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년 만에 대학원으로 돌아갔다. Well-being(참살이)과 관련된 수업이었고, 주요 내용은 회복탄력성이었다. 내 삶의 키워드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고 나는 "음미, 헌신, 감사"라고 답했다. 빈칸 메우기 활동을 하며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졌다. 나는 (묵묵히,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가지고 있다."라고 답했다.

나의 일상.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다녀온 지금까지도 너무 과하게 규칙적이고 일관된 삶은 누군가의 눈에 답답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늘 '비슷한 시간에 새벽같이 일어나 씻고 애들 챙기고 직장에 가서 열심히 일하고 서둘러 퇴근하여 밥 지어 먹이고 아이들의 공부와 학교생활 챙기고 또 자고....'의 반복. 난 그런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형의 인간이라 다행이라고 또 의미를 부여하며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다 문득 아직 끝마치지 못한 여행기가 생각났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마침표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부터였지? 그래. 벨기에에서 실비아와 만나 복잡 미묘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고,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왔다. 100일 가까이 함께 했던 자동차를 반납하고 캠핑 장비를 추렸다. 버릴 건 버리고, 한국으로 가져올 만한 것은 단단히 묶었다.

 리씨네 여행 동안 우리의 집, 안식처가 되어준 붕붕이와 이별이다.
리씨네 여행 동안 우리의 집, 안식처가 되어준 붕붕이와 이별이다. ⓒ 이성애

남들이 가는 루브르 미술관에 가고, 에펠탑 아래에서 포장 음식을 먹었다. 일행은 나에게 가방을 꼭 잡으라고 말하며 눈짓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스름 어두워지는 저녁에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아프리카계 프랑스인들이 군데군데 앉아 우리 쪽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꽃을, 또 어떤 이는 와인을 들고 있었다.

프랑스의 책, 사상, 사람, 풍경에 대해 동경하며 상상해왔던 그간의 '상상의 역사'의 한 페이지가 북 찢어졌다. 신자유주의가 지나간 곳이라면 어느 나라,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가혹하리만큼 힘든 시간일 거라고 생각한다. 날씨가 좋았던 다음 날 아프리카계, 아랍계 프랑스인들의 귀여운 아이들이 에펠탑 아래 분수에 들어가 물놀이를 한다. 가만히 보니 유색인종들만 있다. 우리도 유색인종이니 들어가 보면 되겠구나!

 에텔탑 분수 밑은 유색인종의 물놀이장이었다. 우리도 빠질 수 없다.
에텔탑 분수 밑은 유색인종의 물놀이장이었다. 우리도 빠질 수 없다. ⓒ 이성애

긴 여행의 뒷부분은 끝까지 한편의 글이 되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강렬한 몇 가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넓은 세상에 나가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어 나의 견문을 넓히는 것에 도전하고자 했었던 3개월간의 유럽 캠핑. 대한민국에서의 일반적인 삶이 전 세계 일반적인 삶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기에 내 친구와 이웃이 사는 모습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옳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또 한인민박 백여사님은 30년간 프랑스에 살며 많은 한국 유학생, 관광객을 보았다. 한국 아이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이겠냐는 나의 질문에 여사님은 "배려"라고 했다. 그렇겠다. 타문화, 타국민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기반하여 더욱 배려할 수 있는 인간으로 자녀를 양육하기로 마음먹었다.

 화가 마네가 거닐었다던 파리 근교의 어느 강가에서 백여사님과 함께 여유있는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화가 마네가 거닐었다던 파리 근교의 어느 강가에서 백여사님과 함께 여유있는 한 때를 보내고 있다. ⓒ 이성애

여행을 다녀와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은 공부, 경쟁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은 시골 학교에 입학하여 아무런 편견 없이 친구를 사귀고, 학교생활을 했다. 아이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발견되고 며칠 있다 학교에서 머릿니를 박멸하자는 안내장을 받았다. 머릿니 박멸을 위해 약품을 쓸까 어쩔까 고민하며 문득 십년은 족히 거슬러서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편안했다.

마당에는 여러 마리의 개와 어느 추운 겨울 우리 집에 눌러 앉은 도둑고양이가 숨바꼭질을 하며 앙앙대며 뛰노는 날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짐승처럼 손을 발처럼 땅을 딛고 움직이는 용도로 썼다. 감, 살구, 보리수를 따 먹었고 목련, 복숭아꽃이 피고 지는 걸 보았다. 라일락 꽃내음이 참 고급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 먹다 목이 꺾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택의 삶은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피하지 않고 최대한 정직하게 계절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마당 있는 집에서 동물과 함께 유년을 보내는 것이 다른 나라에선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소수만이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나와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관심과 시선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불편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사회성이 걱정 되어 시골 생활을 부정적으로 봤던 한 다리 건너 지인, 한창 여아 성폭행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당시 마치 시골생활이 곧 우리 아이도 성폭력을 당한 것인냥 폭풍 걱정을 쏟아 붓던 나의 가족 중 1인. 그러나 휩쓸리지 않고 크고 작은 스트레스, 극도의 두려움에 맞서 지금까지 만족할 만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들어간 유럽캠핑에서의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나이 서른아홉, 맞벌이 워킹맘으로서 나는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그래서 지루하고 대부분 고단한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 앞으로 인생의 많은 갈림길 앞에서 난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주위 친구와 동료의 염려와 걱정이 때론 위안과 응원이 되기도 할 테고, 때론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어 한 걸음 내딛기조차 무서운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때마다 꽤 오래 전 여행이었으나 지금까지 나를 이루는 일부분이 되어 버린 그것에 의지해 보기로 한다.

"한국 사회 구성원의 95%가 선택했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닐 수 있어. 내가 그리 유별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 소수 5%의 삶일지라도 이것이 글로벌 스탠다드 일 수도 있어. 그러니 나도, 너도 그냥 우리가 옳다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대로 삶을 살아가도 그리 나쁘지 않아."

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리씨네 여행기#귀국#프롤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