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특성상 고지서나 공문서 등의 우편물이 거의 매일 도착한다. 오전 11시쯤이면 어김없이 집배원이 방문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제시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오토바이가 아닌 낯선 차량이 들어온다. 오토바이 대신 산뜻한 경승용차다.
차량의 문을 열고 낯익은 집배원이 웃으며 사무실로 다가온다. 우체국 택배 차량은 보통 소형화물차인데, 추석 선물 택배라도 배달하러 온 차량인 줄 알았던 그 경차는 바로 일반 우편물 배달 차량이었다. 오래된 우편배달용 오토바이만 보다가 전용 차량을 보니 외견상 깔끔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선 안전해 보인다. 집배원계의 '신세계'가 따로 없다.
"어, 오늘은 오토바이가 아닌 멋진 차를 타고 오셨네요?" "아이고, 저도 이 일 시작한 지 17년 만에 처음이네요. 허허허." "진작에 이런 차로 배달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근데 무슨 일이래요, 경차로 바꿔주고?" "읍면 시골 지역이나 공단지역 배달하는 집배원 중 이동 거리가 80km가 넘을 경우 바꿔줘요. 시내배달은 해당 사항이 없고요." "아, 그래요. 우선은 저희가 보기에 안전해 보여서 좋네요. 비나 눈이 올 때는 조금 위험해 보일 때가 있었는데…." "저도 경차로 배달하니까 아내가 가장 좋아합니다. 운전하며 쉴 수도 있고 또 사고위험도 줄어들 것 같다나요." "이번 기회에 모든 집배원에게 오토바이 대신 차량으로 바꿔주면 좋겠네요." "골목길이 많은 시내는 바꾸기가 힘들 거예요. 배달 수량은 많지만, 골목길 배달을 하려면 아무리 경차라도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이 많아요."
집배원들은 온종일 배달업무 이외에도 화재감시는 물론 독거노인과 나 홀로 아동까지 살피며 위급환자 구급까지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환경이 열악한 시골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궂은 날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달리는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 만난 집배원의 대답에 의하면 오토바이 대신 경차를 지급하는 기준(하루 운행 거리 80km 이상)이 있다고 한다. 현행 300원대인 일반 우편요금을 조금 인상하더라도 골목길이 많이 없는 장거리 집배원에게는 모두 경차로 바꿔줄 수는 없을까.
지난해 7월 사회진보연대가 발표한 '전국 집배원 초과근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집배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5.9시간. 연평균으로 따져도 근로시간이 2천888.5시간이었다. 우편 물량은 갈수록 줄고 있으나 택배나 등기 물량은 오히려 늘었고, 이것도 대부분 이륜차(오토바이) 배달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우체국 집배원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집배원의 노동강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일선 현장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스트레스나 노동강도로 악전고투하는 집배원들의 사례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가족과의 소통은 꿈도 꾸지 못한다.
지난 5일 광주에서는 서광주우체국 소속 한 집배원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는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라고 적힌 유서를 남겼다. 올해에만 11명의 집배원이 사고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혹시라도 최근에 편지를 써서 붙여본 적이 있는가. 회사의 우편함에는 매번 우편물이 오고 있지만, 대부분 고지서나 안내장이 주류를 이룬다. 그나마 택배사업이 우정사업본부의 부족한 수입을 메꾼다지만 항상 수익구조 악화라는 이유로 집배원들의 처우 개선에는 뒷전이었다.
우편 사업은 경제 논리가 아닌 국가 공공서비스인 만큼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희생도 필요하다. 우편요금을 일부 올려서라도 집배원의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자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차 집배원이 우편물을 가져다주는 세상,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올해 추석은 가을걷이와 겹쳐 있어 폭주하는 우편물과 택배를 싣고 고생할 집배원들이 더 걱정이다.
경차 집배 차량이 소속된 당진우체국 물류 담당자는 14일 통화에서 "우리 관내의 경우 우편배달용 이륜차(오토바이)는 현재 40여 대가 있으나, 읍면 단위의 장거리 집배원 위주로 시범적으로 경차를 4대 운영하고 있다"며 "예산이 확보되면 (해 년마다) 차츰 늘려가려고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