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계륵의 뜻을 발설한 자 죽음을 면치 못하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경질됐다. 트럼프의 오른팔로 불리던 그가 한반도 철군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결코 돌발적 행동이 아니다. 현재의 정세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염두에 둘 만큼 미국에는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것을 트럼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미국의 속사정을 발설한 배넌을 경질한 사건은 조조의 계륵(鷄肋)을 생각나게 한다.

<삼국지연의>에는 조조가 한중에서 유비와 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조조는 한중을 포기하고 퇴각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저녁으로 닭요리를 먹고 있던 조조는 오늘의 암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닭 갈비뼈를 들고 혼잣말처럼 '계륵이로다'라고 중얼거렸다.

모사 양수가 계륵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조조가 퇴각할 것임을 간파해 군사들로 하여금 짐을 싸도록 했다. 이를 안 조조는 군령 위반이라 하여 양수의 목을 베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이 불쾌했을까, 아니면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책임을 물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체면을 살리려고 애꿎은 양수에게 책임을 돌린 것일까?

조조는 한중을 차지하고자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돌아가면 웃음거리가 될 판이었다. 그 상황에서 양수가 조조의 속마음을 알고 계륵의 의미를 철군으로 해석한 것이다. 결국 조조는 양수가 예상했던 대로 철군하게 된다.

괌 포위 사격 계획에 떨고 있는 미국

트럼프를 볼 때 조조의 처지가 겹쳐 보이고, 배넌을 볼 때 양수의 처지가 겹쳐 보인다.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과의 대결에서 전례 없던 난관에 부딪쳐 있다. '화염과 분노'로 응징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언급(8일, 현지 시각)에 조선은 괌 포위 사격으로 응수(9일)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 상황이다.

괌에는 앤더슨 공군기지가 있다. B1-B 전략폭격기도 거기서 날아온다. 조선은 바로 이 기지가 있는 섬을 포위 사격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대결 상황이 수습되지 않아 조선의 계획대로 포위 사격이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조선이 포위 사격 계획을 밝힌 이후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을 수습하는 데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낸 기고문에서 "오랫동안 고난을 겪어온 조선 인민을 해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으며,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도 같은 날 "우리 모두는 전쟁 없이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군사적 해법은 없으며, '주한미군 철수'도 협상 카드로 고려하고 있다."는 스티브 배넌의 충격적인 발언이 나온 것이다. 결국 배넌의 말은 조선과의 대결에서 달리 수습할 길이 없는 미국의 곤혹스런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의 전망

스티브 배넌은 조선에 대해 "군사적 해결책이 없다"면서 "누군가 (전쟁 시작) 첫 30분 안에 재래식 무기의 공격으로 서울에 사는 1천만 명이 죽지 않을 수 있도록 방정식을 풀어서 내게 보여주기 전에는"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마치 서울 시민의 희생을 염려하여 군사적 옵션을 채택하지 못하는 것으로 들릴 법하다.

과연 그럴까? 아프간이나 이라크 침략에서 보듯이 미국은 민간인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런 입장은 트럼프가 내뱉은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쟁으로 큰 희생이 발생하더라도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개의치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이 전해지지 않았는가.

서울 시민의 희생을 염려하는 듯한 배넌의 발언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 속뜻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30분이면 조선의 ICBM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한다. 결국 그들이 염려하는 것은 미국 본토에 핵무기가 날아드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것은 이와 같이 엄중한 정세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조조가 양수의 목을 쳤지만 결국 한중을 포기하고 철군했듯이 트럼프가 배넌을 경질했지만 결국 미국은 한반도를 포기하고 철군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조-미 평화협정 소식과 함께.


#평화협정#평화협정운동본부#주한미군#미군철수#배넌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 문학박사, 번역가. 충남 청양 출생. 시집 <<송전탑>>(2010). 번역서 <<명상으로 얻는 깨달음>> 외 다수.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