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건설이 과잉투자로 질주하고 있다. 녹색연합의 <철도 난개발과 공공성 악화>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 혹은 계획 단계에 있는 상당수 신규 노선들은 향후 적자운영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미 적자 운영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낳은 자식들도 굶어 죽는 판에 새 자식을 낳으려는 꼴이다. 본 기사는 '무분별한 신규 건설', '방치된 기존 노선', '모순적인 철도 정책'을 주제로 철도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 훼손을 검토하고자 한다.-기자 말국토부는 올해 동서고속화철도, 여주문경철도 등의 신설을 추진 중이다. 두 노선 모두 완공 뒤에 불가피한 적자 운영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적자 노선들의 문제마저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7개 벽지노선 문제다.
정부는 영업계수(100×영업비용/영업수익) 200 이상의 지방 적자 노선들을 벽지노선으로 지정하여 PSO(공익서비스) 보상을 하고 있다. 올해 이 PSO 보상액이 대폭 삭감되었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2016년 12월, 벽지노선 운행감축이 불가피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여전히 문제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적자노선이 추가되면 운영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운행감축 반려, 그러나 손실보상은 31% 삭감현재 벽지노선에 포함된 7개 노선은 경북선, 경전선, 대구선, 동해남부선, 영동선, 정선선, 태백선이다. 이들은 지역의 수요가 극히 적은 것은 물론, 노인ㆍ장애인 등에 대한 무임운송ㆍ운임할인 비중이 크다. 이에 따라 공공성 보장을 위한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이다.
2016년 11월 3일 국회 본회의 2017년 정부 예산 최종의결 결과에 의하면,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 운임 감면, 벽지노선 유지 등의 PSO(공익서비스) 보상예산은 전년(3509억 원) 대비 547억 원(16%) 삭감된 2962억 원이며 그 중 벽지노선 손실보상은 전년(2111억 원) 대비 650억원(31%) 삭감된 1461억 원으로 편성되었다. (표1)
코레일은 2016년 12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7개 벽지노선 운행 횟수 축소 및 역 무인화를 통한 효율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냈다. 코레일이 노선별 철도 운행을 10% 이상 줄이려면 국토부 인가를 받아야 한다. 국토부는 코레일의 감축안을 반려했다. 국토부 측은 "보조금 지원이 줄었다고 바로 운행을 감축하지 말고 수송 수요와 대체 교통수단 등을 파악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점진적으로는 감축을 떠미는 모양새다. 2017년 1월 국토부는 올해 벽지노선 보조금을 스스로 삭감해 기재부에 올렸다. 지난해 손실 보전예산 2111억 원에서 301억원이 줄어든 1810억 원을 신청한 것이다. 올해 총 삭감액 650억 원의 46%다.
국토부는 지난 2013년에도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통해 적자가 큰 노선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PSO 비용 보전 또한 2015년까지 78.7%에 그쳤기에 코레일은 벽지노선 운행을 지속해서 줄여왔다. 그 결과 이용객은 감소했고, 역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2007년 이후에만 100곳이 넘는 간이역이 사라졌다.
죽어가는 벽지노선, 그곳에도 국민이 있었다"하루 네 번 있는 기차 놓치면 병원도 못 가요."보성군에 사는 박정금씨는 병원에 갈 때마다 경전선을 이용한다. 이 날도 광주에 있는 치과로 가는 길이다. 보성군과 인근의 화순역은 버스 교통이 불편한 탓에 철도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왕복 4회의 적은 운행횟수 때문에 불편함이 크다. 벽지노선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은 방치된 철도에 대해 갖가지 불편을 토로한다. 올해 5월, 경북선, 경전선, 영동선, 태백선에 직접 올라타 이들을 만나봤다.
내일로 철이 아직 시작되기 이전, 열차를 채운 대부분 승객은 지역 노인들이었다. 벽지노선이 지나가는 낙후 지역들의 노인 비율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자가용 운전이 불가한 이들에게 철도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버스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로/장애인 할인운임 등도 철도가 필요한 이유다.
태백역에서 근무하는 김지훈 씨에 따르면 태백에서 청량리까지 철도 요금은 15000원대인데 버스 요금은 20000원 정도로 가격 차이가 꽤 난다. 그는 또한 "태백은 장애인, 노약자가 많다"며, "태백선은 그분들에게 제일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원주나 청량리의 병원에 갈 때 기차를 많이 타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화장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왕복 4회 운영, 늘어가는 무인역... 커져가는 지역민들의 불편벽지노선의 창밖으로는 고속철도에선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과 숲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시골 선로를 느리게 달리는 열차는 그런 풍경의 멋을 한껏 더해준다. 이 때문에 경전선 서부 구간, 경북선 등은 철도 마니아들에게도 인기 있는 노선이다. 그러나 그런 낭만적 풍경의 이면에는 방치된 벽지노선들의 현실이 있다.
많은 벽지노선들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선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낙후된 선로 탓에 운행 속도 등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에 더해 경전선과 경북선은 여전히 디젤 열차가 운행 중이다.
직원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표를 끊어주는 모습 또한 벽지노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무인역이 많아 승차 뒤에 표를 끊어야 하는 것이다. 모바일 티켓 발권 방법을 모르는 노인들에게는 이 또한 많은 불편을 일으킨다. 방치된 역에 승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적은 운행횟수다. 대부분의 벽지노선들이 하루 왕복 4회 내외의 횟수로 운행한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노인들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민들이 철도를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또한 운행횟수에 있다.
"운행 횟수만 많으면 저도 기차 타고 싶지요. 저렴하고, 시간도 잘 지키니까요."보성역 근처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황금선 씨는 철도 자체가 불편해서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경전선을 자주 탔다는 그는, 운행횟수가 줄어들면서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 기차보다는 자가용을 이용하게 됐다.
오후 3시 38분 열차가 들어오는 상주역 플랫폼에서 만난 학생들도 같은 불편을 표했다. 상주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장주원 (18) 군은 기숙사에 살면서 금요일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경북선을 이용한다. 그는 "이 시간 이후에는 늦은 시간에만 차가 있어서 못 탄다"며, "3시 38분 열차 시간에 맞추려면 3시에 수업을 다 못 듣고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무작정 줄이기보다는 특성 고려한 운행 방식 필요"벽지노선들은 이용객 감소, 운행 감축, 역 폐지의 악순환을 반복하며 쇠퇴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역 중심의 지역 사회도 무너지고 있다. 여전히 철도를 필요로 하는 지역민들이 있는 만큼, 해당 노선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철도의 눈물> 저자인 박흥수 PPIP(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벽지 노선들을 무작정 줄이기보다는 특성에 따른 운행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며, "PSO 보상, SR과 코레일 통합을 통한 교차보조 강화, 관광 가치 활용 등이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벽지노선들의 사회적 편익을 고려한 보상 체계, 고속철도(SRT와 KTX)에서 발생한 수익이 온전히 지역 철도로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오랜 역사를 지닌 노선들을 관광 상품화시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PSO 지원을 줄이면 코레일은 열차운행을 줄이겠다고 한다. 운행이 줄면 이용률이 줄고 결국 노선을 아예 없애는 방향으로 간다. 코레일은 적자가 줄어 좋고, 국토부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지만, 결과는 최소한의 공공철도가 사라지는 것이다. 예산 삭감은 사실상 벽지노선을 안락사 시키라는 메시지다."벽지노선을 둘러싼 최근 정책들에 대한 박흥수 위원의 평가다. 최소한의 공공철도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철도 정책은 노선 신설에만 골몰하면서 지역 철도는 '안락사' 시키고 있다.
※ 철도 난개발과 지속 불가능한 교통 정책 ③ '모순적인 철도 정책'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