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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재난 현장에서 소방관이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한 기물파손에 대해 배상을 해달라는 민원이 심심치 않게 접수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불법주차 차량이나 불법 돌출 간판 등에 대한 손해배상까지도 버젓이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소방기본법 제25조는 사람을 구출하거나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할 때에는 화재가 발생하거나 불이 번질 우려가 있는 소방대상물 및 토지를 일시적으로 사용하거나 그 사용의 제한 또는 소방활동에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소방차의 통행과 소방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차 또는 정차된 차량 및 물건 등을 제거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시·도지사가 보상토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을 위반해 소방차의 통행과 소방활동에 방해가 된 경우에는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서울소방재난본부에 소방활동 중 부서진 문이나 차량 등에 대한 변상요구가 무려 50여건이나 접수된 것을 보면 이 법의 실효성은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소방대원들 역시 재난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불가피한 조치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 2014년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던 보스턴 소방대원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화전을 가로막고 있던 신형 BMW의 양쪽 유리창을 깨고 소화전 호스를 연결했다. 해당 차량의 소유주는 피해보상은커녕 오히려 경찰로부터 주차위반 스티커와 함께 100달러의 벌금까지 부과 받았다. 

 지난 2014년 미국 보스턴에서 화재진압 활동을 위해 소방대원들이 신형 BMW의 양쪽 유리창을 깬 뒤 소화전 호스를 연결한 장면이 트위터에 올라와 있다. 1500건이 넘는 리트윗이 이어지며 소방대원들의 조치가 적절했다는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출처:Mark Garfinkel, www.boston.com)
지난 2014년 미국 보스턴에서 화재진압 활동을 위해 소방대원들이 신형 BMW의 양쪽 유리창을 깬 뒤 소화전 호스를 연결한 장면이 트위터에 올라와 있다. 1500건이 넘는 리트윗이 이어지며 소방대원들의 조치가 적절했다는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출처:Mark Garfinkel, www.boston.com) ⓒ 이건

한편 지난 2011년 캘리포니아 주 베이커스필드(Bakersfield)에서는 한 시민의 집 마당에 있는 야자수 나무를 자르기 위해 고용된 인부가 나무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곧바로 관할 소방서의 소방대원들과 사다리차가 출동했고, 2시간가량 구조활동을 전개했으나 결국 요구조자는 다른 인부에 의해 구조된다.

구조가 끝난 후 집 주인은 시를 상대로 소방서 사다리차가 자신의 집 차량진입로를 훼손했다며 9000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시는 배상을 거절했다. 설령 구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구조행위가 정상적인 직무범위 내에 들어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시는 피해를 입은 부분은 해당 집주인의 주택보험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역시 이런 분쟁으로 인해 소소한 민원과 소송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파손된 기물이 소방대원의 정상적인 업무범위 이내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되면 'Tort Immunity Act(불법행위 면책법)'에 의해 책임이 면해진다.  물론 소방대원이 직무를 태만히 했거나 고의로 기물을 파손한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관련 법안은 이미 마련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운영의 묘를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 무리의 소방대원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고층건물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한 무리의 소방대원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고층건물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 이건

정상적인 소방활동으로 인한 피해는 해당 시·도에 전담 피해접수 창구를 마련해 소방대원들을 적극 보호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한 일부 악의적인 민원에 대해서도 소방서에서 이미 채용해 근무하고 있는 변호사(소방경, 6급 상당)를 통해 관련법을 검토해서 대응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일부 민원인들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해당 소방서나 소방관을 직접 찾아가 항의하고 비용을 청구한다고 하니 이는 소방관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마치 광고에서 활용되는 '노이즈 마케팅'처럼 공무원 신분이라는 점을 노리고 민원을 넣어 소음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해당 소방관을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일부 소방관들은 신분상 불이익을 피하거나 골치 아픈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합의를 하기도 하고, 또 출동대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변상을 해 주기도 한다.
  
최근 서울시, 경기도, 대구시 의회 등에서 '재난현장활동 물적 손실 보상에 관한 조례안' 마련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부디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더 이상 위축되지 않고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소방관 면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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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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