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100일을 넘겼다. 이날을 앞두고 <한국갤럽>이 주요 분야별로 여론조사를 시행한 결과 외교·복지·경제·대북·인사 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가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복지 정책은 긍정평가가 각각 65%로 가장 높았다. 경제 정책은 응답자의 54%가 긍정 평가했다. 대북정책은 긍정이 53%, 인사는 50%로 집계됐다. 긍정 평가가 가장 낮은 분야는 교육으로 35%(부정 20%)였다. 교육 분야는 긍정 평가도 낮았지만, 유보 의견(45%)도 가장 많아 눈길을 끌었다.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하려고 욕심내면 안 돼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전 정부와는 다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다. 고등교육 분야도 공공성 강화로 정부 역할을 강조하면서 국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하는 등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대학 체제개편의 핵심 역시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였다.
이에 곽병선 군산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우리 고등교육정책은 그동안 대학의 자치와 자율을 부정하고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교육부 관료가 결정하고 대학이 따라가는 시스템이었다"며 "문재인 정부는 고등교육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질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하려고 욕심내면 안 된다. 구조개혁은 각 대학에, 선택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곽 교수는 관 주도의 권위주의적 교육정책이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해 국립대 총장 직선제를 포기하도록 압박한 이명박 정부와 법령을 개정하면서까지 간선제를 강요한 박근혜 정부를 예로 들었다. 그 결과 2015년 8월 부산대학교 고현철 교수가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 보장, 총장직선제 등을 외치다가 투신자살하는 비극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토목사업에 투입한 재정을 국민적 합의에 따라 국가 차세대 사업 육성에 투입했더라면 지금쯤 그 열매가 맺어져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며 "국가 정책에 집단이나 권력자의 이기심이 개입되면 정책은 재앙이 되고, 그 재앙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군산의 어느 카페에서 진행된 곽 교수와의 인터뷰와 메일로 보내온 답변들을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적폐는 뭐라고 보나?"자율성이 위축된 관료 중심의 정책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그동안 우리 교육정책은 행정 관료가 결정하는 획일적인 시스템이었다. 특히 교육정책 밑그림은 국민적 합의로 결정돼야 한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정부 정책은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가운데 출발해야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또 하나는 대학의 공공성 문제다. 대학은 세속의 명예나 이익에 관계하지 않는 순수한 학문의 전당이어야 한다. 상아탑(象牙塔)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처럼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이 취업양성소로 변질된 지 오래다. 교수나 학생이나 취업에 몰두하다 보니 진정한 교육의 의미나 공공성에 대한 고민은 사치가 돼 버렸다.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OECD 국가의 고등교육 구조는 평균적으로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의 비율이 8:2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8이다. 그동안 정부가 고등교육을 내버려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로는 교육 공공성이 확보되기 어렵다. 국민의 교육비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언론은 본질을 파악하고 대안 제시해야
- 이명박 정부가 4대강 토목사업에 투입한 재정을 국가의 차세대 사업 육성에 투입했더라면 지금쯤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부연한다면?"4대강 사업 당시 많은 학자가 토목사업은 국가의 미래 산업이 될 수 없는 반시대적, 반환경적 사업이라고 반대했다. 20조 이상 투입된 재정을 만일 지금의 4차 산업의 인력양성과 산업기반 구축에 투입했다면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이 많이 해결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 4대강 사업보다 더욱 심각한 정책실패는 대학정책이라고 강조했는데?"대학 정책은 우리나라 미래와 미래세대를 준비하는 정책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연말이 되면 그해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누가 될 것인지 언론이 시끄럽다. 우리는 부러운 눈길을 보내지만, 그때뿐이다.
지금과 같이 관료 중심의 대학정책이 계속된다면 100년 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렵다. 구조개혁을 명분으로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대학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모든 대학이 같은 기준으로 움직인다면 우리나라 대학은 획일화되고, 서열화된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
- 대학 구조개혁은 시급한 당면과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언론의 성찰과 반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개혁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생각은? "언론의 기본 사명은 비판과 대안 제시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앞두고 주류언론들은 양비론적 입장에서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위치에 섰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당시 보도에 대해 반성하는 언론을 보지 못했다. 4대강 사업을 떠들던 언론들은 침묵하고 있고, 예찬론자들은 숨어버렸다.
대학 정책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본질을 파악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구조적 문제, 사학의 비리 문제, 부실대학의 퇴출문제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촛불의 힘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고 100일을 넘겼다. 언론이 제대로 된 비판과 감시, 그리고 적극적인 대안 제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대학 자율성 침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본격적으로 시작
- 우리나라 대학 구조개혁 논의는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 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쳤다. 각 정부의 교육 정책을 평가한다면?"김영삼 정부의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대학의 문을 낮췄지만, 대학의 과도한 신설로 대학구조개혁의 빌미를 제공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IMF) 사태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하였고, 이것을 대학정책에도 반영하였다.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 시작된 거다. 이로 인해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의 대학정책과 비슷하게 진행했고, 최초로 대학정보 공시제도를 도입하였다.
대학 자율성 침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국립대학 선진화 정책'을 근거로 국립대 총장직선제를 포기하도록 압박했다. 박근혜 정부는 법령을 개정하면서까지 간선제를 강요하였다.
그 결과 2015년 8월 부산대학교 고현철 교수가 대학 민주화와 자율성을 외치면서 투신자살하는 비극까지 발생했다. 또한, 프라임 사업과 같은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대학의 학사구조개편까지 밀어붙였다. 그 결과 대학의 학사구조는 심각하게 왜곡됐다."
- 역대 정권의 다양한 교육 정책 중,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분야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최초로 각 대학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한 노무현 정부의 '대학정보 공시제도'와 2009년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을 제공한 것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부실대학, 시장에서 자연 도태되는 시스템 돼야 -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정책이 수정될 것으로 점쳐진다. 따라서 대학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교육부에 해주고 싶은 말은?"정부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대학 구조개혁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선택에 맡기고, 정부는 부실대학 퇴출기준을 법으로 정하면 된다. 대학의 구조도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공립대학 비중을 대폭 늘리고, 대학의 재정확충을 위해 적어도 GDP 1.1% 정도의 재원을 확보하는 대학재정교부금 법도 제정해야 한다.
국립대학의 경우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통폐합보다 거점별 국립대학 협의회나 위원회를 만들어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공동의 대학원을 설립하거나, 시설 및 장비를 공동 이용하고, 각각의 특성화 분야를 앞세운 융복합 사업단 내지는 연구소를 설립하게 해야 한다. 사립대학 경우에는 대학 평가도 중요하지만, 법인의 건전성, 재정기여도 등을 중요 평가지표로 정해야 한다."
- 내년(2018년)은 고졸자와 대학입학 정원이 역전되는 첫해가 되고, 2023년은 대학 입학정원이 고졸자보다 16만 명이 많아진다고 한다. 정원감축은 모양내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항구적인 대비책은?"정원감축을 대비한 구조개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정부가 일률적인 지표를 만들어 정원감축을 하면 획일화된 대학이 만들어진다. 퇴출 기준을 법으로 정하고 각 대학에 자율적인 구조개혁안을 만들도록 하고, 정부는 이 계획들이 이행되는지를 감독하고, 선택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시장은 대학의 옥석을 가리고, 부실대학은 시장에서 자연 도태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1인 피켓시위 경험 후 대하는 시각 달라져- 대학(국공립 사립대 포함) 구조개혁은 정부에게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대학도 주체로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국립대 교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구조개혁은 개별 대학의 몫이다. 대학들이 처한 상황은 각각 다르다. 정부가 이러한 상황들을 무시하고 하나의 지표를 가지고 구조개혁을 하므로 대학의 특성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개별 대학이 처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 대학이 주체적으로 구조개혁을 해야 하고, 선택은 시장에 맡기자는 것이다."
- 박근혜 정부 시절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하는 1인 시위 사진을 봤다. 당시 군산에서 서울까지 올라갈 급박한 상황이라도 발생했었나? "2014년 7월 1일로 기억한다. 당시 전국 국공립대학교 교수회 연합회(국교련) 의장단은 청와대와 광화문 광장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립대학 교수들에게 누적적 성과연봉제를 강제하고, 총장직선제 포기를 강요하고,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미끼로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군산대학교 교수평의회 의장과 국교련 공동의장을 겸하고 있으면서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교육부는 청와대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고, 국립대학 행정이 모두 지시 일변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방법은 국민 앞에 직접 호소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많은 걸 느끼고 깨우치는 시간이었다.
2005년에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방폐장 반대 시위 등은 해봤지만, 서울에서 1인 피켓시위는 처음이었다. 행인들도 다가와 구경하고, 중국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등, 특별한 경험이었다. 전에는 피켓시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쳤는데 그 후 달라졌다. 피켓에 적힌 구호를 읽어보면서 '오직 답답하고 절실하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간다. 그래서 시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도 걸고, 사정을 들어보고, 위로라도 한마디 던진다."
군산대, 탄력적 학사운영으로 특성화 이뤄내야-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과 정부에 전하고 싶은 말은?"최근 서울대 공대 교수 26인이 각 전공 분야의 한국 산업을 진단하는 내용을 담은 책 <축적의 시간>을 읽었다. 기술 선진국들은 200~300년 이상 시행착오를 축적할 '시간'이 있었다는 대목에 호감이 갔다.
우리는 실패를 피하고,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다.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 경험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고 결국 새로운 혁신을 이뤄내는 힘인데도··· 아무튼, 학생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중요하다. 정부도 성공한 연구결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실패한 도전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줘야 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몸담은 군산대학교가 나아갈 방향과 미래 비전은?"군산대학이 처한 상황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대외적으로는 지역 국립대학들과 협업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산학협력이나 대학원, 또는 특정 분야의 연구 분야 등에 대해 연합하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개발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기초학문에 대해 교수들이 중장기적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교육에서는 기초가 탄탄한 실무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새로운 산업 수요와 사회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융복합 교과과정 내지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탄력적 학사운영이 필요하다. 지역과 적극적 협력을 통해 대학의 재정적 지원과 특성화를 이루는 행정이 필요하다. 작지만 강한 대학, 연구와 교육이 조화되는 대학, 지역과 협력하는 대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와 매거진군산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