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일까?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추억 속에서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카스티야의 고도 톨레도를 떠나 세비야로 가는 도중 잠시, 푸에르토 라피세 돈키호테마을에 이를 때까지 머리에서 돈키호테가 떠나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불러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창시절 접한 돈키호테는 도무지 상상 속에서조차도 이해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관점일 것이다. 다시 오류 없이 언어가 주는 느낌을 살려 표현하자면 그 시절에 나는 세르반테스, 그의 돈키호테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문학적 소양이 부족했고 어려웠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돈키호테는 기사이야기에 심취되어 정말 기사가 되어 시종 산초와 말 로시난테를 끌고 모험을 떠난다. 모험 중 만나는 풍차를 적이라고 대적하며 칼을 휘두른다. 사람이 아닌 풍차를 적으로 여기고 싸워 수많은 상처가 나고 다치고 넘어진다. 그의 이런 황당무계한 광기를, 이룰 수 없을지라도 '꿈을 꾼다'는 도전과 용기로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또 삶의 여정을 지난 뒤였다.
일주일 용돈 털어서 샀던 책 돈키호테, 유럽 여행에서 다시 만나다다시 돈키호테를 접하게 된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학부시절이었다. 학교 입구에 한 줄로 즐비하게 자리한 서점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나 분명 갑옷을 입고 창을 든 돈키호테와 그 옆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산초가 있는 표지와 마주쳤다. 그 순간 주저하지 않았다. 일주일치나 되는 용돈을 털어 돈키호테 원서(영어 버전)를 샀다.
그 후 돈키호테를 또 다시 만난 것은 벨지움 브뤼셀 스페인 광장에서였다. 분명한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20년 전 가족이 함께한 여름, 서유럽 여행에서였다. 기념하기 위해 찍어두었을 돈키호테 동상 사진을 찾느라고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찾아도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20년이 지난 사진을 찾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벨지움 브뤼셀, 스페인 광장에 돈키호테 동상을 세운 것은 스페인이 벨지움을 식민지로 두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년 전에도 '돈키호테'와 '산초', 로시난테는 아주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고 느꼈다. 얼마나 스페인 사람들이 '세르반테스'를 자랑스럽게 느끼는지 한 순간에 확인되었다. 한 나라를 지배했던 것을 기억 기념하는 데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를 내세운 것이다. 그들의 문화, 예술적 긍지와 자부심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배를 당했던 아픔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벨지움 국민들에게 묘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머리로 다시 돈키호테를 그리며 푸에르토 라피세에 들어섰다. 날은 너무나도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하늘은 스페인의 자유를 향유하라는 듯 파란 물빛이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돈키호테의 여관, 벤타 델 키호테(Venta del Quijote)라는 간판이었다. 간판은 자랑스레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보았다. 긴 타원형 간판에는 'Venta del Quijote'를 세 부분으로 나눠 힘 있게 적혀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얼마 전 EBS 세계명화 시간에 영화가 생각났다. 바로 그 장면이다. 잊을 수 없는 명화 해바라기의 출연했던 소피아 로렌이 돌시네아가 되어 영화 'Man of La Mancha(돈키호톄)'에 등장한다. 그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가 이곳 벤타 델 돈키호테였다. 그 장소가 그대로 내 눈앞에 있다. "아! 돈키호테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구나." "마음에 담았던 곳을 이제 실제 눈으로 생생히 보는구나." 기쁨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모든 것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진리를 재확인한다.
주막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모습의 돈키호테가 반긴다. 우물 옆에 있는 돈키호테를 비롯하여 서 있는 모습, 창을 들고 있는 돈키호테와 산초가 자리해 있다.
라 만차 글씨가 새겨진 키홀더기념품점에 들어갔다. 상점 안에는 돈키호테에 대한 모든 것이 있었다. 진열대를 한참 보았다. 컬렉션하고 있는 키홀더 두 개를 골랐다. 수십 년간 키홀더를 수집했다. 키홀더 컬렉션에는 자신의 철학이 있다. 반드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고 장소적 특징이 한 눈에 나타나야 한다. 키홀더를 보았을 때 그 장소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이 두 개의 키홀더보다 돈키호테를 더 잘 표현하는 것은 없었다. 하나는 메탈이고 다른 하나는 점토로 되었다. 메탈의 앞면 배경에는 풍차, 로시난테를 타고 있는 돈키호테와 시종 산초 그들의 모습이 마치 작품 속에서 모험을 떠나는 듯이 보였다. 뒷면에는 'D.Quijote Y Sancho'가 가로줄을 따라 새겨져있다. 값은 5유로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고원 라 만차에서 가져 온 흙으로 빚은 양 향토색 바탕의 라 만차 글씨가 쓰여 있다. 배경에는 당연히 돈키호테와 산초가 자리했다. 이것은 3유로 60센트다.
라 만차란 에스파냐의 남부고원 지역의 지명이다. 이름 자체가 고원을 나타내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실 돈키호테의 원명은 재기 넘치는 기사, 라 만차의 돈키호톄(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이다.
현재 돈키호테는 한국에서 서적 판매 누적 7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세계 고전이다. 스페인의 자랑인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숨결을 그의 나라 스페인에서 느끼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럼에도 늘 못 가본 것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처럼 미련이 남는다. 스페인어를 좀 했더라면 하는 짙은 아쉬움이 갖고 다음 여정으로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