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 맘에 있던 걸 그대로 쓴 거예요.""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는 숨이 막히는 거 같았어요. 트라우마죠. 막히고 깜깜한 곳이 떠오르니까요. 아빠랑 얘기해요. 영화관에 가지 말자고.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그 상황이 떠올라요. 못 올라오지. 저 문을 기어서 어떻게 올라갈까? 그게... 기울어진 상태에서 아무리 구명조끼 입었다고 해도 올라갈 수 없지..." 혜경이 어머니 유인애씨가 인터뷰 자리에서 꺼낸 첫마디였다. 혜경이 엄마 유인애씨를 만난 건 세월호 3년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짧은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 <단원고약전>을 작은도서관 100곳에 보내는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스토리펀딩을 위해 써야 할 기사를 기획하던 중 어머니 한 분이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약속을 잡고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졸여왔다. 너무 큰 아픔을 가진 어머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설혹 내가 먼저 눈물을 쏟는 건 아닐지, 어떻게 듣고 싶은 말을 유도해야 상처가 되지 않을지 머리가 복잡했다.
세월호 참사는 유족들만의 아픔이 아닌 전 국민의 슬픔이었기에 유족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 얘기하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약속시간에 맞춰 오신 혜경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선하고 맑은 모습은 억지로 눌렀던 감정의 선을 넘어서게 했다.
올라오는 울컥거림을 간신히 누르며 "안녕하세요"라고 웃음으로 인사했다. 자그마한 얼굴에 순수한 눈빛의 어머니와 큰 눈에 착한 기운이 가득한 아버지의 인상만으로도 혜경이가 어떤 아이인지 단번에 느껴졌다. 그 예쁜 아이를 잃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사랑하던 '긍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엄마와 아빠는 혜경이를 '긍이'라고 불렀단다. 첫딸인 '띵이'와 네 식구가 참 예쁘게 살았다고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이었던 혜경이는 막내답게 애교도 많이 부렸지만, 속도 깊은 아이였다고 회고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면 고생하는 엄마의 잔주름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했고, 착한 아빠를 닮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 착한 딸이었다고 했다. 언니와는 둘도 없이 친하고 의좋은 자매였다는 혜경이. 그런 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수학여행을 가던 친구들과 함께 열여덟 꽃다운 나이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난 것이다.
소식을 듣고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갔던 부모님 두 분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한 마디 말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애가 끊어질 듯한 아픔, 자식을 잃은 슬픔이 복받쳐 창자 마디마디가 끊어지는 아픔이 바로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다.
혜경이 부모님은 그 애끓는 부모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했다. 아이를 잃고 팽목항에서,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혜경이를 위해 싸웠다고 했다. 그게 황망하게 세상을 등진 아이를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했다.
밥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다. 원래부터 평생 책 한 권 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걸 아는 친정동생이 시를 써보라고 했다. 혜경이를 위해서 시를 쓰라고 했지만 '혜경이는 그렇게 갔는데 엄마는 이렇게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질없어 보였다. 그런데 동생이 계속 힘을 줬다.
결혼 후 7년 만에 가진 아이들, 시험관 시술까지 했는데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서 포기했을 때, 선물처럼 온 아이들이라고 했다. 언니를 낳고 2년 만에 혜경이를 가졌는데 너무 예쁘고 기뻐서 엄청 위하고 받들었다고 했다. 그 아이를 생각하니 써야겠다는 용기가 났다고 했다.
"세상은 잠시 바뀌었지만, 엄마들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다시 힘을 얻고 혜경이를 담은 시를 썼다. 아이가 떠난 지 1년 반 정도 지나서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입혔던 배냇저고리를 꺼내 젖내 나는 아이의 체취를 맡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써온 시가 120편. 그중에서 64편의 시를 묶었다. 지난 8월 <단원고약전>을 펴낸 굿플러스북(대표 이재교)에서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라는 제목으로 시집이 나왔다.
<단원고약전>을 펴내고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집을 만드는 등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많은 일을 해온 '굿플러스북'은 혜경이 어머니에서 시인으로 다시 서는 유인애씨를 위해 이해인수녀님과 이산하 시인에게 글의 표사와 해설을 부탁했다.
두 분 모두 기꺼이 시를 읽고 글을 보내줬다. 이해인 수녀는 표사를 통해 "딸을 잃은 슬픔과 딸을 향한 그리움이 그대로 시의 꽃으로 피어난" 시집이라고 애정을 보내줬다. "깊은 슬픔 속에 숙성되고 발효된 언어들은 눈물겨운 공감의 언어로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시고, 마음껏 슬퍼함으로써 조금씩 치유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라며 "힘들어도 힘내세요, 혜경이 엄마"라고 격려의 마음을 전했다.
4.3항쟁을 담은 서사시 <한라산>을 쓴 이산하 시인도 혜경이 어머니의 마음과 시에 담겨진 모성애를 해설에 담아 보냈다. "시집을 펼치자 내 피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처음 시를 본 느낌을 전한 이 시인은 시집의 시편들을 "펜으로 쓴 뜨개질"이라고 표현하며 "상처받아 뾰족했던 아이들의 영혼이 엄마의 손끝에서 둥근 무지개처럼 떠오른다"라고 평했다.
"엄마 유인애씨가 피눈물로 쓴 이 시집에서는 칼로 천천히 살점을 도려내고 천천히 뼈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한 번 죽지만 엄마는 수백 번 죽는다"라며 한 편 한 편 시를 쓰며 고통을 견뎠을 엄마 유인애씨의 심정을 짐작하고 보듬었다.
"진실은 침몰했고 살 한 점, 뼈 한 조각 만져본 게 전부였다.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세월호는 탄핵되지 않았다. 세상은 잠시 바뀌었지만 엄마들의 세상은 잠시도 바뀌지 않았다. 하물며 아이들의 영혼은 어떠하랴. 이게 현실이다. 세상은 강자가 약해져서 바뀌는 게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바뀐다. 하늘로 올라가는 피를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내 피가 아니라 이 시집의 시들이었다."해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세상을 직시해야 할 이유도 전해줬다.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어요. 우리 딸 생각하면서 가까이에서 느끼는 거. 엄마 등 뒤에 와서 엄마가 좋다고 그런 모습 생각하며 썼어요. 딸을 위해 못 쓰는 글이라도 써서 추모관 생기면 유골함 옆에다가 하나 놔주고 싶어서... 엄마가 해줄게 하고..."혜경이 엄마, '약손 같은' 시인으로 태어나다
작가의 말을 통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를 타고 먼 여행을 떠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혜경이의 엄마로 쓰고 또 쓸 것이다"라고 다짐한 혜경이 엄마는 이번 시집을 통해 유인애 시인으로 거듭났다. 그래서인지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는 폭풍 같은 두 계절을 보내고 온몸을 물들이며 안주하게 될 혜경이 엄마의 나무 같은 시집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어머니의 약손 같은 시집이 될 것이다.
굿플러스북은 오는 9월 5일(오후 6시) 서울 NPO지원센터에서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북콘서트를 연다. 혜경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영상과 시인과의 토크로 진행되며 가수 '노래하는 나들'(문진오, 김가영)과 춘천에서 활동하는 가수 이상은씨가 시집에 담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들려준다.
<뒤돌아보아도 아프다>뒤돌아보아도 아프다 시간을 가슴에 짓이겨 뭉갰지 멈추어도 아프다 시간을 어미 발꿈치로 짓밟고 한 발짝 떼어도 아프다 시간은 뇌리에 정박해 있다 2014. 4. 16사랑하는 딸 앞에서 죄 많은 엄마는 눈물만 보인다. <배냇저고리>오늘 장롱 서랍 속 깊숙이 흔적을 찾아 눈과 손을 빌린다 신생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 두 벌이 예쁘게 개어져 있다 큰 아이 입히고 작은 아이도 입혀서 앞섶부분이 누런 배냇저고리 손을 쫙 펴서 재어보니 한 뼘하고 반 정도요렇게 작았구나.얼굴 대보며 17년 전 아기였던 너의 냄새를 맡는다.아기분과 젖 냄새, 분유냄새그 냄새를 애써 찾는다.내 분신이었고 내 사랑을 한없이 준 아기요 배냇저고리 다시 입히면 좋으련만지난 흔적만 아련하게 끌어낸다.그래도 이 순간 배냇저고리 입은 아기는내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사랑해 아가야….<그 길>아비도 걷지 않고어미도 걷지 않은길이 하나 있다.그 길살아생전우리에겐 보이지 않던 그 길어린 꽃잎이 떨어진다.차디찬 바다 속으로안간힘의 눈물이바닷물과 뒤섞이며사랑하던 예쁜 딸이기어이 떠나고야 말았던그 길돌아서도 되돌아서도 발걸음 옮길 수 없는그 길어린 딸이 아비보다도 먼저어미보다도 먼저앞서 간 그 길올바르지 못한 자의 만행 그림자에 가려진그 길내 딸 혜경아너를 먼저 들어서게 해서 미안해, 미안해….<맹골수도>노란 부표가 떠 있다.사랑하는 딸내미 있던 자리몰아치는 가쁜 숨 이내 풀썩 힘없이 내려놓은 손그 자리아빠 엄마 일년이 되어서야 그 숨결 일었던 여기에 왔다.선회하는 배 위에서딸내미 혼자 홀연히 올라온어린 영혼 고통의 자리헌화하며 사무치는 그리움눈물로 배회한다.돌아서야만 하는 길 야속하고 매정한 이 엄마딸내미의 천사 날개가 묻혀버린통한의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눈물로 작별 인사를 한다.일 년이 지난 오늘도 멍청한 이 어미는하염없이 맹골수도만 응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문학뉴스에도 게재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