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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세운상가 3층.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자수리점, 음향기기점들 사이에서 한참을 헤매다 구석에 숨겨진 '차 전자'를 찾아냈다.

겨우 3평 남짓한 이 전자수리점이 세운상가에서도 유명한 '발명왕'이 일하는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차 전자의 차광수 대표(60)는 지난 60년대말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세운상가에 광석라디오 부품을 사러 오는 어린이 손님으로 인연을 맺어, 가게 직원으로 일하다 80년도에 자신의 가게를 냈다. 차 대표는 이후 세운상가에서 잔뼈가 굵은 세운상가 영욕의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처음 세운상가에 왔을 땐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거리를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많았다"며 잘 나가던 시절의 세운상가를 회상했다. 특히 "세운상가에서 미사일, 탱크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설이 아닌 사실이었다"며 이곳이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메카였음을 증언했다.

그는 또한 "세운상가를 없애지 않고 재생하려고 하는 서울시의 계획에 적극 찬성한다"며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예전과 같은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입주한 젊은 기술자·예술가들에 대해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는데 놀랐다"며 "그들의 열정과 우리의 기술이 융합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차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어린 시절과 꿈, 그리고 세운상가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본다.

 세운상가의 '발명왕' 차광수 대표. 초등학교때부터 전자 부품을 사러온 손님으로 인연을 맺은 세운상가 역사의 산 증인이다.
세운상가의 '발명왕' 차광수 대표. 초등학교때부터 전자 부품을 사러온 손님으로 인연을 맺은 세운상가 역사의 산 증인이다. ⓒ 김경년

"그땐 사람이 너무 많아 바글바글했지, 교통체증도 심하고"

- 세운상가와의 첫 인연은 언제였나.
"고향이 경기도 청평인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자쪽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서울에서 방송하는데 이 시골까지 라디오 소리가 온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마침 실과책을 보니까 광석라디오 회로와 실체배선도가 나와 있더라. 꼭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전파사에 가서 부속을 달라고 하니까 '조그만 녀석이 이걸 사서 어디에 쓰려고 하냐'며 처음엔 안 판다고 하더라. 가까스로 졸라서 부속을 겨우 하나 사고 나머지는 어디 가서 사야 하냐고 캐물었더니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에 가면 뭐든지 다 있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왔더니 부속 파는 데가 너무 많아 신났다. 그래서 용돈을 다 털어 전부 사 왔던 기억이 있다."

- 어려서부터 뭘 고치고 만드는 데 흥미가 있었나 보다.
"물건을 자꾸 뜯어보는 호기심이 있었다. 멀쩡한 라디오를 뜯어 놔서 혼도 나고 떡 사먹으라고 준 돈으로 모터를 샀다. 책에 나오는 모터가 있으면 깡통을 오려서 종이와 코일을 감아서 만들기도 하고. 그게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그쪽에 매달리게 된 것 같다."

- 전자쪽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더 배우고 싶어서 남대문로에 있는 국제텔레비전기술학교라는 데를 혼자 무작정 찾아갔다. 교실을 청소하는 대가로 기술을 가르쳐주고 책도 무료로 주더라. 그땐 워낙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을 때니까 용기를 내서 꼭 배우겠다는 열성이 있으면 학생을 그런 식으로 가끔 받아줬다."

- 그러다 세운상가에는 언제 왔나.
"군대를 다녀온 뒤 세운상가에 가면 아주 일거리가 많다고 하기에 여기 와서 가게에 취직했다. 부속 구하러 수도 없이 드나들다 보니 가게 주인과 안면도 있고 성실하게 보이니까 와서 있으라고 하더라. 그러다 좀 있다 1980년도에 노점처럼 작게 내 가게를 차렸다. 당시엔 워크맨이나 겜보이 같은 걸 수리했다. 그러다 20년을 한데나 다름없는 곳에 있다가 2000년도에 지금 이 자리로 옮긴 거다."

- 세운상가에서 일을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은 어땠나.
"그 땐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길을 지나가려면 어깨가 서로 부딪치고 '짐이요, 짐! 짐!'이라고 외쳐야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지방의 전자제품 가게 하는 분들이 현찰을 가지고 엄청 몰려와 냉장고, TV를 싹쓸이 해 갔다. 한마디로 바글바글 했다. 주변 교통체증이 엄청 심했다."

 세운상가의 '발명왕' 차광수 대표가 자신의 전자제품 수리점에서 적외선 투시기가 장착된 DMZ 경비군인 로봇 모형을 만들고 있다.
세운상가의 '발명왕' 차광수 대표가 자신의 전자제품 수리점에서 적외선 투시기가 장착된 DMZ 경비군인 로봇 모형을 만들고 있다. ⓒ 김경년

병아리부화기서부터 음성인식장치, 물체 피하는 자동차까지

- 별명이 '세운상가 발명왕'이더라. 어떻게 그런 별명을 얻게 됐나.
"여기서 전자 수리를 하다 보니까 발명대회 나가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많이 찾아오더라. 그들에게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제로 물건을 구현할 기술이 없는 거다. 그걸 만들어 주기도 하고, 아직 특허로 출원되지 않은 게 뭔지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직접 발명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특허도 몇 건 내다 보니 그런 별명을 얻은 것 같다."

- 어떤 특허를 냈나.
"지금까지 4건을 냈다. 한 번은 강원도 미시령을 갔는데 밤이 되니까 너무 깜깜하고 무섭더라. 전기도 없고. 그래서 전기가 없는 곳에는 어떤 것을 설치해야 밤에도 안전히 길을 갈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바람이 잘 부는 곳이니까 풍력발전을 이용해 가로등을 설치하면 되겠다 싶었다. 저항 없이 잘 회전할 수 있도록 깔때기 모양 풍력발전기 세 개를 달아서 점멸식 가로등을 만들었다. 부엌 싱크대에서 발로 밟아 찬물, 더운물이 나오게 하는 장치도 만들었고, 납땜 할 때 나오는 찌꺼기를 모터로 닦아주는 장치, 권총 모양으로 방아쇠를 당기면 납을 빨아들이는 장치도 특허를 냈다. 앞에 두 개는 협력했던 사람들이 잘 안 되어서 지금은 안 하고 있지만, 납땜 관련 장치들은 지금도 기술자들이 쓰고 있다."

- 병아리 부화기도 만들었다던데.
"누가 와서 만들어 달래서 한 거다. 전기로 모터를 회전시켜서 발열되면 상자가 따뜻해지는 원리다."

- 도난방지 가방손잡이도 만들었나.
"어떤 사진작가가 가방을 놓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누가 가방을 훔쳐 갔다며 손잡이에 전기가 흐르게 해서 못 훔쳐 가게 해 달라는 거다. 그래서 고전압 방전이 일어나는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 높은 전압의 전기가 흐르게 해서 손잡이를 잡으면 찌릿하게 만들었다. 물론 본인이 잡을 땐 리모콘으로 해제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차 대표가 만든 것들은 도로 바닥에다 코일을 깔아 지나가는 자동차 수를 세는 교통량조사기, 전방에 있는 쓰레기를 센서가 감지해서 집게가 쓰레기를 집어 뒤로 넘기는 장치, 횡단보도 건널 때 남은 시간이나 유턴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 등 끝이 없다.

그러나 그가 만들었다는 것이 자동차가 물체를 피해가는 장치나 음성인식장치 등에 이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자동차가 물체를 피해가는 장치나 음성인식장치 등은 거의 첨단기술 아닌가. 정말 여기서 만들 수 있나.
"자동차가 물체를 피해가는 장치는 초음파를 40㎑로 보내면 반사되어서 오는 원리다. 내가 직접 그 회로를 만들었다."

- 그럼 요즘 자동차 후방 주차할 때 이용하는 장치를 직접 만들었다는 건가.
"그렇다. 센서를 이해하고 응용할 줄 알면 가능하다. 일본 등 외국에서 나온 논문이나 책을 사 보고 스스로 공부를 했다."

- 음성인식장치는.
"2000년도 즈음에 미국에서 음성인식모듈이 나왔다. 그걸 응용하는 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폭행사건이 나서 소리를 지르면 비상벨이 울리거나, 길거리에서 '강도야'라고 외치면 소리를 인식해서 경광등이 돌아가게 한다."

- 그런 건 대기업에서나 가능했을 것 같은데.
"우리가 일단 작게라도 만들면 그걸 투자자들이 발전시키는 거라고 보면 된다. 뭐든지 처음엔 미비하지만 발전시키면 아주 요긴한 장비가 된다."

 1980년대 세운상가. 당시의 세운상가는 서울의 중심상권으로 전자산업의 메카였다.
1980년대 세운상가. 당시의 세운상가는 서울의 중심상권으로 전자산업의 메카였다. ⓒ 서울시제공

"세운상가에선 맘만 먹으면 뭐든지 다 만들 수 있다"

요즘 세운상가와 관련된 언론 기사들을 보면 상투적으로 '옛날 세운상가에서는 탱크도 만들었다는데...', '옛날 세운상가에서는 미사일도 만들었다는데...' 류의 제목들이 달린다. 그래서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 "예전에 세운상가에서는 정말 미사일이나 탱크를 만들었나?" 그랬더니 답이 놀라웠다.

"만들었었다."

- 정말인가.
"물론 미사일에 들어가는 폭탄을 여기서 만들지는 않았지만, 미사일을 조종하는 데 필요한 장치들을 만든 거다. 미사일은 기폭장치도 있어야 하지만 방향조절이 중요하다. 예전엔 GPS가 없었기 때문에 내부에 무전기를 탑재하고 날개에 모터를 달아 방향을 조종해서 목표물까지 가게끔 했다. 여기를 다녀간 군인들이 다시 와서는 여기서 만든 미사일 시제품을 가지고 부대에 가서 투스타 앞에서 시연을 했다고 하더라."

- 그럼 탱크를 만들었다는 것도 사실인가.
"내가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길 건너 철골목에서 주물도 할 수 있으니 가능하다고 본다. 전자쪽은 여기에 상당한 기술자가 많으니까 쇠를 다루는 사람만 있으면 되잖나. 실제로 궤도전차의 바퀴를 만드는 걸 봤다."

- 잠수함, 인공위성도 가능한가.
"세운상가 기술자 가운데 바다에 가서 진짜로 잠수정을 고치고 왔다는 사람을 봤다. 인공위성 실험은 우리나라에선 허가가 안 되기 때문에 인도에 가서 실험하고 온 사람이 있었다."

- 정리하면, 세운상가에서 진짜 탱크, 미사일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제품을 만든 거라고 보면 되나.
"맞다. 그러나 진짜 탱크와 미사일도 맘만 먹으면 가능하다고 본다."

 지난 19일 열렸던 세운상가 '다시세운 프로젝트' 1단계사업 공식 개장식에 참석한 시민들.
지난 19일 열렸던 세운상가 '다시세운 프로젝트' 1단계사업 공식 개장식에 참석한 시민들. ⓒ 서울시제공

"고장난 TV 사러 온 백남준... 내가 좀 죄스럽다"

-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인연도 있다고 하던데.
"그 얘길 하면 내가 좀 죄스럽다. 세운상가에 오기 전 충무로에 있을 때 하루는 어수룩하게 생긴 사람이 가게에 들어오더라. 스포츠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고 어눌한 목소리로 'TV를 사러 왔다'고 하더라. 고장난 제니스 TV를 가게 한쪽에 치워뒀는데 그걸 사겠다고 하는 거다. 싸게 달라며 하도 깎고 깎아서 줬더니 나보고 짊어지고 택시까지 실어다 달라더라. 다시는 안 오겠지 했는데 그 다음에도 계속 왔다. 우리는 값나가는 고가품을 팔아야 이득이 남는데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사람 간 다음에 사장님이 소금 뿌리라고 해서 진짜 소금을 뿌렸다."

- 너무 한 거 아닌가. 그래도 손님이고 팔기 위해 어차피 내놓은 상품인데.
"원래 중고TV를 고쳐서 값을 더 받고 팔려 했던 건데 싸게 달라고 하고, '재수 없게' 아침에 개시도 안 했는데 그런 손님이 오고 그러니. 그랬더니 '앞으로 유명해질 사람인데 이렇게 괄시하면 되냐'고 항변하더라. 그 후 한동안 안 오더니 어느 순간 와서는 청계천 세운상가에 갔더니 나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더라며 '이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가 지금 보니 백남준의 작품 설치가로 불리는 이정성씨를 일컫는 것이었다."

- 이것만큼은 세운상가, 아니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자랑한다면.
"내 어릴 적 소원은 대통령, 판검사가 아니라 전자기술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그 소원을 이뤘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다. 많은 기술을 터득했고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쉽게 이해시켜줄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발명 하면 세종대왕님 아닌가. 세종대왕이 계신 여주에서 조그마한 전자기술학교를 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자주 가서 주민과도 교류하고 있다."

"세운상가,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예전처럼 될 수 있다"

- 제일 중요한 질문이다. 세운상가가 예전에 비해 지금은 많이 쇠퇴했는데, 서울시는 이를 헐지 않고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운상가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고 보나.
"세운상가를 없앨 테니까 가든파이브 같은 데로 가라며 자꾸 쫓아내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버텼더니 서울시가 재생사업을 한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고 잘하는 일이라고 본다. 세운상가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노력하면 예전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배가 고파 기술을 배우려 했는데 요즘은 학생들이 잘 안 하려고 한다. 기술을 갈구하는 학생들에게 기술도 배워주고 생산품도 만들 수 있도록 밀어주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본다. 꿈을 꿔야지 꿈도 안 꾸면 안 되지."

- 세운상가에 오래 일을 하신 장인분들도 많지만 최근에 젊은 기술자나 예술가들이 많이 입주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있다면.
"전자의수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외국 전쟁터에 가서 손이 없는 사람에게 직접 끼워주더라. 우리도 예전에 그런 걸 만든 적 있지만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놀랍다. 또 3D프린터 만드는 분도 그걸 만들어 직접 판매까지 하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아이디어가 많다. 또 젊은 예술가를 보면 우리가 생각지 못 한 것들을 잘 생각해 내더라. 가령 식물에서 피가 나는 것, 식물이 돌아다니는 것을 표현하던데 우리는 그걸 기술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와 그들이 서로 융합되면, 지금은 미약하지만 나중에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차광수#세운상가#미사일#탱크#차 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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