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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청산가리 하나만 남게 해서 글 전체를 왜곡했던 누군가가 있을 거예요. 그 누군가가 10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고요, 제 삶, 제가 열심히 살고 있는 틈 사이사이에서 왜곡했어요. 계속 저를. 너 아직도 안 죽었니? 응? 아직도 안 죽었어? 왜 안 죽었어? 죽어, 죽어, 죽어 하니까, 시도를 했죠."

2008년 이후 '촛불' 발언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어요"라는 배우 김규리는 카메라 앞에서 오열했다. 허탈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10년 만에 용기를 내 인터뷰를 했다는 이 30대 배우가 서럽게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직 많을 것이다.   

지난 2008년 5월, 미국산 수입에 관한 졸속 협상과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그 당시 김규리는 여타 다른 연예인들처럼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가 쓴 관련 글 총 1044자 중에서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된 건 비유로 든 '청산가리'라는 단어였다. 정치인이 공격했고, 보수언론이 집중포화를 쐈다. 그 중심에 국정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국정원에서 했던 일이라니. 난 세금을 안 밀리려고 돈 없으면 은행에서 빚내서라도 세금 냈는데. 지난주 문건이 나오고 몇 자가 안 되는 거예요. 이걸로 난 10년 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허탈하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이게 뭔데…."

지난 9년 간, 김규리는 본명 김민선에서 이름을 개명했다. 실제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규리는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 '은밀하게 꼼꼼하게 – 각하의 비밀부대' 편에 출연,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규리의 이러한 고백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에 충분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날 <그알>은 'MB 블랙리스트 피해자'로서 김규리와 함께 방송인 김미화, 김제동도 연이어 인터뷰했다. 그리고 짐작하다시피,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의 전후 맥락을 촘촘하고 꼼꼼하게  정리한 <그알>이 정면으로 지목한 '배후'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넘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었다.  

'블랙리스트 피해자' 김규리의 눈물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MB 블랙리스트 문건 보도) 그 다음날인데, 저는 그때 엄마 보러 갔어요. 우리 가족들 오랜만에 성묘 갔어요, 성묘 갔는데. 오랜만에 엄마 보러 갔는데 사람들이 저를 막 욕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건에 이름이 나왔잖아요. 공권력이 그렇게 해를 가했다는 게 문건으로 나왔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욕을 먹어야 하죠?"

김규리를 욕한 이들의 중심엔 공권력이 있었지만, 그들로부터 촉발된 비난과 저주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김규리를 비난하며 MB 정권의 눈에 들어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도 있었다.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규리 같이, 광우병 거짓선동 등에 '친노종북' 세력에 아차해서 뜨려는 연예인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서 책임을 물어야 됩니다. 그래야 다시는 돈과 인기를 위해 대한민국을 흔드는 미친 청산가리파 연예인들이 못 나옵니다." 

2008년 당시 김규리를 '친노종북'으로 몰았던 조전혁 전 의원의 글이다. 언론들은 하이에나와 같았다. 특히나 <조선일보>는 집요했다. 사설까지 동원해 '광우병' 관련 보도를 했던 <PD수첩>과 김규리의 발언을 연장선상에 놓았고, 특히 '청산가리' 비유를 "미친 발언"이라고까지 표현했다.

"MBC PD수첩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은 지난 4월 29일이었다. PD수첩 내용은 4월 25일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정부가 그때부터라도 PD수첩 보도의 비과학적 선정적 내용을 과학적·논리적으로 반박만 했더라면 '미국의 쇠고기를 먹기보단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어느 탤런트의 미친 발언이 인터넷을 주름잡는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2008년 5월 5일자 <조선일보> 사설 중에서)

사설까지 동원하며 김규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았던 <조선일보>. 심지어 2년 뒤, <조선일보>는 "'광우병 촛불' 그 후 2년"이란 타이틀의 특집 연재들 중  <"차라리 청산가리 먹겠다"던 그녀, 개명하고 침묵>이라는 기사를 통해 김규리를 이른바 '부관참시'하기도 했다.

민간 기업도 나섰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 유통하는 업체인 에이미트는 2009년 김민선과 MBC <PD수첩> 제작진 5명을 상대로 광우병 집회 전후 김민선의 발언과 <PD수첩>의 보도로 매출액이 급감, 가맹점이 문을 닫는 등 15억 원의 영업 손실을 입었고, 이 중 3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낸 바 있다. 이듬해 법원은 김규리와 <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김규리는 아직도 비난을 받고 있다. 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연기 활동에 제약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쉬이 짐작 가능하다. 역시 블랙리스트의 피해자인 선배 배우 문성근이 김규리를 'MB 블랙리스트'의 최대 피해자로 꼽는 까닭 역시 그녀가 당시 '젊은 여성 배우'라는 점 때문에 보수진영과 정권의 좋은 '본보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이명박 정권과 보수진영은 꼼꼼하고 조직적이었다. 

보수 정권 재창출이란 목표를 위해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저는 취임 두 달 만에 맞은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재임기간 내내 되새기면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2008년 6월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그 발언을 다시 보고 읽으니, 소름이 쫙 돋는다. 지금까지 밝혀진 국정원의 활약을 염두에 두고 그 속내를 다시 해석하면, 이쯤 될 것 같다. 한 마디로, MB의 '뒤끝'은 한없이 무시무시했다. "촛불의 배후" 운운했던 MB 아니었던가.  

'저는 취임 두 달 만에 맞은 (국민들의 대대적인 비판과 집회 등 )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과 공포, 분노)을 재임기간 내내 되새기(고 보복을 다짐하)면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나를 지지하는)국민과 소통하면서 (나를 비판하는)국민(은 '종북좌파'로 몰면서)과 (국정원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끝까지 보복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날 <그알>이 정리한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과 여론조작, 방송장악과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후 맥락은 이러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복심' 위에서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알>은 이를 위해 일개 공무원 출신인,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충성 또 충성했던 부시장 출신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을 해체하다시피 하며 MB를 위한 조직을 재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구속 수감 중인 원세훈 전 원장은 최장수 임기를 자랑한 인물이고, 그를 총애하며 무리수를 두며 임명을 강행한 임명권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요약하자면, MB 정부 하에서 '언론장악'과 '블랙리스트' 등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보수 정권' 재창출을 위해 뛰었다. '댓글사건'을 위시해 검경과 군대 등이 이를 도운 증거들이 다반사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를 은폐하고 보수 정권을 이어가기 위해 전 정권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2013년 4월에 (댓글 사건)경찰수사 마무리 이어진 검찰수사, 이 과정은 정의에 대한 배반입니다. 법에 대한 배반이에요. 사법 절차에 대한 배신이에요. 이건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남겨야 해요. 경찰과 검찰과 우리 사법체제는 그 자들, 실제로 법과 절차에 따라서 엄정하게 업무를 집행하지 않은 그 자들 한 명 한 명을 전부 기록해야 합니다." (표창원 의원)

이날 <그알>이 메스를 들이댄 '댓글 사건'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보수정권 재창출 프로젝트라는 큰 그림의 단초였다. 국정원이, 검찰과 경찰이, 법원과 군대가 움직인 것이다. 그 최종 단계가 보수 정권 재창출이었음을 속속 드러내는 정황들이 있다. 적폐 청산 TF의 조사 결과가 검찰의 수사 결과들이 그 심증을 더 해주고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박근혜 정권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고, '국정농단' 사태까지 국가를 몰고간 보수정권에 분노한 국민들의 '촛불'은 그 정권을 퇴출시켰다. '적페 청산'을 시대정신으로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17년 9월, 그 시대정신은  박근혜 정권을 창출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그에 앞서 죄 없는 국민들을 '종북좌파'로 몰았던 '이명박 정권'과 MB를 겨냥하는 중이다.

"이제 (MB)당신께서 국민들의 이 물음에 답할 차례입니다"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23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지금, 매일매일 새롭게 드러나는 지난 정권의 적폐는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책임을 지지도, 책임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한 사람. 국정원, 법원, 검찰, 경찰, 군대까지 마음만 먹으면 움직일 수 있는 단 한 사람. 늦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떠오르고 강요된 침묵은 반드시 깨어진다는 걸 몰랐던 단 한 사람 말입니다."

진행자 김상중의 마무리 멘트는 단순하고 강렬했다. 여기서 '단 한 사람'은 물론 MB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환하게 웃는 화면에 뒤이어 블랙리스트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인 김제동은 인터뷰를 이렇게 결론 맺었다.

"그들은 노력했지만 실패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실패할 거고, 그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어떤 정권이든 간에, 그 정권이 바뀌고 다른 사람들 다른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사안 사안에 따라서 국민은 정부를 비판할 권리가 있어요. 권력은 늘 국민에게 있고 권한은 저들에게 있는 거니까요. "

작년 겨울, '박근혜 시리즈'로 여론을 환기시켰던 <그알>은 이제 전직 대통령 이명박을 겨냥하고 있다. <그알> 제작진은 이미 몇 주 전부터 "BBK 회사나 다스(DAS)에 직접 근무하셨거나 이들 회사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의 제보"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서, 이날 김상중의 마무리 만큼 공감가는 멘트도 또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당신께서 국민들의 이 물음에 답할 차례입니다"라며 마치 살인자나 용의자에게 직접 물음을 던지던 김상중이 'MB'에게 직접 물음을 던진 아래 멘트 말이다. 

"방송 장악, 여론 조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우리는 지난 9년 간 감춰졌던 비밀이 밝혀지기까지 싸우고 희생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사실들이 우리가 지난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을 들고 간절히 바랐던 정의의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첫걸음은 적폐의 책임자가 모든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밝히는 일이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국민들을 둘로 갈라 싸우게 했는지, 권력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해 삶을 파괴하면서 까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반대하는 목소리를 탄압하고 사찰하는 것이 과연 당신들이 믿는 민주주의인지, 이제 당신께서 국민들의 이 물음에 답할 차례입니다."


#이명박#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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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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