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황당, 분노.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한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이 단어를 꺼냈다.
여성환경연대는 24일 오전 서울 서소문로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릴리안 생리대를 각각 1년, 3년 사용한 여성 2명이 참석해, 자신이 겪고 있는 피해를 설명했다.
최근 몇 달 동안 온라인 상에서 릴리안 생리대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이 쏟아졌고,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릴리안 품질 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후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깨끗한나라가 환불은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뒤 이틀 만에 이를 뒤집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40대 여성 "내가 쓴 생리대 때문이라고 상상도 못 해"
릴리안 생리대를 약 1년 정도 사용했다는 40대 여성은 생리기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는 5~6일 정도 생리를 했는데 그게 하루하루 줄더니 올해 초에는 만 하루밖에 (생리를) 안 할 정도로 줄었다"며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폐경이 왔나라고 생각했지 내가 쓴 생리대 때문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고 밝혔다.
현재 생리를 이틀밖에 안 한다는 그는 "원상복귀가 안 되고 있다"며 "폐경이 되는 거 아닐까 솔직히 너무 불안하다"라며 고통을 토로했다.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3년 동안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했다는 20대 여성 또한 비슷한 증상을 호소했다. 보통 생리기간은 5~7일로, 첫날에서 둘째 날 양이 가장 많고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이 여성은 "릴리안 제품을 사용한 후부터 첫째 날에 양이 많지 않았고 3~4일째에는 소량의 갈색 분비물이, 6일째에는 첫째 날과 비슷한 양이 나왔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3년 동안 생리불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하기 전에 27~30일 주기였던 생리가 2~3주, 7~8주, 3개월에 한 번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최근 두 달 동안에는 생리를 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그는 "2014년에 3개월 동안 생리를 전혀 하지 않아 자궁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단순 스트레스라고 해서 그러려니 했다"면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제품에 유해물질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니 황당하다"고 심정을 밝혔다.
여성환경연대 "47시간 만에 3009건의 제보 쏟아져"
두 사람만 이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릴리안 제품을 사용해 온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21일 오후 7시부터 23일 오후 4시까지 피해제보를 받은 결과, 많은 이들이 두 여성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응답자 3009명 중 70.7%인 2126여명이 생리기간 감소를 겪고 있다. 1076명이 2일 이하로, 1050명이 3~5일 이하로 생리기간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141명은 생리가 아예 끊겼다고 제보했다.
릴리안 사용 후 질염 등 염증 질환을 겪거나 그 전보다 더욱 심한 염증 질환을 겪었느냐는 질문에 1680명(55.8%)이 '그렇다'고 답했다. 릴리안 사용 후 최근 3년 이내 월경과 자궁질환으로 검진이나 진료를 받은 사람도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1495명이었다. 이들이 겪은 질환은 질염, 생리불순, 자궁근종 등이다.
응답자는 10대~60대까지 다양하나, 20~30대가 80%를 차지했고, 사용기간도 3개월 이하부터 7년까지 다양하다고 여성환경연대는 전했다.
깨끗한나라, 환불조치 발표했지만... 소비자들 "화가난다"
한편, 깨끗한나라는 23일 공고문을 통해 "28일부터 릴리안 생리대 전 제품에 대해 환불 조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해당 제품이 안전하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구매 시기, 영수증 보관 여부와 상관없이 환불이 가능하다.
이런 깨끗한나라의 조치에 대해 20대 여성 제보자는 "환불이라는 가벼운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불편하다"며 "유해물질이 없는 100% 천연 순면 생리대라고 홍보해온 깨끗한 나라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릴리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일회용 생리대에 무슨 성분이 들어있는지 표시하지 않고 있어, 소비자인 여성들은 구체적인 정보 없이 광고에만 의존해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김동희씨 또한 릴리안 생리대 사용자다. 김씨는 "릴리안 생리대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난 뒤 한동안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며 "흡수는 빠르고 자극은 적다는 릴리안 생리대가 내 몸을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고 외쳤다.
이어 김씨는 "이번 사태는 릴리안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게 문제가 아니라 생리대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조사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라며 "여성 건강권을 위협하는 생리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마음 놓고 사용할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한 생리대가 여성 인권이다"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안전한 생리대가 여성 인권이다"라고 외쳤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속한 원인규명과 건강 역학조사, 문제가 된 제품 외의 모든 일회용 생리대 제품에 대한 성분조사 등을 촉구했다.
SBS스페셜에서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바디버든'을 연출한 고혜미씨는 "식약처는 지금이라도 환경보건법 사전주의 원칙을 적용해서 피해자와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피해 제보들과 생리대간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생리대 사용에 대한 불편과 생리통 등 어려움이 오랫동안 지속돼왔지만 여성들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겨져서 주목이 안 됐다. 여성용품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고 생활제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방안이 마련되는 계기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