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26일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적십자·군사회담을 제안했는데, 군사회담 제안에 대해 미국이 엄청 불쾌해 했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강력한 어조로 항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일부·노무현재단·서울시가 이날 여의도 63빌딩에서 '위기의 한반도 평화구축 해법은 무엇일까'주제로 개최한 10.4 남북공동선언 10주년 기념 강연에서 "그러나 휴전선이나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군사 충돌을 막아야 하고, (지난 6월 3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북측과 대화하는 데 있어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추진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교수는 현재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의 전략적 불신 해소를 위해 특사를 통한 미북간의 대화와 함께 남북간 대화가 긴요하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지난 7월 17일 정부가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과 군사분계선에서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를 위한 남북군사당국회담을 제안했을 당시 한미 정부간에 있었던 막후 상황을 전했다.
그는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해 "68년 1.21사태(청와대 기습 미수사건), 76년 미루나무 사건(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군사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미루나무 사건 때보다 엄중하다"고 평가하면서 "당시 미국 군사 배치는 우발 충돌에 대한 대응이었지만 이번에는 체계적이고 준비된 군사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10.4선언 내용을 회고하면서 "46개 합의사항 중 28개 항은 현재의 유엔 제재하에서도 실행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6일) '베를린 구상'에서 말했던 선이후난(先易後難)"이라면서 "그래서 북이 군사적 행동을 자제하고 전향적으로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경로종속성'이란 개념이 있는데, 현재도 지난 9년간 보수 정부가 해온 정책을 일거에 바꾸기 어렵다는 점에서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답답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미국에 경도됐다고 비판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그는 이어 "문 대통령이 미국에 너무 경도됐다고 비판이 많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핵 억지력을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핵우산 보장이 어려운 데다, 한미관계가 삐걱거려서 소통이 안될 경우 미국이 독자적으로 대북 군사행동을 하면 우리는 모르고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촛불민심의 초심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상황을 반전시킬 것인지 고뇌하고 있다. 이런 점을 국민들께서 이해하셔서 문 대통령을 지지해 주셨으면 한다"면서 "그런 의미로 문 대통령께 박수 한번 쳐달라"고 유도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현재 상황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반도 배치 반대론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과 민생경제의 부정적 효과 등의 측면에서 저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면서도 "그런데 정부 당국자 입장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한미군의 보호 차원에서 필수적이라고 하고 ▲전 정부의 약속이라는 점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함께 사드 4기 추가 배치는 미국의 상당한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경우 주한 미군을 감축한다고 하면,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이날 10.4선언 기념식 행사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통일부가 '공동 주최' 일원으로 참여하는 정부 행사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