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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인권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편에 서서 "당신은 존엄한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이들 덕분에, 인권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작 그들의 삶은 험난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어하고, 암과 투병하고, 구치소에서 노역을 하기도 합니다. '인권재단 사람'과 <오마이뉴스>는 인권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인권활동가들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전쟁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
전쟁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 ⓒ 이희훈

교도소의 새벽은 스산하다.

새벽 4시에 일어난 신입 이용석(37)씨는 스산함을 뚫고 취사장으로 향했다. 8명의 아침당번이 1200여 명의 교도소 수용자들이 먹을 아침을 만들었다. 배달을 마무리하면, 오전 7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김장을 해야 했다. 양이 어마어마했다. 2톤짜리 트럭 두 대가 배추를 쏟아놓고 가면 그 배추를 소금에 절여야 했다.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려 포대에 넣는데 하루를 꼬박 썼다.

몸무게 60kg인 자신보다 무거워진 포대를 끙끙거리며 창고로 옮겼다. 일어나자마자 양치할 짬도 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오후 2시였다. 고된 일에 손은 퉁퉁 부어있었다.

밤에 잠을 푹 잘 수 있다면, 그래도 견딜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편히 자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오후 9시~9시30분 사이에 소등을 했다. 그런데 불을 완전히 끄지 않는다. 감시와 보호 차원이다. 애매한 조도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 잠을 자다가 네 다섯 번은 깼다.

2006년 11월, 군산교도소에서 용석씨는 그렇게 살았다.

이후 옮겨진 청주교도소에서는 그나마 쉬운 일을 했다. 교도소 내 이발소와 교도관 사무실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교도소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한 방을 쓴다. 직원 이발 작업장 반장이 용석씨의 룸메이트가 됐다. 그는 사람을 찔러 죽인 이였다.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때릴 수 없다고 주장해 감옥으로 보내진 사람과 사람을 죽인 사람이 0.95평(3.14㎡)에서 함께 살았다.

보편적 양심의 문제

이용석씨는 병역거부자다. 종교적 신념 때문은 아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에는 도저히 갈 수 없어 병역을 거부했다.

처음부터 병역거부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용석씨도 군대 가는 걸 싫어하는 보통 한국남자였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한국군이 이라크로 파병되면서 전쟁은 한국사회를 뒤집어 놨다. 역사 속 일부였던 전쟁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당시 대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전쟁반대, 파병반대 운동을 벌였다. 용석씨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병역거부자들을 처음 만났다. 용석씨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소신 때문에 감옥을 가는 것도 동의할 수 없었다. 막아야했다. 그렇게 병역거부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3년 파병반대 운동을 하던 친구들과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활동가가 됐다.

그러면서 병역거부는 용석씨 삶의 일부가 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화가 아주 조용하고 사뿐하게 그에게 왔다. 그렇게 2년 정도 활동을 하니 입영 영장이 나왔다. 2005년 12월 1일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평화, 신념, 비폭력. 용석씨는 외쳤다. 하지만 판사는 그의 병역 거부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용석씨는 범죄자가 됐다.

"폭력에 길들여질까봐 무서웠다"

 "군대에 가면 내가 폭력적인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어요. 제가 맞는 것도 무섭지만 제가 누군가를 때리는 사람이 될까봐. 제가 안 때리려고 해도 윗사람이 왜 안 때리느냐고 할 수 있으니까요."
"군대에 가면 내가 폭력적인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어요. 제가 맞는 것도 무섭지만 제가 누군가를 때리는 사람이 될까봐. 제가 안 때리려고 해도 윗사람이 왜 안 때리느냐고 할 수 있으니까요." ⓒ 이희훈

법정구속된 용석씨는 바로 인천구치소로 보내졌다.

모욕. 그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구치소로 들어갈 때 모두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몸에 돈이든 물건이든 숨기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항문검사도 한다. 요즘은 카메라로 하는데 그 때는 교도관이 직접 했다.

거부했다. 구치소 쪽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용석씨는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속옷을 내렸다. 교도관이 용석씨의 그곳을 확인했다.

모욕, 수치, 불쾌함.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용석씨는 아직도 그 교도관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얼굴이다. 감옥 생활 중 가장 안 좋은 기억이기도 하다.

모욕적이었던 구치소 입소, 노역하느라 정신없던 교도소 생활. 감옥보다 군대가 낫지 않았을까. 용석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대에 가면 내가 폭력적인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어요. 제가 맞는 것도 무섭지만 제가 누군가를 때리는 사람이 될까봐. 제가 안 때리려고 해도 윗사람이 왜 안 때리느냐고 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때린 적이 없는 그였다. 학창시절 말싸움은 했어도 주먹다짐은 안 했다. 부모님께도 맞은 기억이 거의 없다. 폭력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그에게 군대는 '폭력'과 동의어였다.

상관과 싸우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다면 용석씨는 군대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한다. 문제제기가 통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군대를 갔다 온다고 해서 모두 폭력적으로 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물리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에 익숙해진다.

"폭력에 길들여질까봐 무서웠어요. 그런 저를 상상 할 수 없었죠."

폭력에 지는 것보다 자유를 잠시 제한하는 걸 택했다.

"삼성이 있는 나라 맞냐?"

2007년 10월 26일 가석방됐다. 다시 전쟁없는세상 활동에 나섰다. 이후 잠시 회사를 다닌 적도 있지만 그때도 전쟁없는세상에 한 발은 걸친 채였다. 지난 2015년 전쟁없는세상에 복귀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의 상근 활동가는 3명이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용석씨만 주 5일 상근자로 일한다. 나머지는 이틀 또는 사흘만 일한다. 용석씨는 최저임금만 받으며 병역거부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다. 대체복무 도입 캠페인 기획부터 사무실 잡무까지 모두 용석씨 몫이다. 2~3주에 한 번은 병역거부자들에게 교도소 밖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예비 병역거부자 상담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상담이 부쩍 많아졌다.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예비 병역거부자들이 전쟁없는세상의 문을 두드린다. 한 달에 2~3명 정도가 상담을 받고, 1년에 4~5명이 비종교적인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양심적 병역거부로 프랑스에서 난민인정을 받은 이예다씨 사례가 알려지면서, 문의가 늘어났다.

"난민인정을 받으려고 '난 코리아에서 왔다. 코리아에선 병역거부로 한 해에 400~700명이 감옥에 간다'고 하면 외국 국가들은 '노스코리아에서 왔냐'고 물어본대요. '사우스에서 왔다'고 하면 '삼성이 있는 그 나라 맞느냐고. 민주주의 국가인데 양심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느냐'며 되물어본다고 하더라고요."

용석씨는 난민 신청을 권하지 않는다. 난민 인정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시간도 꽤 된다. 그렇게 인정을 받으면 다행이다. 실패하면 인생이 꼬인다. 해외에서 불법체류자로 떠돌면서 살거나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감옥 아니면 군대다.

대체복무를 외치다

 전쟁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가 병역거부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자신의 동료들에게 보냈던 편지.
전쟁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가 병역거부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자신의 동료들에게 보냈던 편지. ⓒ 이희훈

 전쟁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느 그 동안 병역거부자들이 옥살이를 하며 보내온 '옥중서신'을 모아 두고 있었다. 이 편지들은 전쟁과 세상의 활동 역사가 되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 이용석 활동가느 그 동안 병역거부자들이 옥살이를 하며 보내온 '옥중서신'을 모아 두고 있었다. 이 편지들은 전쟁과 세상의 활동 역사가 되고 있다. ⓒ 이희훈

언제까지 감옥 아니면 군대여야 할까. 용석씨는 대체복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위해 10년 넘게 싸우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대체복무 도입을 위한 청원서명을 받으러 다닐 때 욕도 많이 먹었다. 

"병역거부는 빨갱이고 총알도 아까우니 칼로 찔러야 한다."

서명 용지를 들고 다니던 한 친구는 종묘공원에서 지나가던 할아버지에게 헤드록을 당했다. 맞을 뻔도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용석씨를 비롯한 병역 거부 활동가들의 노력 때문일까.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법원부터 변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가 많아지고 있다. 올해에만 32건(9월 7일 기준)이다.

지난 1월 전주지법 재판부는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계속되는 처벌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병역을 거부했다. 이들의 양심은 헌법상 보호되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의 영역에 속한다"라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재판부도 지난해 6월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국방의 의무는 군대에 입대하는 사람들만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각자의 가정, 사회 내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각하며 소극적으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는 방법으로 모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가정과 사회 내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의 안전보장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병역 외 다른방법을 통해 국가의 안전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들의 양심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면서까지 형벌로써 군대에 입영을 강제하지 아니하더라도 국방의 의무 이행이 형해화(유명무실하게)된다거나 그 본질의 침해를 야기할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법원까지 가면, 항상 결론은 유죄다. 여론도 아직 차갑다. 병역거부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지 말고 대체복무 시키자는 물음에는 찬성이 더 많다. 병역거부자의 생각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탄압 받는 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예비역 남성들의 마음을 이해해요. 비인간적인 처우, 열악한 군 생활에 대한 보상심리는 당연한 감정이죠. 그런데 보상을 요구하는 대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여성이나 병역거부자에게 그 화살이 향하는데, 군대와 국가에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예비역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존중밖에 없는데 그게 답은 아니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있다

 "군대가 힘드니까 대체복무는 더 힘들어야 한다는 것은 발전적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향평준화 돼야죠. 누가 더 힘드냐로 싸우는 건 저질이에요. 소중한 젊은이들을 데려가는 건데 (군대든 대체복무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해야죠."
"군대가 힘드니까 대체복무는 더 힘들어야 한다는 것은 발전적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향평준화 돼야죠. 누가 더 힘드냐로 싸우는 건 저질이에요. 소중한 젊은이들을 데려가는 건데 (군대든 대체복무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해야죠." ⓒ 이희훈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6월 국방부에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라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봤다. 국방부는 10월까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

국방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대체복무제 도입 방침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이를 번복했다. 그 후로도 수십 명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보내졌다.

군 복무 기간의 1.5배 이상인 대체복무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야 병역거부를 군 기피용으로 악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편견이다. 대만은 현역 복무의 1.5배 수준으로 대체복무를 시작했다. 분기마다 일정 인원만 뽑는 쿼터제도 도입했다. 군 기피용으로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쿼터제가 의미없었다. 계속 미달이었다. 결국 대체복무 기간은 점점 줄어 현역복무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

"군대가 힘드니까 대체복무는 더 힘들어야 한다는 것은 발전적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향평준화 돼야죠. 누가 더 힘드냐로 싸우는 건 저질이에요. 소중한 젊은이들을 데려가는 건데 (군대든 대체복무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해야죠."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 422호 법정.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재판이 열렸다. 10여 년 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뒤 구속됐던 용석씨는 이날 활동가로서 방청석에 앉아있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헌법재판소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달라"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재판은 12월까지 연기됐다. 그 사이 헌법재판소든 국방부든 대체복무 도입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또 한 명의 젊은이가 감옥에 갇힌다.

이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병역거부자들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군 면제 처분을 받아요. 이 뜻은 너희는 범죄자니까 군대에 올 자격이 없다는 거잖아요. 사회에서 범죄자이자 군면제자라는 이등국민 취급을 받아야 해요. 제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 병역거부자의 삶은 그대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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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인권 이즈 커밍' 공동기획팀
신나리·신지수·선대식(글), 이희훈(사진), 최유진(편집)


#인권 이즈 커밍#병역거부#군대#전쟁없는세상#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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