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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 공식 트위터 갈무리.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 공식 트위터 갈무리.
ⓒ 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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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풍경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길을 찾을 때면, 네비게이션 대신 종이 지도를 꺼냈다.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를 다루면서 빛에 노출될까 노심초사했다. e북 대신 두꺼운 책을 낑낑거리며 들고 다녔다. 피자와 치킨을 시키기 위해, 배달앱 대신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과거엔 번거로웠던 일들을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처리한다. 스마트폰의 기능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은 식상하니 생략하자.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스마트폰에 들어간 여러 기술들은 미디어아트를 통해 먼저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백남준의 '텔레비전'처럼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다. 포켓몬고로 유명세를 탄 '증강현실' 구현 기술도 미디어아트를 통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아트 작가인 제프리 쇼는 지난 1988년 '읽기 쉬운 도시(The Legible City)'라는 작품을 내놨다.

이 작품은 스크린 앞에 자전거를 설치해놓은 것이 전부다. 그런데 관객이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굴리면, 스크린에서 화면이 펼쳐진다. 스크린 안에 길이 있고, 관객이 그 길을 따라가면 글자로 쓰여진 건물들을 지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미디어아트 증강현실 실험 후 닌텐도위, 포켓몬고 등 상업적 가능성 실현 

읽기 쉬운 도시에서 구현한 스크린 속 증강 현실은 이후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 닌텐도위와 포켓몬고 등은 상업적인 가능성을 실현했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네비게이션은 '읽기 쉬운 도시'의 완벽한 상업적 구현물이다. 사람들도 이제는 '증강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려워하지 않는다. 예술이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다.

제프리쇼는 <미디어아트, 예술의 최전선>이란 책에서 "닌텐도 위는 예술가들이 오래 전에 보여줬던 전략들을 산업에서 빌려서 이룩한 최초의 성공사례"라면서 "실험되고 제시된 것을 최초로 상업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디어아트의 기능도 여기에 있다. 차가운 용어로 무장한 기술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새 기술을 개발한 발명가들은 온갖 기술적 용어를 동원해,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듣는 사람에겐 머리만 아플 뿐이다. 어려운 기술이 사람과 친해지게 만드는 통로로서 미디어아트가 있다.

일종의 얼리어답터(남들보다 빨리 상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사람) 역할이다. 미디어아트 작가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 이 작품을 통해 기술은 좀 더 부드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거기에서 상업적, 대중적 아이디어가 나오고, 산업과 시장을 형성한다. 미디어아트란 장르 자체가 '연결체(매체)'가 되는 것이다. 예술가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증강현실에 뒤를 이어 주목해야 할 새로운 기술들은 많다. 그중 하나가 초지향성 스피커다. 초지향성 스피커는 지난 1999년 미국의 ATC USA가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스피커의 특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면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다.

오른쪽이 초지향성 스피커 소리 전달 방식, 일반 스피커(왼쪽)와 달리 소리가 직선으로만 전달된다.
 오른쪽이 초지향성 스피커 소리 전달 방식, 일반 스피커(왼쪽)와 달리 소리가 직선으로만 전달된다.
ⓒ 프로오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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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향성 스피커는 소리를 일직선으로만 쏜다. 기존 스피커의 소리가 부채꼴 형태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과는 다른 원리다. 초지향성 스피커는 스피커와 일직선상에 있는 곳에만 소리를 전달한다. 일직선에서 방향을 조금만 틀어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듣는 사람을 선택하는 초지향성 스피커

즉 초지향성 스피커의 방향은 '듣는 사람'을 결정한다. 마치 손전등으로 빛을 비추는 것처럼 말이다. 기존 스피커가 대중적이라면 초지향성 스피커는 개별적인 속성을 갖는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에게만 속삭여주는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증강현실이 '보는' 감각의 확장이었다면, 초지향성 스피커는 '듣는' 감각의 확장이다.

초지향성 스피커는 사실 이름도 생소하다. 국내에도 초지향성 스피커를 생산하는 업체가 있지만, 아직 대중화된 상품으로써의 활용 가능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아트는 또다시 초지향성 스피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올해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기획자과정(aPD)에서 한 연구생은 초지향성 스피커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보이는 바람'이라는 작품을 구현할 예정이다. 특정한 관객에게만 소리를 전달하는 초지향성 스피커의 기능을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형상화하고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초지향성 스피커, 일반 스피커와 달리 소리를 '일직선'으로 전달한다.
 초지향성 스피커, 일반 스피커와 달리 소리를 '일직선'으로 전달한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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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향성 스피커를 활용한 미디어 작품으로는 국내에선 거의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보이는 바람'이란 작품을 통해 초지향성 스피커에 대한 가능성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을 체험한 사람으로부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제프리쇼의 작품처럼 말이다.

'산업과 예술이 만나는 대학'이라는 한 대학교의 슬로건이 있다. 산업과 가장 자주 만나는 예술은 '미디어 아트'다. 미디어 아트는 끊임없이 기술을 만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미디어아트가 만들어낸 가능성은 산업을 통해 대중화된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바꿔놓은 것처럼 초지향성 스피커는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바꿀 수 있을까. 사뭇 기대된다.


태그:#미디어아트, #초지향성스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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