때부터 앓은 조울증 ▲주목받던 지난날과 전혀 다른 추락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성공한 친구들에 대한 마음 속 이야기 ▲재기를 향한 최근의 노력 ▲유진 박의 좋지 못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받기도 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나 마음 속 이야기 ▲음악인으로서의 고민이나 꿈 등을 들려줍니다.
'이 책은 유진 박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책이다. 그가 한 이야기를 그저 보기 좋게 정리하기만 했다. 그의 말을 전달했고 그 이야기에 맞게 구성했다. 그리고 유진이 원하는 대로 기획하였으며, 그의 과거와 미래를 담았다. 함께 구성을 논의하였으며, 그의 말을 왜곡하지 않았다. 조금은 어눌한 말투와 화법조차도 가능하면 그대로 읽는 이에게 전해지도록 했다. 바로 곁에서 유진 박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진 박의 창조적인 결과물과 그 결과물이 탄생한 과정을 다양한 형태로 책에 녹여냈다. (…)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이가 희망을 갖고 좌절하기 않기를 바라는 유진 박의 마음이 담겼다. 무엇보다 나쁜 소문에 관한 그의 생각, 그것뿐만 아니라 그가 품었던 다양한 관점을 고스란히 유진 박의 입으로 담았다는 데 이 책은 의미가 있다.' - 37~38쪽.사실 클래식보다는 대중가요를 즐겨 듣는 편인 데다가 바이올린에 대한 특별한 관심 또한 없어서 저에게 유진 박은 그저 유명한 뮤지션 중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책에 관심을 뒀던 것은 유진 박에 대한 안타까운 뉴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관련 뉴스들이 다 담아내지 못했거나, 어쩌면 외면하고 있는 어떤 막연한 사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책을 통해 유진 박의 이야길 접하며 드는 생각은 유진 박의 불행한 지난날은 한 개인의 탐욕이 부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예술인들이 창작열(또는 예술혼)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한 사회 그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뛰어난 인재를 보호하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성장할 수 있는 보다 바람직하며 발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실한 사회 시스템 그 희생자이기도 한 유진 박의 이야기가 그 촉매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이 한 천재 뮤지션이 잠시 놓쳤던 꿈을 향해 부단한 노력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