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간다는 거는 뭐라 안 하겠는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지는 말랬지?" 허리 통증의 강도가 세진 탓에, 외출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그. 그의 귓가에 마음마저 후벼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리 질환이 있는 이정민(23, 가명)씨는 군부대라는 사각지대에서 '아픔'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육체·정신적으로 지우기 어려운 상흔을 입고 말았다. 지난 21일 기자와 만난 이씨는 그동안 가슴 안에 눌린 것들을 쏟아냈다.
지난해 9월 공군에 입대한 이씨는 총 복무 기간 2년의 절반도 못 채우고 올해 7월 27일 전역해야 했다. 전역 사유는 추간판 탈출증(허리뼈 일부가 돌출돼 요통 및 신경 증상을 유발하는 질병)이 악화되면서 수술 대상으로까지 고려됐기 때문.
그럼에도 이씨의 전역은 녹록지 않았다. 군에 들어온 이상, 몸이 아파도 선임의 눈초리와 각종 사유로 근무를 빼기가 어려웠다. 통증이 심화돼도, 부대의 배려가 없으면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이씨의 사례가 그대로 보여준다. 전역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씨가 몸에 이상을 느낀 건 부대 배치를 받은 지 1개월 뒤. 급기야 올해 1월 중순께에는 통증의 강도가 1에서 10으로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단다. 이씨가 맡은 업무는 허리 통증과 관련이 없을 수 없었다. 이씨의 특기는 헌병이었다.
"초소병으로 정문 출입을 통제하는 일을 맡았어요. 헌병은 근무 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고, 총과 공포탄, 탄띠, 각종 장구도 메야 합니다." "수술해야 하지만 경계 근무는 계속"
허리 통증은 육안으로 상처가 보이는 외상이 아닌 내상이다. 그런 이유로 이씨가 아픈 기색이라도 보이면 선임들은 꾀병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단다. 통증이 계속되자 이씨는 자구책으로 3월까지 정기 휴가와 청원 외출을 이용해 동네 의원에서 한 번,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세 차례 진료를 받았다.
당시 군 병원에서 육군 병장이 소독용 에탄올 주사를 맞고 왼팔이 마비되는 의료사고가 알려진 뒤라 군 병원에 대한 불신이 작지 않았다. 그러나 군인 신분인 이씨는 바깥에서 마냥 진료를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씨는 검사와 진료만이라도 국군양주병원에서 받기로 결정했다. 군의관의 대답은 명확했다고 한다.
"군의관은 '당연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수술 안 한다고 지금 당장 죽는 건 아니니 수술할지 말지 본인이 선택하라고 했어요." 경미한 통증에서 어느덧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경계근무는 계속됐다. 2인 1조로 교대가 이뤄지는 상황, 이씨가 외출로 진료를 받으러 나가면 근무조 순환이 빨라져 다른 병사들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명만 빠져도 근무조가 빨리 돌아요. 한 번 근무 서면 보통 다섯 시간 정도였어요. 1.5일이나 3일에 한 번 야간 근무를 설 때에는 하루 10시간도 근무했죠. 공휴일 상관없이 근무조가 돌아가는 대로 투입되는 거예요." "몸은 아픈데 인터넷은 잘하네" 통증은 커지는데 진료 횟수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 진료받는 날이 많아지면서 선임들의 비난도 뒤따랐다. 2월이 되자 이씨가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인터넷을 하려고 자리에 앉을 때면 "요새 헌병에 꿀 빠는 애 하나 있다는데 아냐?", "허리 아프면 인터넷도 못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고 한다.
병원 진료 때문에 외출하고 돌아온 4월 초, 결국 '사건'이 터졌다. 이씨가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인터넷을 하려고 자리에 앉았더니 한 병장이 "몸은 아픈데 인터넷은 잘하네"라고 핀잔을 줬단다.
"처음 그 말을 듣고 참다가 '이게 허리랑 뭔 상관이냐'고 말했어요. 그러더니 '일병이 병장한테 대드냐, 내가 뭔 말 하는지 모르겠냐, 아프다고 말년 병장한테까지 개기냐' 이런 말을 하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이날 이후로 이씨는 선임들로부터 '망나니' 취급을 받았다. 뒷말로 소문이 무성해지더니 이씨가 어디에 어떻게 아픈지 모르는 병사들도 험담에 가세했다고 한다. 뒷감당은 오롯이 이씨 몫이었다.
일말의 희소식이 이씨에게 전해졌다. 4월 6일, 국군수도병원이 이씨에게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씨는 군 생활을 이어나가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통증이 계속되자 수도병원에 판정을 의뢰해 4급을 받은 것이었다.
현역 입영 기준에서 4급은 '보충역', 즉 사회복무요원이다. 그러나 이씨는 판정 결과를 들고 대대 주임원사를 찾아가자 "4급 받았다고 다 공익으로 내보내주면 누가 군대에 남겠느냐"라는 말을 듣고 근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단다.
이씨는 변호사와 행정사를 수소문했고 이들로부터 '육군은 4급을 받을시 그 질병이 허리와 관련이 있으면 사회복무요원 전환에 긍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군 규정도 아울러 살폈다.
공군 내부 규정 157조에 따르면, '신체등위가 5급에 이르지 아니한 사람은 신체적 질병으로 임무 수행이 곤란할 경우 심사를 거쳐 보충역 또는 제2국민역(현역 면제)에 편입할 수 있다'고 규정해뒀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던 와중에 4급 판정을 받은 이씨는 보충역 혹은 면제를 받을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차마 훈련을 열외할 수 없었던 이씨 이씨는 등급 판정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초, 대대장에 이메일을 보냈다. "결례인 건 알지만, 주임원사를 거쳐도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메일을 드린다"라고 운을 뗀 이씨는 "병원의 진료 기록과 더불어 행정사의 답변도 있으니 (심사 청구에 대한) 부대의 방어적인 태도를 바꿔주길 바란다"라는 의견을 적었다.
기대와 달리, 대대장의 답은 명쾌하지 않았다. 대대장은 '수술 혹은 입원과 같은 확실한 자료가 없으면 심사에 탈락할 가능성이 있으니 군 병원에서 부적격을 입증할 자료를 더 얻자'는 입장을 내놨다고 한다.
이씨에 따르면, 대대장 간 이메일로 대화를 나눈 마지막 시점은 4월 13일. 보다 못한 이씨는 대대장을 직접 만나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근무를 계속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답했다. 결과는 가혹했다.
"이야기하던 중간에 간부 하나가 저를 끌고 가더군요. 데려가더니 '너는 왜 이리 싸가지가 없냐, 일개 병사가 대대장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게 되느냐'는 식의 말을 이어갔어요." 심사 청구를 놓고 평행선과 같은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이씨는 훈련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병사들 사이에서 평이 안 좋은데, 훈련도 빠져버리면 병영생활을 이어나가기 너무 힘들 것 같아 이씨는 차선책으로 훈련에 참가하는 걸 택했다.
"매달 3~4시간 기지방호 훈련에 참여하다가, 검열 기간에 한 간부가 제게 '훈련에 참여하면 무리가 생길 수 있으니 잠시 휴가 나가 있으라'고 했어요. 또 '꿀 빨았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훈련에서 열외할 수 없었습니다."공군에 따르면 4월 10일 대대장과 이씨가 면담을 했고, 이 자리에서 이씨는 대대장에게 근무 열외를 요청했지만 부대 사정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대장은 이씨에게 '근무표를 짜놓은 상황에서 한 사람만 빠져도 다른 병사는 잠을 못자고 근무를 해야 하니 4일 정도 더 근무를 서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이씨는 "4일 근무하고 선임 병장의 요구로 근무를 더 했다"고 말했다. 열외를 요청한 지 일주일이 지난 4월 17일에 가서야 이씨는 경계 근무에서 벗어나 주임원사실로 차출될 수 있었다.
4월 중순까지 근무 서다 5월 말에 전역 판정, 그 사이 몸은...이씨는 끝내 통증이 가라앉지 않자 5월, 국군양주병원에 입원한다. 재검사를 했더니 5월 31일, 신체등급 5급을 받았다. 심사가 불필요한 '현역 부적격', 전역 대상이었다. 4월 초에 4급에서 5월 말에 5급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에 군의관이 '너는 볼 것도 없이 전역이다'라고 하더군요." 돌아보면 올 1월부터 심한 통증을 달고 다녔던 이씨는 눈칫밥 가운데 4월 중순까지 남들 하는 훈련을 같이 받으면서 경계근무를 계속 서야만 했다. 신체등급 5급 판정 이후 휴가를 통해 집에서 요양하긴 했지만, 행정 처리가 완료된 7월에 이씨는 한층 악화된 심사 결과를 받고서야 전역할 수 있었다.
적은 근무 인력과 여전한 병영 생활의 부조리, 부대의 늦은 조치가 연결되면서 이씨는 위기의 늪에 있었다. 경계근무 당시, 부대 차원에서 근무일수라도 줄여 이씨의 통증을 덜어줄 수 없었던 것도 그 맥락 안에서 비롯됐다.
공군 관계자는 지난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월 중순부터 이씨가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통증을 호소했지만 서서 일하는 헌병 경계 근무 특성상 통증이 일어난다고 무조건 열외할 경우 적은 인력으로 근무표를 짜기가 어려워진다"라면서 "4급 판정 뒤에도 이씨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하고 근무를 요청하긴 했으나 근무를 선 이후엔 열외하도록 조치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씨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몸이 망가지는 걸 기다린 뒤에야 전역할 수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