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문장론
나는 첫 번째 글 '카톡이 글이다'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음성(voice)'으로 하면 '말'이고, '글자(letter)'로 쓰면 '글'이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번 글 '문장론' 꼭지도 이 주제를 바탕 삼고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겠다.
또 문장론을 거론한다고 해서 혹 거창한 이론을 말하려 한다고 지레짐작하지 말길 바란다. 나의 글쓰기 논리의 핵심은, 글이란 결코 거창한 것도, 어려운 것도, 잘 써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다수 글쓰기 책들은 무슨 소리하느냐고 귀를 쫑긋 세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류의 책들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나의 주장은 우선 글쓰기와 친해지는 입문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은 그 다음에 '잘' 쓰는 요령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다.
글을 '잘' 쓰는 것은 글을 어느 정도 쓰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법적 오류가 없는 명문을 쓰라고 하면 과연 초보자가 그걸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글쓰기 입문에 관한 책이 드물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문제의식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일단 입문부터 하고 보자.
운전할 때를 상상해보자. 면허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실기 연습은 물론이고 초보자가 핸들을 처음 잡게 되면 끼어들기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어렵다. 백미러나 룸미러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이기도 하거니와, 보인다 해도 거리나 속도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 어떤가. 교통 흐름에 편승하면서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운전에 대한 기초가 다져지고 경험이 쌓이면 누군가가 가르쳐준 요령의 도움 없이 노련하게 끼어들기를 하듯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 '잘' 쓰는 요령이 그다지 의미가 없어진다. 운전 방식이 백이면 백 명 모두 다르듯 글쓰기도 자기 다름대로의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미 글맛을 알았다면, 글쓴이 스스로 문장에 대해 고민하고, 써보고, 다른 좋은 문장들을 참조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며 자연스럽게 향상시켜나간다. 일시적인 대증요법은 약간의 도움이 있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나에게는 필요 없는 요령부득의 영역이다.
그럼 문장론에 대해 알아보자.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전적 풀이부터 보자. "생각이나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완결된 내용을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이든 두 개이든 아니면 그 이상이든 단어가 모여 메시지의 내용을 완결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간다"라는 한 개의 단어로 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것만으로는 완결된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그럼 "나는 간다"라는 두 개의 단어로 가능한가.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다면 "나는 집으로 간다"라고 해야 메시지를 완결시킨다. 그럼 이건 세 단어로 된 문장이다. 물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단어, 가령 '나는' 같은 주어는 생략할 수는 있다. 또 아내가 집에 있는 남편한테 "간다"라고 하면 집으로 간다고 알아들을 수 있으므로 역시 생략하고 한 단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은 문장은 메시지를 완결시키는 최소 단위이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할 거니까"는 어떨까 그럼 문장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단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단어를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이라고 설명해놓고 있다. 쉽게 말하면 개별적으로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최소한의 단위인 셈이다. 더 분리하면 자립적으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글자가 된다. 예를 들면, '떡', '이야기책', '기와집' 같이 사물을 나타내는 말, '철수', '영희'와 같은 고유명사, '빨갛다', '슬프다' 같이 속성을 나타내는 것들이 모두 단어다. 단어의 뒤에 붙어서 문장에서 그 단어의 역할이 무엇인지 표시해주는 '은', '는', '이', '가' 같은 조사도 그 자체로 하나의 단어다.
단어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위이니,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사실 글쓰기의 시작이 셈이다.
우리는 특별한 생각 없이 이미 알고 있는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골라서 사용하지만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특정 단어의 빈번한 사용은 곧 그 사람의 말글살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글의 스타일은 물론 글이 나아가는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시인이 알맞는 단어(시어) 하나를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지새운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글을 쓸 때 단어가 어떻고, 문장이 어떻고 하는 것들을 의식하는가. 글을 쓰다 특정 경우에 단어를 찾기 위해 골몰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단어들은 무의식적으로 글이나 말에 호출돼 나온다.
내가 말과 글이 표현 수단이 다를 뿐 결국 같은 것이라고 한 말을 의식하고 특히 말할 때를 생각해보자.
평소 말을 할 때 이런 요소들을 의식한 적이 있는가. 더더욱 이런 것들을 문법적인 측면에서 고려하는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말하면서 뭔가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느끼는 데도 상대방은 신기하게도 거의 정확하게 알아듣는다. 영 이상하면 말이 배배꼬인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게 문법적 오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열연한 배우 이병헌의 명대사,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할 거니까"를 예로 들어보자.
이 말을 두고 KBS <개그콘서트> '일대일' 코너에서 배우 이병헌의 이름을 따 '이병원'이란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출연하는 개그맨 이세진이 "장난 지금 나랑 하냐"며 눙치는 것을 비롯하여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 대화에서도 심심찮게 패러디하는 진풍경이 연출된 적이 있다.
이 대사는 정확한 것은 모르는데(정확한지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어디서 주워들었던 것은 있어서 잘난척하려다 되레 우스운 꼴이 되는 것을 풍자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글이 결코 말과 다르지 않다는 점과 나아가 별 거 아니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다.
나는 배우 이병헌의 대사보다 개그맨 이세진의 발언이 더 설득적으로 와 닿는다. 이병헌의 대사에서는 '모히또'와 '몰디브'가 뒤바뀐 상황이다. 그런데 '모히또'가 칵테일 이름이고 '몰디브'가 나라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 말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반면 이세진의 발언 "장난 지금 나랑 하냐"는 "지금 나와 장난하냐"는 의미로 위치상 주어와 서술어가 뒤바뀌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를 두고 주어와 서술어가 뒤바뀌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말이 몹시 어색하다고 느낄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글을 쓸 때 이렇게 하면 반응은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글에서는 문법적 체크기가 스스로 발동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출발은 '문장을 쓰면서'... 일단 써라
그럼 왜 말할 때는 따지지 않다가 글 쓸 때는 이를 따지는가. 나는 이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칙적으로는 말이나 글이나 문법을 생각해야 하고, 문법적 오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요즘 유행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은 어법이다. 문법적 요소가 잘못돼도 말은 괜찮은데 글은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말에 대해서 문법적 적용에 관대한 것은 아마도 알게 모르게 상당부분 문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머리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몸은 이미 문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하다 문법적 오류를 저지르면 몸은 느낀다. 내가 지금 낯설게 말하고 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문법이라는 잣대가 결국 글에서 적용되는 문법이라는 사실. 무언가를 평가할 때는 기준이 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말에서 문법적 오류라고 지적하는 것은 결국 글의 문법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글을 교정 또는 수정할 때 소리 내어 읽어보면 문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법적 오류도 잘 찾아진다는 사실. 그렇다면 되레 글의 문법은 말의 문법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말이 글보다 먼저였다는 점에서 결국 문법적 규칙들은 말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시작할 때 말하는 것처럼 하면 덜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말이 곧 글이고, 글이 곧 말이라는 명제는 특히 글쓰기 초보자들에겐 구세주 같은 역할을 한다. 글은 쓰기는 쉽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부담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자, 그럼 말이 정말 글과 같은 것인지를 확인하고, 나아가 말을 통해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해보자.
먼저 글로 쓰고 싶은 내용에 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녹취를 한다. 그리고 녹취를 들으면서 그대로 받아 적는다. 분량은 5분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녹취록 작성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쓰거나 타이핑하는 속도가 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자꾸 되돌려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 된 녹취록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역시 말과 글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고, 중언부언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말버릇, 추임새가 남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 즉 내가 읽기에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제거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나름대로 편안하게 느껴지도록 고쳐보라. 그리고 읽어보라. 아까보다는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그게 글이다.
다만 그런 경우 그 글을 구어체(口語體), 즉 "일상적인 대화에서 주로 쓰는 말투"로 쓴 입말체 문장이다. 구어체는 상황에 따라 반말이나 존경어를 쓴다. 주로 "거(이거, 저거), 뭔, 하고, 이랑"과 같은 단어를 쓴다. 글에서만 주로 사용하는 단어 등을 사용하여 쓴 문어체(文語體), 즉 글말체도 있다. 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비속어 등을 쓰지 않는다. "것, 무슨, 와/과"와 같은 단어를 쓰고, '~다'로 끝난다.
"밥하고 반찬을 골고루 처먹어야 건강에 좋아"라는 입말체를 글말체로 바꿔보면 "밥과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다" 이런 식이 된다.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옛날엔 글 쓸 때 가능하면 문어체를 꼭 사용하도록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문어체든 구어체든 거의 구분하지 않는데, 구어체가 많이 사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쨌든 글쓰기의 출발은 문장을 쓰면서다. 일단 써라. 문법적인 요소들을 전혀 의식하지 말고 일단 써라.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라. 그러다보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문법적인 문제는 그때 따져도 늦지 않다. 이럼에도 글쓰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서 포스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