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영복 선생의 <담론>(돌베개)을 일독했다. 담론(談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을 뜻한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은 이에 더하여 마치 바로 곁에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까지 부여하는 지식의 창고에 다름 아니었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사이버대학에서 공부했다. 당시 한 달에 한 번은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되었다. 서울서 오신 교수님과의 수업 뒤 만남은 맥주와 치킨이 난무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난상토론도 잦았다.
때문에 그 시절을 떠올리자면 마치 지난날의 사진을 보는 양 기분까지 너부죽하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副題)가 딸린 이 책은 시대의 지성이자 석학인 신영복(申榮福) 선생의 강의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지식의 총체(總體)였다.
주지하듯 신 교수는 1968년 반체제 지하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뒤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리곤 무려 20년 20일 동안이나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신 교수가 교도소에 수감 중 발간했다는 화제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 교수와 같이 서울대를 나온 딸이 언젠가 집에 왔을 때 수중에 지니고 있던 책자였다.
어쨌거나 <담론>은 저자 자신이 직접 겪은 다양한 일화들과 함께 생활 속에서 겪은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들려주고 있어 지식의 옥답(沃畓)이자 화수분이란 소득으로 귀결되었다. 더욱이 만날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고 보니 신 교수의 이 저서는 필자가 집필하는 데 있어서도 꽤 많은 영양분까지를 공급할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태평양보다 너른 삶의 지침이자 또 다른 교과서라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필자로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질곡의 교도소에서의 삶을 시종일관 긍정 마인드로 치환하고 있다는 데서 존경심의 싹이 더욱 움텄다.
이를테면 P.327~328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그렇다. 취침 시간 뒤 교도관에 의해 불려나가 그들의 산적한 잔무를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로 야박하게 자기들끼리만 짜장면을 먹었다는 장면을 접하면 안타까움이 배가 된다. 그럼에도 이를 '나 자신을 추상 같이 깨달았던 일화'로 치부하는 대목에선 저자의 통 큰 면모까지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외화 <쇼생크 탈출>에선 악랄하기로 소문난 교도관(간수장)조차 자신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주인공 앤디의 부탁을 좇아 애먼(?) 동료 죄수들에게까지 감로수에 다름 아닌 맥주를 돌렸거늘.
이 책에서 더욱 주목하고 천착한 대목은 P.376에서 거론한 "미국은 어떠한 국제분쟁이나 전쟁도 문제의 최종적 해결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략)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최종적 해결은 미국의 계획에 없습니다"였다.
해방 당시 유행했던 말이 "미국 사람 믿지 말고, 소련 사람에게 속지 말며,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 사람 조심하라!"라고 했던가. 고루한 주장이겠지만 국방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담론>은 만물상(萬物商)에 다름 아닌 명불허전(名不虛傳) 지식의 보고(寶庫)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