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2003년 8월에 제정·공포돼 2004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시행 13년째인 올해 들어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가 과거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난받던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보다 더 악하다고 말한다. 반면,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별도로 해서 부담을 줄여달라고 한다.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고용주들은 고용허가제 쿼터를 늘려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고용 현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 기자 말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보수 야당 의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가운데는 숱한 인권침해와 미등록이주노동자 발생 등의 문제로 2006년 폐지된 산업연수생 제도를 다시 도입하자는 요구도 있었다.
홍철호 바른정당 의원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중소기업주의 부담이 커졌다며 산업연수제 재도입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외국인 근로자라고 해서 차별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지만, 홍 의원의 거듭된 촉구에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와 답변은 헌법도 모르는 무지와 산업연수제가 폐지될 당시 명확하게 역사적 단죄를 내리지 못했던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산업연수제 폐지와 고용허가제 도입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압류, 급여 강제적립과 통장 압류, 기숙사 감금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을 막으려 했던 산업연수제는 그 과정에서 숱한 인권침해를 일으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발생은 필연적인 결과였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은 당연했다.
고용허가제 도입은 시대적 요구였다. 산업기술연수생이 도입된 이후 불거진 잦은 인권침해는 국내외적으로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가져왔고, 시민단체와 ILO 등의 국제사회는 10년 넘게 폐지 요구를 해 왔다. 결국 2003년 8월 17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허가제)'이 제정됐고, 1년 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는 법률 제정 목적을 법 제1조에 이렇게 밝혔다.
"이 법은 외국인 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관리함으로써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위 조항에 따라 고용허가제는 아래와 같은 기본원칙을 제시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 내국인 일자리 잠식하지 않도록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에 한해 외국인 고용 허용(보충성) ▲ 송출 비리 근절을 위해 공공부문이 직접 관리(투명성) ▲ 외국인근로자의 국내 정주화 방지(단기순환) ▲ 노동관계법령 등 내국인 근로자와 동등하게 대우(차별금지) ▲시장 수요에 맞는 외국인력 선발, 도입 지향(시장수요 원칙)
당시 정부는 그동안 이익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가 운영해 오던 외국인력 도입을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게 했다.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에도 중소기업중앙회는 산업연수제 유지를 위해 갖은 시도를 했지만, 고용허가제 시행 2년 뒤인 2006년도에 완전 폐지된다.
이어 1년 뒤인 2007년 8월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에 대해 사실상 '역사적 단죄'를 내렸다. 헌재는 "산업연수생 관리지침이 외국인근로자의 권리에 대해 내국인 근로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결정했다. 산업연수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긴 했지만 해당 결정은 노동의 권리에 관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명확히 한 판결이었다.
헌재 결정은 '산업연수제는 위헌적 토대 위에서 이익 집단의 배를 불려 왔었던 악한 제도'였음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헌재가 이미 위헌이라고 했던 제도를 재도입하라고 요구하는 홍 의원은 자신이 '법도 모르고 인권도 모름'을 커밍아웃한 셈이다.
산업연수제 재도입과 같은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중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사적 단죄 혹은 청산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결정 후속 작업으로 산업연수생에 대한 기본권적 노동권을 억압했던 주체들에 대한 단죄나 책임자 문책 등이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제도가 폐지됐단 이유로 그런 부분이 흐지부지됐다.
그뿐 아니라 단죄를 받아야 했던 이들에 의해 외국인력 정책이 좌지우지돼 고용허가제가 사실상 고용주를 위한 제도로 퇴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산업연수제를 고용허가제에 담아내려 애썼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는 그런 시도에 적극 호응했다. 그 결과 산업연수생 제도보다 못한 제도가 돼버렸고, 고용허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8시간 일하나 24시간 일하나 똑같은 임금 지불하라는 고용노동부
고용허가제는 이명박 정부 이후 철저하게 고용주 편의 위주로 바뀌면서 제도 도입 취지가 퇴색해갔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은 위헌 결정을 받았던 산업연수제보다 어려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소 조항이다. 그래서 지금의 고용허가제는 과거 산업연수제보다 못하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위헌 결정을 받은 산업연수제보다 낫게 운영해야 하는 건 국가의 책무다. 이전보다 더 나빠진 부분은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표준근로계약서만 살펴봐도 쉽고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이게 과연 노동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에서 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를 들면 이렇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N은 2016년도에 이천에 있는 버섯농장에서 일하기로 하고 입국했다. 그는 입국하면서 고용노동부를 통해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이렇게 맺었다.
▲ 하루 10시간 근무 ▲ 월 2회 휴무 ▲ 월 226시간 근무 ▲ 월급 122만6270원
위 근로계약서가 엉터리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근무시간이 하루 10시간이고, 월 2회 휴무면 월 280~290시간이다. 그런데 226시간이라고 쓰고 있다. 더 나아가 2016년도 최저임금에 따르면, 월 209시간 근무 노동자 급여는 월 122만6270원, 월 226시간 근무 노동자는 월 136만2780원이다. 월 근무시간을 226시간이라고 했으면 최소한 월 136만2780원이라고 써야 하는데, 이마저도 틀렸다.
이처럼 엉터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아야 한다. 주휴수당이니 뭐니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고용노동부 핑계는 이렇다.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른 농·축·잠·수산업의 경우 같은 법에 따른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은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해당 법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 제5조 1항은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하 "사업"이라 한다)에 적용한다"고 돼 있다. 말인즉, 월 226시간 이상 일했으면, 그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고용노동부가 제공한 표준근로계약서처럼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은 1일 24시간 일 시키고도 8시간 임금만 줘도 된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고용노동부가 월 290시간을 일을 시키고, 월 226시간으로 쓰도록 유도하는 건 이주노동자들을 공짜로 부려먹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고용노동부는 이명박 정부 이후,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휴일과 휴게시간이 사실상 없고, 국경일도 없고, 야간도 없고, 잠도 못 자고, 최저임금조차 안 줘도 된다는 이야기를 고용노동부가 하고 있는 셈이다.
N은 올해 들어 월평균 290시간 이상 일했다. 주휴와 월차 수당을 빼도 185만 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월급은 137만 원 고정급이었다. 올해 월 226시간(주 44시간) 근무업체는 최소 146만2220원을 지급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현실인데도 근로감독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고용허가제 자체가 갖고 있는 독소조항과 산업연수제 형식과 내용을 답습하려는 기업과 정부의 운영 방식 때문에라도 고용허가제 폐지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런 마당에 산업연수제 자체를 부활시키려는 주장은 그야말로 적폐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