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독서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랜(LAN)선과 독서가 합쳐진 말로, 사회적 이슈와 어울리는 책을 소개하는 <오마이뉴스> 책동네 기사입니다. 이번에는 2017년 MBC, KBS 총파업과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
부패한 정권의 홍보실 같았던 방송을 정상화하기 위한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MBC와 KBS를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놓기 위해 각 방송국에 속한 사람들이 다시금 힘을 내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자신들의 안위보다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생각하며 저항하는 분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 저도 함께 참여하며 응원해야겠습니다.
두 방송국 구성원들의 투쟁은 지난해 부정한 정권 퇴진을 외치며 타올랐던 촛불 시위와 같이 공공재인 전파를 시민들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한 대중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릭 호퍼(Eric Hoffer)라는 미국의 사회철학자가 대중운동의 본질에 대해 쓴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이라는 책에서 이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책의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책 제목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True believer'를 맹신자들이라고 했지만 잘 된 번역이 아닌 듯 합니다. '맹신'이라고 하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것을 말하는데 'true believer'를 정확히 표현하지는 못했다 생각합니다.
저자는 숭고한 대의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정도의 신념가를 'true believer'라 칭했기에 맹신자보다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철저한 혹은 진실한 믿음(신념)을 가진 자들'로 이해하고 읽었습니다.
저자는 종교운동, 사회혁명, 민족운동 등 모든 대중운동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을 이 책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특히 'true believer'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역동적 단계'에 속하는 대중운동의 특징을 기술했습니다.
공정한 방송을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놓기 위해 투쟁하는 방송 노조는 신념에 충실한 'true believer'들이라 생각합니다. 이 대의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보다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이들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대중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방송 투쟁에 임하는 사람들의 마음엔 공정방송을 회복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주축으로 이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의 '갈망'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이 싸움을 방송국 직원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는 이유를 에릭 호퍼의 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True believer'들에 대항하는 '맹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과 변화를 향한 갈망은 동일한 확신에서 나온 것으로, 열렬하기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22쪽)어떻게 하면 이 맹렬한 저항을 극복하고 다수의 시민들을 운동의 대열로 끌어모아 승리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의 3장 '단결과 자기희생'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에릭 호퍼는 대중운동의 생명력은 "지지자들의 단결된 행동과 자기희생에서 나온다"(91쪽) 라고 했습니다. 지금 파업에 임하고 있는 이들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참고해 볼 필요가 있는 제언입니다.
"이들 조직이 대중운동으로 발전하느냐 아니냐는 그들이 어떤 원칙을 주창하고 어떤 사업을 실행하느냐보다는 단결과 자발적 자기희생에 얼마큼 집중하느냐로 판가름난다.(중략) 중요한 것은 처절하게 좌절한 사람들이 단결과 자기희생에 자발적으로 나선다는 사실이다.(중략) 무엇이 좌절한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바로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자각이다. 그들의 가장 큰 욕망은 그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것이다."(92쪽)지난 두 번의 정권을 지내는 동안 MBC와 KBS 소속원들은 처절한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이들을 투쟁의 자리로 이끈 것은 자신들이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다는 자각일 것입니다. 지금 파업에 임하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욕망은 과거 9년 동안 자신들의 모습에서 달아나는 것 아닐까요? 이 욕망이 더욱 단결된 힘으로 모이길 바랍니다.
에릭 호퍼는 자기 희생을 촉진하기 위해선 개인과 집단의 동화, 연극성(자신을 무대 위의 배우로 여기며 죽음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 장치), 현실에 대한 경멸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이와 함께 저자는 아래와 같이 쓰며 꿈과 상상, 무모한 희망을 무기로 갖출 것을 제안합니다.
""없는 것들"이 "있는 것들" 보다 강력한 법이다.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직껏 건설되지 않은 아름다운 도시, 아직껏 가꿔지지 않은 정원을 위해서 싸울 때 가장 필사적이었다."(116쪽)자기 희생과 함께 어떻게 하면 단결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공동의 증오(명확한 적), 모방(타인과 비슷하게 되는 것, 조직과의 일체화), 강력하고 효과적인 설득과 강압, 여론과 욕망을 대중운동의 집단 동력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비범한 지도자, 그리고 행동이 단결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봤습니다.
에릭 호퍼가 언급한 단결과 자기 희생 측면에서 방송 노조의 파업을 바라보면 많은 조건들이 갖추어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보직을 내놓기도 하고 프리랜서로 근무하는 이들까지도 자신들의 수입을 포기하면서까지 파업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속해 있던 현실에 대한 고발도 이어집니다. 부서나 역할을 넘어서 지금은 공정한 언론을 향한 하나의 집단으로서 각 개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특별기획 어게인 MBC]김장겸과 고대영으로 대표되는 적폐세력들에게 방송 종사자들 공동의 분노가 향하고 있고, 방송과 언론인들이 주창하는 공정 방송의 실현에 대해 언론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단체, 일반 시민들까지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장에 모여 이전까지의 방송 통제 현실을 알리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행동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방송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파업을 지지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통제와 억압 속에서 비겁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했으나 마음 속에선 포기할 수 없었던 공정한 방송에 대한 갈망이 실현되는 내일을 그려봅니다. 자기 희생도 감내하며 함께 힘을 모아 단결하고 있는 이들의 투쟁이 성공해 MBC와 KBS가 공정한 방송으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