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날이 선선해지면서 딱 걷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거기다 요즘은 많은 단체에서 특색 있는 답사들을 진행하고 있어서 조금만 부지런하면 다양한 체험들을 즐길 수 있다. 지난 26일 관악구 난향 꿈둥지에서 북한 음식체험 프로그램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 기대도 있었지만 북한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약간 망설임도 있었다.
우린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난 어릴 적 '북한 사람들은 늑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승복처럼 어린아이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다. 외국에 살면서도 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영 꺼려지곤 했는데 어릴 적 영향인 것 같다.
북한 음식체험은 사회적 기업인 '센트 컬쳐(Sent Culture)'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이다. 왜 북한 음식체험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대표인 김기도씨에게 물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센트 컬쳐(Sent Culture)'는 취약계층에게 IT교육을 시켜서 취업을 시키는 IT 회사 '센트 소프츠(SENT SOFT)'의 문화팀입니다. 센트에서 열심히 교육시켜 어렵게 취직을 시켰는데 이분들이 회사에 적응을 못 하고 자꾸만 사표를 쓰고 퇴사를 하시는 거예요. 왜 그런지 살펴보니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센트 소프트의 사무실이 난향 꿈둥지 4층에 있고 음식체험은 5층 휴게실에서 진행되었다. 휴게실은 음식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다.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 이미 여러분이 오셔서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놀란 것은 다들 너무 예쁘시다는 것, 다들 날씬하시다는 것이다.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굉장히 적극적이시고 말씀도 잘하시고 유머도 있으시고….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줌마들이었다. 만나지 않았을 때 가지고 있던 거부감이 만나면서 없어지는데 만나지 않으니 자꾸만 오해를 하게 되는 듯하다.
속도전 떡과 인조고기 밥을 만들면서
처음 만든 음식은 인조고기밥이었다. 남한에서 인조고기라 하면 사람고기로 오해한다며 콩고기 밥이라고 하신다. 이것도 역시 편견이 낳은 오해다. 콩고기는 대두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대두박으로 만들어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날씬하신가 보다' 생각하며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대두박은 단백질이 풍부해서 주로 사료로 사용하는데 북한에서는 돼지고기가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서 이걸 먹는다고 한다.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우리는 먹을 게 넘쳐서. 너무 먹어서 비만이 문제인데 북에는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서글펐다.
콩고기 밥은 콩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운데를 벌려 밥을 가늘고 길게 만들어 밀어 넣어서 만든다. 처음 해 보는 탓에 콩고기가 자꾸만 찢어졌는데 요령을 터득하니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밥을 가늘고 길게 단단하게 뭉치는 게 요령이다. 우리가 떡볶이를 먹듯이 북에서는 콩고기 밥을 먹는다고 하였다. 단백질이 풍부하니 고기 대신 단백질 공급원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먹을 것이 없어서 콩비지, 술 찌기미를 먹었다는 엄마 말이 생각났다.
두 번째 음식은 속도전 떡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팡이 아이스크림으로 먹는 옥수수 뻥튀기를 가루로 만들어서 물로 반죽하여 인절미처럼 칼로 썰어서 옥수수 가루에 묻혀서 먹었다. 말 그대로 금방 만들어 금방 먹을 수 있어서 속도전 떡이라고 한다. 군사복무 하시다 내려오신 분은 군대에서도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하셨다. 간단하게 불 없이 바로 요리할 수 있어서 군대에서도 애용하는 모양이다.
단점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져 그냥 먹지 못하고 기름에 지져 먹어야 하는 것이다. 콩고기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속도전 떡은 맛있어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싸가지고 왔다. 딱딱해진 인절미처럼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익혀서 꿀에 찍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무엇보다 인기가 있었던 것은 명태가 들어간 깍두기였다. 심심하지만 담백한 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남은 것은 앞다투어 포장해서 들고 갔다. 여행 작가이신 김수종 선생님은 쓰시마 여행에서 사 오신 사케를 들고 오셔서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북에서 오신 언니들은 처음 마셔 보는데 소주보다 순해서 맛있다며 좋아하셨다. 처음의 어색함은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없어지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북한 사람에 대한 편견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양한 기회가 좀 더 많아져서 화합의 계기 되길" 같은 테이블에서 음식을 같이 만든 강서구에서 오신 정해심 선생님께 소감을 여쭈었다.
"지인이 북한음식체험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북한음식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을 안고 왔어요. 처음 먹는 인조고기밥이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 양념은 만들어 두면 어디에든 다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로 만들어주신 속도전 떡은 인절미 같은 식감으로 쫄깃쫄깃해서 맛있어요. 고향을 떠나서 남한으로 이주한 후 힘들게(?) 사시는 그분들이 가끔씩 만나서 음식도 나누시고 회포도 푸시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북한문화도 알려주시고 하는 모습이 왠지 짠하기도 하고 실향민이신 부모님을 뵙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네요. 이런저런 이유로 희망을 안고 이주해 오신 분들이 이 땅에서 좀 더 편안하게 사시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보내시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또한 이런 기회가 좀 더 다양하게 많이 주어져서 남한 사람과의 화합으로 더 나아가서는 통일의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같이 오신 권자선 선생님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해심 선생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북한음식체험이 처음이고 요리에 관심이 없어 반신반의하면서 체험행사에 참여를 했습니다. 인조고기밥을 만드는데 밥을 인조고기에 넣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주하신 아주머니가 옆에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셨어요. 사실 처음 대하는 탈북민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는데 대화를 해보니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은 속도전 가루떡을 포장해주셔서 집에 가져가서 가족들과 같이 먹으려고 해요. 북한음식체험을 통해 음식뿐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나도 이주민들이 이런 기회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우리도 이들과의 만남으로 어색함과 오해, 편견들을 풀어가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저런 통일 논의들이 오간다. 통일 시나리오들이 있고 전략들도 있다. 그러나 정작 통일이 되었을 때 남북한의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민간차원에서라도 미미하지만 남과 북이 서로 만나는 기회들을 많이 가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야 통일이 되었을 때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토요일 아침, 북한 이주민들과 북한 음식을 만들며 통일에 대해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런 모임들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