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편집자말] |
"올해 추석 연휴 봤어? 너무 길지 않니, 정말."
연휴가 너무 길다는 유부녀 친구의 푸념에 순간 깜짝 놀라 반짝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그랬다. 나도 결혼을 했으니, 이제부터의 명절은 지난해까지의 명절과는 달랐다. 한쪽 방향으로만 열리는 문을 건너온 듯한 현실감이 일단은 아주 가볍게 나를 한번 휘감고 지나갔다.
지난해 생전 처음으로 명절을 맞아 기차표를 예매했다. 티켓팅이라고는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치열하게 해봤지, 그보다 더 경쟁률 높은 티켓팅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도 물론 어릴 때 시골 중의 시골인 해남 외할머니댁에 가봤던 기억이 있지만, 제천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였다.
게다가 낯선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시댁 친척 식구들 대부분 결혼식 때 보고 인사도 나눴겠지만, 정신없는 식장에서 친구들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낯선 어른들 얼굴이 기억날 리 만무했다.
아무튼 내가 믿을 건 그나마 2년 동안 봐온 얼굴인 신랑밖에 없었다. 신랑 손을 꼭 잡고, 서먹하고 어색하게 제천에 도착했다. 밤하늘에 별이 보이는 건 좋은 일이었고, 그것 말고는 통 시선 둘 곳이 없다는 게 안 좋은 일이었다. 늘 가족들과 보내던 명절인데, 갑자기 내가 이런 곳에 와 있다니... 이방인이 된 것처럼 이상했다.
시어머니가 '친척들이 많아 어려울 테니 명절 전날 늦게 기차를 타고 오라'고 하셔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미리 해두는 음식 준비는 이미 다 끝나 있었다. 늦은 술자리에 슬며시 끼어 술을 몇 잔 받아먹고, 이불을 깔고 생전 처음 남편의 시골집에서 잠을 청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다음 날 새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찍 눈이 떠졌다.
신랑을 쿡쿡 찔러 깨우고 보니 이미 시어머니를 포함해 여자들은 다 일어나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고 남자들은 더 자다가 근처 목욕탕에서 씻고 온다고 나갔다. 시골집이라 욕실에서 간단한 세면은 가능하지만 샤워 시설이 없는 탓이었다. 남자 어른들이 신랑도 같이 가자고 불렀지만 그는 나 때문에 가지 않았고, 그중에도 남편 여동생인 시누는 차례를 지내기 직전에 일어났다, 친정에서의 내가 바로 작년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자들이 차려놓은 차례상에서 목욕재계하고 돌아온 남자들이 절을 한다. 절이 끝나면 또 여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아침 식사를 차린다. 남자들은 이미 상 앞에 앉아 있고, 여자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나르다가 가장 늦게 자리에 앉는다. 여태까지 친정집에서는 엄마, 아빠, 남동생, 나까지 네 명이서만 명절을 보냈기 때문에 나로서는 말로만 듣던 전형적인 명절 풍경인 셈이었다.
시어머니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 불편하다
"언제 올라가니?"
누군지 모르는 어른 한 분이 물었다. '차례 지내고 바로 올라가요' 대답하니 그분이 시아버지를 향해 농담처럼 한마디 건넸다.
"며느리 들이면 절대 친정에 안 보낸다고 하시더니?"
시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지만 나는 순간 당황해(혹은 황당해) 말문이 막혔다. 시어머니가 옆에서 손사래를 치셨다. 친정 엄마가 명절 당일에도 일을 나가시는데, 엄마 출근 시간 전에 도착하려면 시골에서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라고 미리 나와 말을 맞춰두신 상태다. 시어머니는 여태까지 한 번도 명절에 친정에 간 적이 없으시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밖으로 나와 버렸다.
"네?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시어머니는 당신이 겪으신 것을 나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시곤, 명절 당일에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차례를 지내자마자 우리 부부를 친정으로 보내주셨다. 첫 명절에 나는 전을 부치지도, 설거지 한 번도 하지 않고 끝난 셈이었다.
그런데 첫 명절이 어땠냐고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별일 없었어, 설거지도 안 했어'라고 대답하는 마음이 찜찜한 이유가 뭐였을까. 며느리가 들어오면 당연히 부엌일을 넘긴다고 생각하는 시댁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시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절 아침을 시댁에서 보내고, 이제 우리 부모님을 뵈러 친정으로 가는 것을 눈치 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일까? 내가 명절에 친정에 가는 것이 시댁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었던가? 시댁의 배려를 받는 그 상황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요즘 젊은 것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설거지를 시키지 않고, 명절 아침에 친정으로 흔쾌히 보내주는 시댁이 좋은 시댁이라면, 남편 입장에서의 좋은 처가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 엄마도 신랑에게 한 번도 설거지를 시킨 적이 없는데, 남편 친구들도 그에게 "명절에 설거지하느라 안 힘들었어?"라고 묻고, "아니, 우리 처가댁은 일 안 시키고 잘해주셔"라고 대답하고... 뭐,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후 첫 명절, 나는 누가 내 몸에 묵직한 돌을 달아 묶어놓은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자들만 일하는 모습을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풍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나를 챙겨주신다 한들, 내가 일하지 않으면 며느리를 잘못 들였다고 나중에 흉이 될까 봐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 자식들이 부모님을 돕는 건 당연한 도리지만, 거기서 시어머니가 일하는 것을 의식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람은 아들, 딸을 제치고 며느리인 나밖에 없었다.
그날 하루만 고생하면 되는 거니까, 싹싹하게 나서서 설거지도 하고 과일도 깎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난 이 집안 남자들과 결혼한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명절마다 시댁에 와서 남편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원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시집을 와서' 그의 집안에 덧붙여진 기분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그럼 결과적으로 남편 입장에서는 결혼을 통해 일손을 늘리는 셈인데, 그럼 우리 엄마의 명절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나 기존의 관념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리 부부의 관계를 과연 더 좋아지게 할 리 없다. 나는 남편이 우리 부부의 평등한 권리를 나만큼이나 원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권리를 위해 같이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적은 없지만) 어른들에게 맞춰드리자고, 명절에만 참자고, 대신 내가 집에서 혹은 친정에서 잘하겠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주어진 불평등과 차별, 그로 인해 남편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이 된 것 같은 상처를 그런 주고받기 식으로는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자, 내가 도달한 현실
두어 번의 명절을 보내고 나서, 나는 시집살이가 험하지도 않은 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게 왜 싫은지 조금은 알게 됐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걸 1년 중에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날이 바로 명절이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됐다고는 하지만, 그 '가족'의 테두리 속에서 나는 그냥 며느리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회 구성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며느리는 계급 사회로 치자면 남편(혹은 시댁에) 내조만 잘하면 되는 최하층민인 셈이었다.
누군가 특별히 나를 부려먹지 않아도, 시부모님이 좋은 분들이어도, 어쩔 수 없이 내게는 며느리로서 역할의 잣대가 씌어 있었다. 며느리가 전을 부쳐야 하는데 아직 처음이라 봐주는 것이고, 원래는 친정에 안 보내도 되는데 배려해서 보내주는 것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벌초하러 가야 하는데 올해는 안 와도 된다며, '옛날 같으면 장손이 빠지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었는데, 네 시아버지도 많이 유해졌나 보다' 하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그랬다. 그 일정에서 내 의견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나는 남편과 내가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명절의 시댁에는 어쨌든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친정집에서는 남편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그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나 마땅히 충족시켜야 하는 기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댁에서 나는 시부모님의 배려가 있어야 친정집으로 떠날 수 있고, 설거지를 안 시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평소 두 사람만 있을 때는 느낄 필요 없었던 그와 나의 계급 차이를 나는 앞으로도 명절마다 느껴야 할 것이다.
결혼 전부터 명절에는 양쪽 집을 번갈아가면서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편도 동의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던 대로 하면 굳이 싸우고 얼굴 붉힐 일이 없는데, 한 번씩은 친정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싶다고 고집하면 어른들과 갈등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만 있으면 싸울 필요도, 변할 필요도 없는 남자들 입장에서는 결심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이 말을 하니 친정에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 취급을 했다.
명절에 시댁부터 가면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데, 그 반대로 하면 모두가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 맞다. 그러나 나는 그냥 갈등을 감수하고 내 합당한 권리를 찾고 싶다. 우리가 불공평한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불편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다. 적어도 남편은 이 싸움에서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명절마다 일부러 깁스를 하거나 출근을 하는 여자들도 있다고 할 정도다. 결혼을 하면 모두들 축하해주지만 명절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로부터 '이제 힘들겠네'라는 동정의 시선이 쏟아진다. 나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나서서 싸우기보다 그냥 '나만 그렇게 안 살면 돼'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벗어나기 어려운 명절의 불평등이 짧은 시간 내에 모두의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지금도 마음이 답답하다. 결혼 후 명절이 주는 의무감과 부담감은 명백하게 여성들에게 치우쳐져 있다. 그것은 심지어 남편의 가족들을 위해서만 일방적으로 소비된다. 나는 결혼을 통해 시댁에 편입된 것이 아니다. 며느리로서 시댁에 소속된 명절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애초에 무엇을 위한 날인가
명절은 대체 뭘 위한 날일까? 예전에는 양반들만, 그리고 남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조상에 대한 예를 지내는 날이었다고 한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의미는 아닌가 보다. 지금은 그냥 여자들이 일하고, 남자들은 절하고, 그 탓에 부부끼리 마음이 상해 다투는 날이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명절 때문에 양 집안의 우선순위가 갈리고 사회 제도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자와 바꾸고 싶은 자 사이에 싸움이 날 바야에 차라리 이런 날은 없는 게 낫겠다. 일 년에 두 번씩, 멀쩡히 잘 지내던 부부 사이에서 아내는 시댁을 우선으로 챙기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행사가 필요한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명절을 가족 행사로 생각한다면 더더욱 전통은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명절마다 시댁 먼저 가고, 친정은 나중에 간다면 세상에 둘뿐인 우리 남매는 명절에 영원히 만날 수가 없다. 아마 딸만 세 명인 내 친구네 집 부모님은 영원히 명절 아침을 자식들과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지켜야 할 전통인가?
결혼 전의 여성들에게 명절은 긴 연휴, 휴식으로 여겨지지만 결혼 후에는 '노동하는 날'로 한순간에 의미가 바뀐다. 결혼 후의 명절이 여자들에게는 큰 변화라는 것, 그리고 그게 부정적인 변화라는 것을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안다. 여자든 남자든, 그걸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게 바뀌지 않으면 굳이 결혼이라는 족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여자들이 있을 리 없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결혼해도 여전히 명절에 휴식할 권리, 부부의 합의에 따라 각자의 부모님을 챙길 수 있는 권리, 남매끼리 만나 밥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는 권리, 선택에 따라 여행 가거나 직장생활에 지친 일상을 재충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면 자연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순수한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명절은, 외동이거나 한두 명씩밖에 없는 형제끼리 한 번씩 부모님과 시간 맞춰 만나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나눠먹고, 아니면 여행이나 가면서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돈독하게 하는 편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명절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가족의 만남과 민족의 축제로서 기능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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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올케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시누이의 문자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중복 게재됩니다(https://brunch.co.kr/@cats-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