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무너진 곳이 많은데 가장 심하고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바로 우리 방송, 특히 공영방송 쪽이 아닐까 싶다. 지난 정권에서 방송을 정권의 목적에 따라 장악하고자 많은 부작용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방송의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해주고 언론의 자유가 회복될 수 있도록 방통위원장이 각별히 노력해달라."문재인 대통령이 8일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건넨 뼈있는 당부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방송 장악' 시도가 있었음을 지적한 뒤, 권력이 방송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에게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 정권이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를 내비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역으로 '이명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권력의 '방송 장악'이 그만큼 극심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그랬다. 그 시기 권력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경영진을 교체했고, 그렇게 투입된 낙하산들은 편파·왜곡 보도를 일삼으며 방송의 불공정성을 심화시켰다. 이에 항의하는 언론인들은 불법 해직시키거나 전보 조치시키는 방법으로 언론을 통제해 나갔다.
그 즈음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횡행하던 보도지침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 시기이기도 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직접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보도를 요구하거나 수정 요청을 하는가 하면, 경영진을 통해 보도 내용을 선별하고 통제하기도 했다. 청와대나 정부기관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전을 제기해 언론사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다. '방송 장악'을 통해 권력이 방송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그래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비극이 정권 내내 지속돼온 것이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던 공영방송이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는 것도, 실종된 저널리즘을 되찾기 위한 KBS와 MBC 기자들의 아우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권력과 족벌재벌 언론의 '찰떡 공조'
'이명박근혜' 정권의 '방송 장악' 움직임은 지난 2008년 방송위원회를 개편·발족한 방통위를 통해 본격화된다. 방통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그 중 대통령이 위원장과 1명의 상임위원을 임명할 수 있고, 나머지 3명은 교섭단체에서 임명(여당 1인, 야당 2인)하도록 되어 있다. 여당 성향 3명, 야당 성향 2명으로 인적 구성부터 여당에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방통위원장에 자신의 최측근이자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씨를 임명했다. 독립성과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방통위원장에 자신의 최측근을 임명하겠다는 것부터가 공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세간의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된다. 이후 최시중의 방통위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을 위한 선봉장 역할에 충실했다. 편파·왜곡·과장·선정 방송의 대명사 격인 '종편'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하게 된다.
'종편'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재벌족벌 언론이 '신문 방송 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비판받던 언론 환경이 더욱 기울어지도록 이명박 정권이 길을 터준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종편'의 광고 영업 특혜를 부여하는 '미디어렙법'마저 통과시켜 당시 0%대의 시청률로 망연자실해 있던 족벌재벌 언론의 숨통을 틔어주기도 했다.
권력은 족벌재벌 언론의 오랜 숙원이었던 '신문 방송 겸업'의 길을 열어주고, '종편'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내용들을 여과없이 방송할 수 있게 됐으니, 그야말로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찰떡 공조' 되시겠다.
이명박 정권의 뒤를 이은 박근혜 정권 역시 '방송 장악'에 있어서라면 결코 뒤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기존 방통위 소관이었던 방송진흥정책을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시켰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방송의 허가권과 정책수립 및 법령 제정권을 대통령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장관이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방통위에서 행해지는 최소한의 합의 과정조차 건너뛰겠다는 발상으로,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이 더욱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방송 장악은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며 각계의 우려와 비판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었던 이경재씨를 방통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방송 장악에 대한 세간의 우려는 단호히 부정하면서도 정작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책임져야 할 방통위원장에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담했던 자신의 최측근을 임명하는 기지(?)를 선보인 것이다.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 훼손된 공공성과 공정성'이명박근혜'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시도했던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그러는 사이 방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공정성과 공공성은 크게 훼손돼 갔다. 지난 2012년 MBC노조가 무려 170일간에 걸친 장기파업을 이어갔던 것도, KBS노조가 방송의 불공정과 편향성을 문제 삼고 지속적으로 파업에 나서고 있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방송 본연의 역할이 망각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분노가 일선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 위원장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방송의 공공성과 언론의 자유 회복을 강조한 것은 처참하게 무너진 방송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정권을 위한 방송, 권력을 위한 방송이 아닌 국민의 눈과 귀를 위한 공익적 방송으로 거듭 나달라는 주문이며, 저널리즘을 회복하라는 함의인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만든 적폐의 결과물들을 청산해야 할 사명이 새 정부에 있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시의적절'한 주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야당은 이를 달리 보는 모양이다. 지난 10년 동안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멋대로 주무른 주역들이 이제 와서 새 정부의 공영방송 정상화 작업을 '방송 장악'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역시나, 뻔뻔하다. 적반하장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터다. 자신들이 집권당이던 시절 수많은 언론인들이 직장을 잃고, 자괴감에 빠졌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좌파 정부 10년부터 사과하라"며 짐짓 딴소리다.
무릇 주장이 다수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논리와 상식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걸맞은 자격도 있어야 한다. 가정 폭력을 일삼던 사람이 옆 집의 가정 폭력을 문제삼는다면 과연 어느 누가 그의 말에 수긍을 하겠나. 새 정부의 공영방송 정상화 작업을 '내로남불'이라 비판하고 있는 한국당의 행태가 딱 그 짝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방송 장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때 집권당으로서 그에 동조하며 방송의 암흑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이 이제 와서 '방송 장악' 운운하고 있으니 시쳇말로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당의 사과와 반성이 먼저여야 한다
"저희 MBC 아나운서들은 일산에, 성남에, 용인에, 잠실에 흩어져 방송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1년 만에 마이크 앞에 처음 섭니다. 눈 내릴 때 시작해 다시 눈 내릴 때까지 저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엔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과 좋은 영향을 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시청자들께 좋은 영향을 주는 방송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다시 돌아가 '방송의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영향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는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되겠습니다. 저희가 다시 저희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가 주최한 '2012 아나운서 대상 시상식'에서 동료들을 대신해 대상 수상자로 나선 김완태 아나운서의 수상 소감 중 일부다. 당시 그의 동료들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시각 그들은 'MBC 정상화'를 위한 파업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목이 터져라 뜨겁게 외쳤던 '공영방송 사수'의 염원도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사람들이 방송을 제멋대로 '쥐락펴락'했기 때문이었다.
현 한국당은 당시 집권당으로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던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새 정부의 '방송 정상화'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과거 행태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먼저여야 한다. 그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의 방송 장악에 낙담하고 좌절한 수많은 언론인들과 이를 안타깝게 지켜본 국민에 대한 '예의'이자, 최소한의 '염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