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년 전 최전선 전투지역인 페바-브라보(FEBA-B, Forward Edge of Battle Area-Bravo)에 위치한 육군 모 보병사단에서 복무한 예비역 병장입니다.
부대 위치와 이름은 공식적으로는 비밀인 데다가 특정 부대만의 문제를 논하는 글로 읽히지 않기를 원해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식을 접하셨겠지만, 지난 26일 강원도 철원의 모 부대 소속 이아무개 일병(22)이 원인 불명의 총탄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습니다.
이 일병은 소대원들과 진지 공사 작업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탄에 맞았고, 탄은 인근 부대 사격장에서 발사된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합니다. 이 일병이 복귀하던 전술 도로는 사격장 바로 위에 위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격장은 부대 인근에 있는 250m 실거리 사격장이고, 사격장 바깥 경계선과 전술 도로의 직선거리가 100m가 채 안 됩니다. 사로(총을 쏘는 위치)에서 사고 지점까지는 약 400m 내외입니다. 당시 사격장에서는 병사 12명이 K-2 소총 사격 훈련 중이었습니다.
K-2의 유효사거리(조준 시 평균 50% 확률로 표적을 맞힐 수 있는 거리)는 460m(KM193탄), 600m(K-100탄)입니다. 따라서 직접사로 인한 유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부 군관계자들은 도비탄(딱딱한 물체에 부딪혀 튕겨 나간 탄)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29일 법의학 군의관이 유가족들에게 설명한 부검 소견에 따르면 도비탄이 아닌 유탄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합니다.
육군 본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아, 터질 게 터지고 말았구나"하고 탄식했습니다. 제가 복무했던 부대도 사고부대와 유사한 구조의 사격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다만 사로에서부터 전술 도로의 거리는 사고부대와 달리 유효사거리 밖, 최대사거리 안이었습니다).
육군의 사격장은 약 1500곳이기 때문에 사고 부대와 제가 복무했던 부대만의 문제는 아니리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합니다. 저는 주특기가 소총수여서 틈만 나면 사격을 했는데, 사로에서 엎드려쏴를 하고 있으면 바로 사격장 경사 너머로 산이 보였습니다.
산에 수풀이 우거져서 안 보이지만 수풀 사이에 전술 도로가 나 있었고요. 도로 뒤에는 주둔지를 두른 철조망이 있었습니다. 사격할 때마다 "상탄(上彈) 나면 위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맞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총구는 표적을 조준하고, 20발 쏘면 18발은 명중시키는 사수였기에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총을 그럭저럭 쏘는 숙련병이라도 심신이 피로한 상태라면 방아쇠를 당길 때 순간적으로 눈을 감거나, 호흡을 들이마시는 실수를 하면 총구가 올라가면서 상탄이 나기도 합니다. 대체로 사격에 미숙한 신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탄이나 도비탄이 날 확률, 그 탄이 수풀에 박히지 않고 전술 도로까지 날아갈 확률, 하필 그때 전술 도로에 사람이 지나갈 확률, 또 하필 탄이 그 사람에게 맞을 확률 등은 고려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직관일 뿐입니다.
통계학에서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반복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우연에 의하여 결정되는 실험을 '시행'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 시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사건'이라고 합니다. 사격 훈련이 일종의 실험 즉 시행이라면, 전술 도로로 탄이 날라가는 사건을 A라고 해봅시다.
총을 많이 쏠수록 A의 빈도 나누기 시행 횟수로 구한 확률은 여전히 미미해도, A의 빈도 자체는 증가할 겁니다. 가령, 위와 같은 사격장 구조에서 1만 발 당 1발이 전술 도로로 날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2만 발을 쏴도 여전히 확률은 0.01%이지만 2발이 전술 도로로 날아 갑니다.
사격 통제 제대로 했을까?그만큼 더 위험하다고 봐야겠죠? 문제는 현장의 사격 통제가 합리적 추론이 아니라 관행적인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기 쉽다는 겁니다. 사격장에는 반드시 통제관이 있는데, 통제관이 해야 하는 일의 성격은 과학자가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제대로 이끌어내고자 '변인(원인) 통제'란 걸 합니다. 과학자가 실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할 원인들을 통제하듯, 통제관도 정상적인 사격 외에 개입하지 말아야 할 문제들을 통제해야 합니다. 사격장 주변에 사람 못 다니게 막는 일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변인 통제에 실패한 연구자와, 사격 통제에 실패한 통제관은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통제관이 유능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사격장 주변에서 경계 근무를 선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 근무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듣지 못 한 채 그냥 "지키고 있어라"라는 명령만 하달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합뉴스> 29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 총기 사고의 피해자 이 일병 아버지도 "사격부대 통제병이 자신이 뭘 할지도 지시받지 않은 채 왔다고 우리 앞에서 진술했다"라고 말했습니다.(관련 기사:
"아들 잃은 것도 기가 막힌 데...군 도비탄 운운하며 책임 회피")통제 방송도 형식적입니다. 제가 복무하던 부대의 통제관(보통은 중대장)은 전체 사격 훈련이 시작되기 전 고작 한번, 훈련이 길어져야 두세 번 정도 확성기로 방송을 했습니다. 보통 "잠시 후 실탄 사격이 있을 예정이오니 민간인들과 군관계자분들은 신속히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합니다. 문제는 이 말만 들으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그래서 어느 방향에서 총을 쏜다는 건지 알기 어렵단 겁니다.
설사 군 관계자라 어느 방향에서 총을 쏘는지 알더라도, 사수들이 교대하는 중간중간 총성이 끊길 때 사격이 끝났는지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병을 인솔한 소대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까요. 간부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직관에만 의존해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간부는 병사들에게도 윽박지르는 것 말고는 해줄 말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이 현장 간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격장 간부들은 주어진 사격장 환경에서 사격 통제를 하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사격장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만든 건 병사들이나 용역업체 직원들이 고생해 만들었겠지만, 결국 건설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을 결재해준 실무자와 지휘관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사격장 정도의 규모면 최소 연대장이나 사단장급의 결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언론을 통해 도비탄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다느니, 100% 막을 수는 없다느니 사격장 설치 기준에 전술도로가 없다느니 말을 흘리는 군 관계자들이 있습니다. '무책임하다'라는 말로도 표현하기가 부족한 비겁한 행동입니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답은 사고의 직접 원인보다 근본 원인이 무엇이며 위험을 최대한 막을 방법입니다. 군 관계자들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군 사격장 전수조사해야
이제라도 군부대 사격장을 전수조사해야 합니다. 문제 있는 사격장은 전술 도로의 진행 방향을 바꾸던지, 아예 다른 곳에 만들던지, 여의치 않으면 사격장 내 돌이라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사방에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합니다. 총기 사고는 전방, 후방을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지만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면, 전방인 페바(FEBA, 휴전선과 민간인 통제선 후방의 최전선 전투지역)부대들부터 집중 점검해야 합니다.
육군 병력 대부분이 페바에 있으니까요. 페바는 알파(A), 브라보(B), 찰리(C), 델타(D)로 구분하는데, 뒤로 갈수록 후방입니다. 웬만한 대대급 부대는 사격장 하나씩이 딸려있습니다. 특히 알파, 브라보에서도 경기 북부 수도권 지역은 인구 밀도도 다른 지역보다 높습니다. 민간인들이 전술 도로를 등산로로 활용하거나 주변에 농민들이 다니기도 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데 많이 주저했습니다. 군 조직의 부조리를 고발하면 잘못은 간부들이 크게 저질러 놓고 부담은 애꿎은 병사들이 짊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격장을 정비하는 일에 또 병사들이 동원돼 막노동을 할까 봐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이점도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전방 부대에서 자꾸 사고가 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군 생활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고된 게 아니라 '쓸데없이' 고된 경우가 많습니다. 페바 부대는 훈련이 무척 많으면서도, 각종 막노동에 병력을 동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름에는 흔히 배수로 청소와 제초작업, 겨울에는 제설 작업을 합니다. 이런 작업들이 대체 전투력 향상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물론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진짜 제대로 된 훈련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 이런 잡무를 군무원을 뽑아서 맡기지 않고 병사들을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시켰으면 효율적으로라도 시키지, 눈은 어차피 그치지 않는 이상 쌓이게 마련인데 왜 한 번에 치우지 않고 온종일 치우게 했는지, 예비군까지 다 끝나가는 저지만 당시 간부들의 사고방식을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흙을 퍼 나를 때 굴삭기라도 동원해달라는 볼멘소리라도 어쩌다 나오면 간부들은 "너희들이 굴삭기보다 싸니까"라는 시시한 농담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꺾기도 합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누가 군 생활을 열심히 하겠습니까. 사격 훈련에서 피로감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일이 늘지 않을까요.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송영무 장관은 군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다만 일선 간부들이 여전히 보신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오히려 병사 출신인 제가 죄책감을 느낍니다. 현역병 때는 감히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사격장 구조 운운했다가 동료 병사들이 고생할까 봐요. 저만 입 다물면 괜찮지 않을까 주저주저 하다 보니 아무 일도 없이 군 복무가 끝났습니다. 비겁했습니다. 물론 사격장 인근에서 원인 불명의 총기 사고는 종종 일어납니다. 하지만 현역 때 조금 더 지성과 용기를 소유한 군인이어서 내부고발자가 됐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듭니다.
후회해도 죽은 전우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은 부조리에 조금씩 눈 감으며 군 생활했던 대한민국 현역 장병, 예비군 모두가 쌓아온 업보의 결과입니다. 대한민국 예비역의 한 사람으로서 이 일병 유가족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